제주민속촌,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려 놓은..

2013. 4. 22. 00:07여행/여행기

 

 


제주민속촌, 제주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려 놓은 제주민속박물관)



< ○ 2013. 3. 30 / 쌀쌀하고, 바람 조금
○ 제주민속촌 /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40-1





 
제주민속촌(민속박물관)은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약 5만평의 대지에
제주도의 전통 생활풍속을 재현하여 1987년 문을 열었다.
전통 취락단지인 산촌, 중산간촌, 어촌, 무속신앙촌, 어구전시관, 농기구전시관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목사청·작청·향청 등의 지방 관아와 귀향 온 죄인들의
유배소(流配所)가 복원되어 있다. 전시품들은 모두 조선왕조 말엽에서 한일합병 전인
1890년대를 기준으로 제주도 옛 문화와 역사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제주도민들이 살던 100여 전통 가옥은 200~300년 전 실제로 생활하던 건물을
돌 하나,
기둥 하나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옮겨 복원했다고 한다. 이 민속박물관에는 생활용구,
농기구, 어구, 가구, 석물 등 약 8,000점의 민속자료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또, 추사 전시관에는 제주에서 9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영인본 작품 50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돌문화 전시실에서는 방에, 돗고도리,
절구, 화로 등 돌이 많은 제주도 특유의 돌로 만든 생활용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곳곳에 제주의 옛 생활의 자취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제주의 민속품이
가득 차 있으며, 지금도 전통 민속공예 장인들이 옛 솜씨를 재현하고 있다.
 
개장시간은 오전 8시 30분
폐장시간은 계절마다 차이가 있어
오후 5시 30분 ~ 7시 사이,
연중무휴
 




(제주민속촌 들어 가는 길)





(제주민속촌) 

지난 번에 왔을 때 자세히 보지 못해
이번에 다시 왔는데.. 오늘도 시간이 많지않다.
조각공원 갔다가 서귀포로 넘어 오면서 버스를 1시간 넘게 기다리느라
하마터면 들어가지도 못할뻔 했는데 다행히 18시까지는 매표를 한다고 한다.

제주민속촌은 1980년대를 전시기준년대로 하여
한라산을 중심으로 고지에 따라 생활양식이 달랐던
산촌, 중산간촌, 어촌의 자취를 볼 수 있다.
옛 제주관아와 어구전시관. 농기구전시관. 말총공예전시관.
돌문화전시장으로 구분전시하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자 제일 먼저 만난 '태우')

제주의 뗏목배인 '태우'는
한라산에서 자라는 구상나무 10여 개를 나란이 엮어 만든
원시적인 고깃배. 태우가 원시적인 배인데도 여러가지
장점으로 최근까지 많이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태우'는 통나무를 나란히 엮어 놓기만 하면 되므로
우선 만들기가 쉽고, 선체가 수면에 밀착되어 풍파에도
뒤집히지 않아 안전하고, 해초를 건져내어 싣는데도
편리한데다 부서질 우려가 거의 없다고..





(토산품점 앞에 있는 물허벅)

제주도는 바람이 세고 돌이 많아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나를 경우 자칫하면 돌부리에 채이거나
바람에 쓰러질 우려가 있어 이와 같이 등에 져서 운반을 해 왔다.
예로부터 식수가 귀한 제주도에서는 잔칫날에는 잔칫집에 식수를
길어다 주었는데, 그 때는 자기집의 물허벅과 물구덕을 들고 나와
한 항아리에 두 세 사람의 물동이를 맞대어 물을 부어 채웠다고 한다.
물항아리에 물을 부을 때는, 물허벅을 지고 선 채로 손을 대지 않고
어깨넘어로 꺼꾸러지게 해서 항아리에 물을 부어넣음으로써
시간과 힘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인공폭포앞 포토존에서..)







(국화과의 '데이지'와 '노쓰폴'이.. )





(산촌)

한라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연 마을은 557개에 이르는데,
해안을 따라 밀집하여한라산 쪽으로 오를수록 그 규모가 작아진다.
이들 마을은 크게 산촌, 중산간촌, 어촌으로 나눌수 있다.
산촌은 해발 300미터 이상의 준평원 지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반농반목(半農半牧)의 생활형태를 보인다.







(골목, 돌담)

제주는 온통 바위투성이다.
김상헌은 『남사록』의 풍물편에 "이 땅에는 바위와 돌이 많고
흙이 덮인 것이 몇 치에 불과하다. 흙의 성질은 부박(浮薄)하고 건조하다"
고 제주의 열악한 토지환경을 기술하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화산회토의
돌땅을 억척스레 일구며 살아왔다. 밭을 개간해도, 집터를 닦아도,
바다로 나가도 돌은 피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제주민속에는 돌을 극복하고, 돌을 이용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인고의 삶이 계속 이어진다.

제주도의 돌(돌담)은,
제주의 환경적 열악함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열쇠로,
첫째, 토지에 널려진 돌들을 효과적으로 제거, 정리하는데 활용,
둘째, 얼기설기 쌓은 제주 돌담은 바람에 무너지는 일없이, 효과적으로
풍속(風速)을 줄여 안전한 주거공간을 조성하고, 흙의 유실을 막았고.
셋째, 방목중인 우마의 침입을 막아 농작물이나 시설물을 보호하고.
넷째, 명확한 경계표지 역할로 토지영역에 대한 분쟁을 줄일 수 있었다.
또한 돌담은 방어시설, 어로시설로도 활용됐다고 한다.

돌담이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만큼
돌담의 축조방법이나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돌담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백켓담'은 담의 아랫부분을 작은 돌멩이로 빈틈없이
여러 겹으로 쌓아올린다. 그 위에 큰돌로 틈새가 나도록 한 줄로
쌓은 담인데 밭에 있는 불필요한 돌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밭모서리에 쌓아놓은 경우도 있다.

'외담'은 '잡담'이라고도 하며, 주변에 흩어진
돌들을 외줄로 크기나 모양에 상관없이 쌓아올린 담이다.
주로 밭의 경계를 두를 때 이용한다. 담을 쌓은 후 한쪽 끝에서
흔들면 담 전체가 흔들리도록 쌓아야 제대로 쌓은 담으로 친다.
이렇게 쌓은 담은 바람에 유연하여 거센 바람에도 안전하다.

'겹담'은 안팎 두 줄을 큰 돌로 쌓고 그 사이에 잡석을
채워 완성한 담이다. 무덤을 두르는 산담에 사용하는 양식,
경작지 잡석을 제거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잣길' 혹은 '잣벡'이라 불리는 담은 경작지의
\ '백켓담'이나 겹담의 변형으로 자갈을 넓게 쌓아올려 사람이
그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담이다. 바위나 자갈이 많은
농토에서 돌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여 농토사용의 효율을 높일 뿐
아니라 경작지까지 진입하는 농로(農路)가 되므로 우천시에도
불편없이 드나들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담이다.

얼기설기 막 쌓아 놓은 듯한 전통 돌담에서
제주 선인들의 지혜를 접할 수 있다.





(옛날 제주의 대문인 정주석과 정낭)

집 입구의 양쪽에 구멍을 뚫은 정주석을 세우고
정낭이라는 나무를 걸쳐 놓아 소나 말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정낭 3개가 걸쳐져 있으면 주인이 멀리 출타하고 없음을 나타내고,
다 내려져 있으면 집에 사람이 있으니 들어와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1개는 가까운 곳에 2개는 조금 더 먼 곳에 나갔다는 것을 표시로
정낭은 제주가 서로 믿고 사는 사회였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바람이 많았던 제주의 초가 지붕은..)

새(띠)를 꼬아 만든 집줄로 단단히 동여 매어
태풍에도 불려나지 않도록 하였다. 집줄은 중산간 지대에서 자라는
'새(띠)'를 이용하여 만든다. 먼저 외줄을 필요한 만큼 만든 다음,
두 개의 외줄을 하나로 어울려서 집줄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줄은
1년 또는 2년 마다 초가지붕을 새로 덮을 때 그 위에
격자형으로 줄을 얽어 매는데 사용했다.

제주에서는 매년 11월말에서 1월 사이에
초가지붕을 새로 덮기 위해서 중산간 지대에서 자라는
새(띠)를 이용하여 집줄을 놓았다.







(물레)







(다듬이)





(족덫 / 족제비틀)

쥐나 족제비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덫을 세우고 판 위에
돌덩이를 올려 놓는다. 건드리게 되면 먹이에 연결된 끈이 움직여져
판이 내려지고 돌덩이에 눌려 잡히게 된다.





(구중궁궐에서 여인이 얼굴 빼꼼이 내민듯한 동백)









(제주의 초가집은..)

기둥, 보, 상마루 등 뼈대를 나무로 만든 후
벽을 굵은 돌로 쌓아 두르고 흙을 발라 붙여 단단히 하였으며,
지붕은 제주도 전 지역에서 자라는 연한 갈대처럼 생긴
새(띠)로 덮어서 지었다.





(태왈)

겨울철 눈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신는
덧신의 일종으로 재료는 잘 휘어지는 윤노리나무와 칡줄로 만들었다.
눈이 많이 오는 강원도 지역의 설피와 비슷하다.





(문에 붙어있는 입춘첩(立春帖))

立春大吉 (建陽多慶)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시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상방과 정지)

상방(마루)은 식사, 손님접대, 오락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중심 공간. 정지(부엌)는 한 쪽에 찬장인 살레가 있고, 외부 쪽 벽에
붙여서 돌을 놓아 솥을 얹어 화덕을 마련하여 밥을 하였다.





(통시에 간때 도새기가 대맹이 털어 부러싱가)

변소에 갔을 때 돼지가 머리 털었는가





(몰방에(연자매))

커다란 방앗돌을 말이나 소를 이용해 돌려서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탈곡하거나 제분할 때 썼던 방아시설이다.







(꽃이 피는 날에는..)





(돌하르방..)

제주도 특유의 석상인 돌하르방은
현무암을 깎아서 만들었는데 크기는 가장 큰 것이 266cm,
가장 작은 것이 103cm 였다고.. 돌하르방의 얼굴은 싱긋 웃는 입과
동공이 없이 불룩 튀어나온 눈, 크고 넓적한 코, 미세하게 웃는 모습,
그리고 손은 배 위에 얹어져 있고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는
벙거지(전모) 형태다. 1971년 8월 25일에
지방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한다.

돌하르방은 제주도 방언으로
돌로 만들어진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단어.
이 이름 외에도 벅수머리, 무성목(武石木), 우성목(偶石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탐라 역사서에 따르면 옹중석(翁仲石)이라고
하는데, 현재에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솟대)

민간신앙을 목적으로 또는 경사가 있을 때 축하의 뜻으로
세우는 긴 대끝에 나무로 만든 새를 달기도 하는데.. 삼한(三韓)시대에
신을 모시던 장소인 소도(蘇塗)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32)







(방문(榜文))

오늘 혼사가 있는듯 청사초롱달린 잔치집 담벽에
소도둑(?) 같은 범인 방문(榜文)도 붙고..









(주막에서.. 저 이름은 동명이인이겠지..)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이 묶었던 외국인 아닌가..)

거의 2/3쯤 돌았을 즈음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여기서 또 만나다니. 지난밤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이 묵었던
외국인 가족이다. 다가가서 '하이!' 하니 그들도 의아한듯 하면서
웃으며 반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다가 우리가 주막에 파전 먹으러
들른 사이 지나가는 모습을 찍었다. 오늘 우리는 김정호 유배지,
조각공원을 거쳐 여기로 왔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아침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올 때 왠지 "시유어게인"하고
싶더라니까. 한국에서 좋은 추억 만들어 가시길..









(제주영문)

조선시대 제주목의 관아로 제주영문의 본청(연희각)은
목사의 집무처로 제주목사는 여기서 모든 정무를 처리하였다.
본청 앞에는 옥이, 본청 앞 외대문과 내대문 사이에는 항청과
영리청이 있다. 항청은 민간에서 임명된 사람들이 근무하면서
목사의 자문에 응하며, 관리와 백성을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하였다.
본청 오른쪽의 영리청에서는 육방관속이 호적관리, 조세징수,
환곡과 진상품 관리 등의 임무를 맡았다.





(제주를 상징하는 유채밭 앞에서..)

30대 이상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제주를 상징하는 색(色)이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십중팔구 '노란색'이라 답할 것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적 과일인 노란 감귤과, 관광객들이
사진 배경이 빠지지 않는 노란 유채꽃 때문아닐까.
사실 이번 여행도 노란 유채밭을 배경으로 산방산을
담아보고 싶은 기대를 가지고 왔다.





(민속춤 공연장에서는.. 연습에 한창이고..)





(오메기떡과 오메기술 맛뵈기..)

제주도 막걸리 '오메기술'은 일반적인 막걸리와는 다른데,
농사를 짓기에는 척박하여 좁쌀, 보리 등 잡곡을 주식으로 하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막걸리처럼 쌀과 누룩을 이용하지 못하고
좁쌀과 보리로 만든 누룩을 이용하여 빚어 낸 술이다.
설명에 따르면 '오메기술'은 좁쌀을 곱게 갈아 가루로 만들어
끓은 물에 반죽을 한 후 도넛 모양의 작은 떡을 만들어 찐 다음
이 떡을 식기 전에 손으로 물과 함께 주물러 으깬 후 끈끈하게
죽을 만들고,다시 물을 부어 약간 묽은 상태가 되면 누룩가루를
섞어 항아리에 넣어 보온하면서 발효시킨다고 한다.
'오메기술'은 현재 제주도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제주의 맛으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노랑나비야~)













(여기도 추사관이.., 오전에는 김정호 유배지에 들렸는데..)







(위/ 대흥사의 무량수각, 아래/화암사의 무량수각)

아래는 예산 화암사 '무량수각' 현판. 획이 가늘면서
힘과 멋이 함께 들어있다. 제주도 유배시절 글씨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누렸던 특권층의 삶과는 거리가 먼
척박하고 고독한 유배생활 8년 3개월을 보내면서
예스러운 멋과 회화적 조형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의 세계를 갖추게 된다.

유배생활을 거치면서 더 이상 어깨가 올라가는
일도 없어지며 골격은 힘있고 필획의 울림이 강하게 느껴지는
추사체의 면모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9년뒤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완당은 대둔사에 다시 들러 떼어 내리게 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을 다시 걸게 했으며, 전주에 들러 창암 이삼만을
찾았으나 그 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난 완당은 강상(江上)에서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시절부터 완당 글씨의 특징을 보면 추사체의 파격미나
개성미, 이른 바 괴(怪)가 완연히 드러남을 실감할 수 있다.
글자의 구성에서 디자인적인 변형이 대담해지고 서체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붓끝에는 힘이 실리고,
획에 금석기가 있으며 필세에 생동감이 있는 등
추사체의 참 멋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 180호. 추사 김정희가
1844년 제주도 유배중에 제자인 이상적에게그려준 그림.
김정희는 유배 중인 스승을 우해 중국에서 들여온 새로운 자료를
보내준 역관 이상적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세한도'에 담아 표현하였다.
'세한도' 그림은 각각 두 그루의 소나무와 잣나무, 그 사이의 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림속에서 찬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황량한데, 척박한
유배지에서 느끼는 김정희의 심리적 추위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적하고 어려운 자신의 유배생활을 세한에 비유하고, 송백과 같은
기상을 잃지 않으려는 자신의 굳센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세한은 공자의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 에서 인용
"날이 차가워(歲寒)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松柏)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수무강(萬壽無疆))

예서(隸書)
오른쪽의 소연정지(小연正之)는 추사선생의 호(號).

이 글씨는 누구에게, 언제 쓴 작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주도 유배생활과 관직을 떠나 71세 때 경기도 과천 봉은사(奉恩寺)에
기거하고 계실 때,「大烹豆腐瓜薑菜(대팽두부과강채), 高會夫妻兒女孫
(고회부처아녀손)」이란 글씨를 행농(杏農) 유기환(兪麒煥)에게
선물할 즈음 다른 친구에게 써 준 글씨로 추정된다.





(백벽(百蘗))

백파선사의 비문을 받으러 온 스님에게 선물로 써 준 <백벽>
"백파의 선문 종취는 대기대용을 더 높이는 것이니
이 두 글자를 써서 설두상인에게 준다."





(염화취실(斂華就實))

김정희(金正喜), 염화취실(斂華就實: 꽃을 거두고 열매를 맺다)
지본수묵(紙本水墨), 27.0x22.8cm

군더더기 하나 없이 오직 골기(骨氣)만 남은 것이
추사의 다른 작품 세한도(歲寒圖)에서 받은 느낌 그대로다.





(묵란 / 서울대 박물관 소장)

전해오는 추사의 묵란중 가장 정법에 가까운 작품





(동심에 젖어 올만에 팽이치기도 해 보고..)

어릴 때 연, 팽이, 제기, 스케이트 만들기 선수였다.
팽이는 박달나무로 다듬기도 잘 해야했지만 역시 베어링을 박아야
팽이가 싸움도 잘하고 잠자듯 잘 돌았다. 제기는 엽전에 문종이로
만들면 좋았는데 어디 엽전 구하기가 쉬웠나.. 엽전 못구하면 탈곡기에
있는 와셔를 빼서 사용하는 바람에.. 심지어는 스케이트 만든다고
창틀 레일을 빼내는 바람에 문을 못쓰게 만들기도 했으니..





(조팝나무)









(아가판사스)





(데이꽃을 꽃길을 따라.. )









(제주민속촌, 관람안내)





(표선민속촌 버스시간표)

표선민속촌 제주간 버스는 번영로를 이용하는데 중간에
산굼부리 경유하여 제주로 가는 버스와 가지않는 버스가 있다.
산굼부리쪽으로 가려면 교래 방향 버스를 타야한다.







(민속촌에서 나오면서.. 표선해수욕장)

지난번 시간에 쫓겨 주마간산식으로 본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왔는데.. 이번에도 조각공원 갔다가 서귀포로
넘어 올 때 버스를 1시간 가까이 기다리는 바람에 차질이 생겨 보고싶은
부분을 찬찬히 살펴 보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더 오라는 것인지..  
정리를 하려니 중요한 모습들을 많이 놓쳐 지난번 갔던 사진을 빌려
쓰면서 하는 생각..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한다.
좀 더 준비를 했더라면 더 많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인 것은, 대정의 김정희 유배지에서 추사에 대한 좋은 강의를 들은
덕분으로 민속박물관에서 추사의 작품을 보면서 이해에 도움이 되었고,
추사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면서 추사의 제주도 유배생활
전후의 작품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