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뜨 언덕,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의 아지트
2014. 7. 27. 23:54ㆍ여행/여행기
몽마르뜨 언덕,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의 아지트
(르노와르와 피카소가 예술혼을 불 태웠다는 라팽 아질은 어디?)
○ 2014. 5. 10(토) 날씨 : 비
○ 프랑스, 파리 몽마르뜨르
'몽'(Mont)은 '언덕', '마르뜨르'(martre)는 '순교자'라는 뜻이 말하듯
순교자의 언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해발 129m의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평지로 이루어진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지대. 복잡한 골목에서 이어진
언덕 꼭대기에서는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파리 시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몽마르뜨르는 근대미술의 발달을 촉진한 예술가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20세기에 들면서 점차 몽파르나스로 옮겨 갔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몽마르트르는
예전의 보헤미안적인 느낌을 잃고 상업적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수많은
예술작품이 탄생한 본거지로서의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어 근처에는 고흐와
동생 테오와 함께 살았던 '반 고흐의 집', 다다이즘의 대표 시인 차라가 살았던
'트리스탄 차라의 집', 작곡가 비제가 살았던 '조르주 비제의 집' 등이 있다.
순례지로서 신자들이 끊임없이 찾아 오는 언덕 위에 세워진 사크레 쾨르 대 성당
몽마르트르 묘지도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기 위해 방문한다.
또 인근에 유서 깊은 저택과 물랭루주 등의 카바레가 있다.
그 외에도 옛집이 늘어선 거리는 19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아직도 화가들이 찾아든다고 한다.
(몽마르뜨르 가는 길..)
몽마르뜨르의 낭만과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긴장이 아닌.. 소매치기 조심 경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이 거리에
소매치기가 많다고 하니 낭만을 기대했던 기분이 반감되고..
(몽마르뜨르, 정상 사크레 쾨르 대 성당이 나타났다.)
몽마르뜨르는 에펠탑과 함께 여행자들이 찾고 싶어하는 명소.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 129m의 언덕에 위치해 있어
(몽마르뜨르, 회전목마와 사크레 쾨르 대 성당)
(정상에는 사크레 쾨르 대 성당이..)
222 계단을 오르면 바로 사크레 쾨르 대 성당이다.
마르스(군신) 언덕이라는 뜻과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몽마르뜨는 로마 점령시기인 서기 250년경 생 드니 성자가
이곳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후 잘려나간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부의 생드니 성당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고 하는
전설에서 언덕의 이름이 유래하였다.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
이전에 아티스트들이 그림을 그렸고,
지금도 많은 예술인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테르트르 광장.
테르트르는 언덕의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이며, 실제로 파리에서
높은 지대에 속한다. 몽마르뜨르는 유명한 화가들을 배출한 유서 깊은 광장이며
피카소 마티스 등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또 프러시아 전쟁이 한창이던
1814년에 러시아군이 이곳을 야영지로 이용했고, 빨리 식사를 마쳐야
하는 것에서 유래해 러시아 군인들을 위해 가정식을 빨리 서비스하는
비스트로(러시아어로 빠르게)라는 말이 이곳에서 처음 생겨 난 곳이
몽마르뜨르가 유명한 것은 사실 사크레 쾨르 대 성당도 있지만
바로 이 테르트르 광장 때문이라고 한다. 한 때는 처형장소로 쓰였다고 하는
이곳에 19세기부터 화가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많은 화가들이 여행객의 초상화를 그 자리에서 직접 그려 팔거나
그림을 그렸다는데 지금은 상업적으로 많이 변모한듯..
(몽마르뜨르는 예술가들의 메카..
몽마르뜨르를 소재로 한 주요 작품들을 살펴보면..)
위로부터 오귀스트 르노아르의 Le Moulin de la Galette_1876,
PICASSO_MONTMARTRE_1901, Celestin Messaggio의 몽마르뜨르(place_du_tertre),
레오니드 아프리모프의 몽마르뜨르(paris-montmartre-leonid-afremov)
"몽마르트르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보헤미안의 메카로 통했다.
3세기 중엽 성(聖) 드니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해서 순교자의 산(Mont Martre)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이 거룩한 언덕이 유명세를 타게 된 배경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수녀님들이 성당에 필요한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1860년 몽마르트르가 파리에 편입되면서 언덕 왼편의 피갈 광장 일대는 파리 최고의
유흥가로 떠오른다. 물랭 루즈(Moulin Rouge,붉은 풍차) 같은 대형 카바레가 들어선 것도
바로 이즈음이었다. 이곳에서는 캉캉춤 같은 퇴폐적인 공연들이 공공연히 이루어졌고
이베트 길베르,잔 아브릴 같은 스타급 가수와 무희들이 파리의 남성들을 매혹했다.
이곳에 몰려든 부류는 술꾼 말고 또 있었다.
값싼 주거지를 찾아 외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었다. 이곳의 개방적
분위기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기질의 예술가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19세기 말에는 드가,르누아르,반 고흐,툴루즈-로트렉이 20세기 초에는
피카소,모딜리아니,후안 그리 등이 이곳에서 머물며 현대미술의 초석을 다진다.
그러나 몽마르트르는 1차 세계대전을 고비로 보헤미안의 메카로서의 영예를
무명 작가들이 65도의 독주(毒酒) 압생트(absinthe)를 마시며
헝그리 예술혼을 밀어낸 지 오래다."
한국경제, '정석범의 유럽문화기행'中 인용
(비가 추적추적 내려..)
모든 사람들이 처마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테르트르 광장의 일상적인 모습도 비를 피해 숨어 버렸다.
광장의 낭만적인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골목길을 많이 돌아보지는 못하고..)
테르트르 광장 주변의 골목들도 볼거리가 많으나 부족한 것은 시간..
르노와르,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 당대 유명인들이 자주 찾았다는 카페,
라팽 아질도 가 보고 싶지만 성당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쉬운 마음에 라팽 아질을 잠깐 살펴보면..,
(라팽 아질(Lapin Agile)과 물랭 갈레트(Le Moulin de la Galette)는.. )
'라팽 아질'은 16세기부터 사크레 쾨르 성당 근처의 포도밭에
터를 잡은 오두막으로, 랭보와 베를렌의 친구였던 앙드레 질이
1880년 핑크빛 벽에 그린 토끼 그림이 상징이 되어 가게 이름을
'라팽 아질(냄비에서 도망간 토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라팽 아질'은 캬바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카바레가 아니라 샹송 가수들이
노래하고, 시 낭송하고, 만담을 하는 곳이라 한다. '라팽 아질'은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에릭 사티, 피카소 등 몽마르트에서 활동했던 당시 예술가들이
'물랭 드 라 갈레트'와 함께 즐겨 찾던 카페로 예술혼을 태웠던
몽마르뜨에서도 무척 유서깊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왜 몽마르뜨르에 모여들었을까?
네덜란드에서 온 반 고흐와 에스파냐에서 온 피카소가 그랬듯이
수많은 화가들이 이곳에서 예술가의 삶을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작업공간 때문이었다고 한다. 석탄을 태워 생기는 증기 압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자 바람을 이용한 풍차 방앗간이 문을 닫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곳을 가난한 화가들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폐교를 화가들이 작업실로 사용하는 경우와 경우와 비슷하다.
(성당의 옆모습, 종루가 우뚝하다.)
80m 높이의 우뚝한 종루..
유럽의 주교좌 성당인 대성당(catedrale)들은
하나같이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물론 바실리카(basilica)는
그렇게 큰 구조가 아니고 아담하지만..
(이런 길은 비를 맞고 걸어도 좋다)
유럽의 중세도시에서 볼 수 있는 포장도로.
아스팔트 보다는 훨씬 환경친화적일 것 같다.
큰 비가 내려도 물길이 몰리지도 않고..
비가 내리니 더 운치가 있다.
(꼬마열차, 가까운 곳을 셔틀로 연결하는듯..)
(사크레 쾨르 대 성당(Basilica of the Sacred Heart of Christ))
사크레 쾨르 대 성당은 진정한 신이자 인간인 예수의 성심(聖心)에
바쳐진 교회당으로 1885년 부터 그 경배의 행렬이 밤낮으로 줄을 이어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것이 이 성당의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건물의 흰 외관이 이 성당을 파리의 주요 관광 명소로 만들어 주고 있다.
로만-비잔틴 양식의 성심 성당은 몽마르트르에서 파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많은 목회자와 베네딕트의 수녀들이 독실한 신자와 신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는 순례의 장소이다. 비잔틴 양식의 하얀색 돔이 특징적이며
청동문에는 예수님의 생애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정문 위 양편에는 잔 다르크와 생 루이의 동상이 있다.
종루에는 세계 최대의 종(26 ton)이 있다.
(몽마르뜨르에서의 파리 시내 조망)
비가 오는 날씨여서 조망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파리 시내가 발 아래 펼쳐 보인다.
(파리 사람 대부분은 비를 맞고 다니는듯..)
비가 우리나라같이 소낙비가 내리는 것 같지는 않다.
파리의 년간 평균 강수량은 600mm가 조금 넘고, 월간 평균 강수량은 51mm 정도,
그래서, 파리의 여행적기는 5월중순~8월까지. 물론 파리의
겨울정취나 고독을 느끼고 싶다면 겨울도 좋을테지만..
(파리 시내 조망대.. 안내판에는 주요 건물들이..)
(위로 본 모습, 아래로 본 모습)
(몽마르뜨르의 회전목마)
메리 고 라운드(merry-go-round), 라운드 어바우트(round about)라고
하는 것은 영국식 명칭이고, 미국식 명칭은 캐러젤(carrousel)이라고 한다.
이것은 17세기 서양에서 유행했던 마상시합을 뜻하며, 기사(騎士)가 말 위에서
창을 던지기 위한 연습도구로서 고안되었다고 한다. 이 때 말에는 화려한 마구를
회전목마는 18세기 초 프랑스의 완구상이, 회전대 위에 마상시합에서 따낸
마구를 얹은 목마를 태우고 인력 또는 마력으로 움직여 구경거리를
삼은 것이 시초라고.. 회전 목마를 보니 가슴이 띈다.
파리에서는 곳곳에서 회전목마를 본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물랭 루즈가 있다)
1889년 개장. 프랑스어로 '붉은 풍차(Moulin Rouge)'라는
뜻으로 건물 옥상의 크고 붉은 네온사인 풍차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흥행물로 유명한 춤 '카드리유(나중에 프렌치캉캉이라 불림)'로 인기를 얻었다.
라 그류, 잔 아브릴 등의 무용수, 여자 익살꾼 샤 유 카오 등의 스타들은
L.로트레크의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1903년 뮤직홀로 개축하였으며,
이 무대에서 미스탱게트, 모리스 슈발리에 등의 스타가 탄생하였다.
1915년의 화재로 모두 불탔으나 1918년에 재건하였으며, 1924년 이웃에
댄스홀이 세워졌다. 이후 유성영화에 밀려 1929년에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현재 물랭루즈로 알려진 것은 '발 뒤 물랭루즈'라는 댄스홀로
파리의 명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프랑스는 자전거문화도 선진국)
프랑스는 자전거 정책이 성공적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2007년 7월에 도입한 무인자전거 대여 시스템 벨리브(Velib)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벨리브는 프랑스어로 자전거를 뜻하는 벨로(vélo)와 자유로
누구나 탈 수 있다는 뜻의 리브르(liberté)를 합성한 단어로, 프랑스의 파리에서는
대중교통의 혼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존에 시민들들로부터 호응을 받던
자전거 임대 제도를 응용했다. 말 그대로 자유로운 자전거로 불리는 벨리브는
프랑스의 잘 발달된 도로와 합쳐져 이상적인 교통수단이 되었다. 또한 환경보호를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잘 읽어낸 자전거의 이용은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었고,
벨리브의 확산을 통해 프랑스 문화적 측면에서도 큰 장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또 벨리브는 지하철역과 연계가 잘 되어 있어 편리하고 이용 가격이 싸다고 한다.
프랑스는 교통법규 위반이 적으나, 교통법규 위반시 벌금은 상당히 무겁다고 한다.
또, 자전거도 차량이기 때문에 인도로 올라오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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