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 네카어 강변의 아름다운 대학도시

2014. 12. 30. 16:33여행/여행기

 


하이델베르크, 네카어 강변의 아름다운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



○ 2014. 5. 18   날씨 : 흐림
○ 독일, 하이델베르크




여행도 이제 막바지..
돌아가는 길에 경유지로 들린 하이델베르크도
그렇게 잠깐 머무르다 떠나기에는 아쉬운 도시다.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어강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이 아담한 도시는
인구 14만명 중 3만명이 학생이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는
대학도시이자 관광도시로 아름답고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6세기 초에 건설되었다가 17세기 말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된 고성과
고성의 지하에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술통, 네카어강을 가로 지른
카를 테오도르 다리, 브뤼케문도 빼 놓을 수 없는 명소다.
다리에서 연결되어 하이델베르크 구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라 불리는 오솔길은 칸트를 비롯한
유명한 철학자들이 걸으며 사색한 곳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을 통해 잘 알려진 도시이기도 하다.
1952년 이후로 유럽 주둔 미군 총사령부가
자리잡고 있어 군사도시이기도 하다.









(독일로 들어서니 창밖 풍경이..)

이제 EU국가들 간에 국경선은 거의 의미가 없다.
국경은 검문소가 자취를 감추고 길 가의 조그만 이정표가
국경 넘는 것을 알게해 줄 뿐이다. 자동차가 속도로 줄이지 않고
통과하기에 그마저도 놓치기 쉬운데 국경을 넘어선지 잠깐이지만
그 사이 창밖 풍경은 사뭇 달라 보인다. 머리에 눈을 하얗게 이고 있는
험산은 보이지 않고, 넓은 밭과 초지, 드문드문 보이는 농가들..
푸른 벌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가축들..
전형적인 독일 농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고속도로 휴게소 풍경)

젤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엄청큰 쓰레기 분리수거통,
독일은 쓰레기 분리수거가 일상화 되어 있어 플래스틱, 종이,
생활쓰레기,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하여 버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재활용 또한 철저하여 병도 녹색, 갈색, 투명색으로 나누어 버려야 하고,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분리수거 과정에 참여를 시킨다고 한다.
독일에서 가장 좋은 분리수거 방법으로는 플라스틱, 유리병 교환인데
음료나 물, 맥주 등을 구매할 때 이미 15센트에서 20센트까지 추가로
Pfand값을 내고 나중에 빈병을 마트에서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방법.
화장실은 유료 무인 시스템이고 주유소도 당연히 셀프.
과연 셀프의 나라 독일 같다.









(다음은 자동차, 자동차를 운반하는 트레일러)

국경을 넘어서자 달라진 풍경이 하나 둘 아니다.
자동차산업이 발전한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휴게소가 비좁을 정도로 자동차들로 꽉차 있다.
독일의 국내 총생산중 제조업이 약 30%를 차지하는데
매출액 기준으로 자동차산업이 제일 규모가 크고 그 다음으로
전기전자, 기계, 식품, 화학산업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독일의 농촌 풍경)

끝없이 펼쳐진 벌판을 보면서 독일의 농업비중이 클 줄 알았는데
농림.수산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도 채 안된다고 한다.
특히, 독일의 농업은 EU 차원의 농업정책에 직결되어 있는데 그 동안
농업보조정책으로 잉여생산이 많아 주요 농산물은 생산쿼터제를 실시하고,
농경지의 이용을 포기할 경우 그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으며,
농업생산의 조방화(粗放化)를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농촌지역은 농산물 생산의 기능 외에 생태계 보전과
휴양공간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네카어 강변의 주택가)





(구시가지 안내도)

하이델베르크는 네카어江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로
12세기에 처음 문헌에 등장. 1225년 라인 백작령이 되었으며
1720년까지 선제후(중세 독일에서 황제 선거의 자격을 가진 제후)의
거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1386년 선제후 루프레흐트 1세(Ruprecht I)가
설립한 하이델베르크대학교는 프라하대학교와 빈대학교의 뒤를 이어
독일어권에서는 가장 오래 된 대학으로 16세기 종교개혁의 보루가 되었다.
30년 전쟁(1618~1648) 이후 쇠퇴하였다가 프랑스혁명 전쟁 이후
옛 명성을 회복하여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대학이 되었다.

1952년 이후로 유럽 주둔 미군 총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다.
또 16세기와 17세기 초에 건설되었다가 17세기 말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된 고성으로도 유명하다. 이 성의 지하에는 하이델베르크 툰
(Heidelberg Tun)이라는 22만 리터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술통이 있다.
그밖에 1701∼1703년 건립된 시청사와 이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라 불리는 오솔길 등이 있다.









(마르크트 광장 가는 길)

길을 돌로 깔아 놓았다. 도보 전용 도로인듯..
유럽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낙서도 보이고..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Church of the Holy Spirit))

성령교회는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유서깊은 교회로 구 시가지 마르크트 광장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주황색 지붕들 사이로 우뚝 솟은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교회의
탑은 하이델베르크의 상징이라고.. 1398년에 시작하여 1515년까지
건축되었으며 첨탑 위의 바로크식 지붕은 1709년에 올려졌고,
1978년부터 985년까지 전체적으로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교회 내부는 후기 고딕양식으로 장식되어 있어 남부 독일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축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가톨릭 교회였으나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회가 되었다고 한다. 이 교회에 13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으나 현재 중앙 오르간은 1980년에서
1993년에 걸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교회는 비블리오테카 팔라티나(Bibliotheca Palatina)라는
궁정 도서관으로도 유명하다. 루드비히 3세가 도서를 모으기 시작하여
이후 귀족들이 도서를 기증하여 방대한 양의 진귀한 책들을 소장하게
되었으나, 30년 전쟁에서 바이에른에 패하여 도서관의 책을 약탈 당했고,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1세는 1622년 약탈한 책들을 교황에게 선물했다.
5천여 권의 책과 3천 5백여 권의 필사본 가운데 885권 정도만이
1816년에 반환되어 하이델베르크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교회당 뒷편 벽면의 메모판.. 특이했다.)





(구시가지 중심부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

하이델베르크의 중심 광장.
선제후들의 무덤이 있는 후기고딕 양식의 성령교회가
위용을 자랑하며 그 맞은편에는 1789년에 건설되어 대형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1900년대 초에 복원된 시청사가 있다.
그 밖에 프랑스에서의 종교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온 위그노들이 세운
기사의 집 등이 볼만하다. 광장 중앙에 놓인 헤라클레스 분수 주변은
과거에 죄수들을 처형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호텔, 레스토랑,
기념품점 등이 모여 있어 언제나 활기를 띈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로 연결된 골목)







(카를 테오도르 다리 브뤼케문)

마르크트 광장에서 이어진 골목을 따라 가니
카를 테오도르 다리 '다리의 문'이라는 뜻의 브뤼케문이 나왔다.
다리 입구는 양 탑 사이에 마치 문처럼 된 곳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문 양쪽에 흰색으로 된 두 개의 탑이 원래는 구시가지의 성벽의 일부분.
두 탑은 각 각 보초병의 초소와 감옥의 용도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꼭대기가 고딕식의 첨탑으로 되어 있었으나 1788년 개축할 때
지금의 돔과 첨탑의 바로크 양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중심부를 흐르는 네카어(Neckar) 강)

라인강의 지류로 길이 367km. 도나우강의 상류 가까이에 있는
슈베닝겐암네카 어(Schwenningen am Neckar) 가까운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
북쪽과 북동쪽으로 슈바벤알프스 지역의 북서쪽을 따라 흐르면서 튀빙겐과
기타 여러 소도시들을 경유한다. 플로힝겐까지 운하가 만들어져
1,000톤 무게의 배도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카를 테오도르 동상)

다리 위에는 다리를 개축한 카를 테오도르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 밑에는 4개의 강을 상징하는 신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4개의 강은 라인강, 네카어강, 마인강, 도나우 강.















(하이델베르그 카를 테오도르 다리)

1284년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 다리는
처음에 목조로 지어졌으나 1784년 홍수로 완전히 유실되자
1788년 카를 테오도르가 석조로 개축하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
다리가 폭파되는 바람에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1946년 3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47년 7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탄생되었다고 한다.

시계추처럼 정확한 일상으로 유명했던 칸트가 종이 울리면
항상 모습을 드러냈다는 언덕 위의 호젓한 산책길인 '철학자의 길'.
칸트를 비롯하여 야스퍼스도 괴테도 헤겔도 이 다리를 건너 좁은
오솔길을 지나 맞은편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나 있는 길을 걸으며
그들만의 위대한 철학적 우주를 사색하고 꿈꾸었을 것이다.
오래된 다리란 뜻의 '알테 브리케'는 하이델베르크가 가장
번창한 시절인 카를 데오도로 시절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다리로
'철학자의 길'에서 슈랑겐 골목에 위치해 있다.

이 다리가 유명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1899년에 출간된 독일의 Wilhelm Meyer Forster의 소설을 영화화한
'황태자의 첫사랑' 덕분아닐까! 앤블리스와 애드먼드 퍼돔이 열연했고
중간에 삽입된 마리오 란자의 절절한 구애의 노래는
오랜세월 여성팬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원숭이 모양의 청동상)

브뤼케문 바로 옆에는 원숭이 모양을 한 청동상.
관광객들의 포토 존으로 양 볼 사이에 머리를 넣고 사진을 찍는다.
원숭이가 들고 있는 거울을 만지면 좋은 일이 생긴다 하여
너도 나도 한번씩 만지고 가는 바람에 반질반질하다.

원숭이 상에 대한 유래가 3가지나 된다는데
첫번째는 네카강 주변에 살던 영리한 원숭이가
손에 들고 있는 거울로 사람의 선악을 구분했다고 하고,
두번째는 적이 침입했을 때 원숭이들에게 거울을 나눠주고
성을 돌아다니게 하여 거울에 반사되는 빛이 성에서 수 많은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는 전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에게 늙었다고 버림받은 원숭이가
거울을 들고 주인에게 '너도 늙는다'라는 뜻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데 그 중 마지막
이야기가 의미심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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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른 마르크트 광장의 성모상)







(Hotel Zum Ritter St Georg)

하이델베르크에서 유명한 리터호텔 전경.
1592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저택의 주인이 기사였다고 해서
기사의 집이라고도 불린다. 한 때는 하이델베르크 시청으로 사용하다가
1700년대부터 지금까지 300여년간 호텔로 사용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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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구시가 거리 하우프트 거리(Haupt Street))

보행자 전용도로 하우프트거리는
다른 유럽의 전통적인 도시들처럼 길 바닥이 돌로 깔려 있어
운치도 있고 걷을 때 발바닥에 닿는 감이 좋았다. 하우프트거리는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를 길게 가로지르는데 여러 광장들이 연결되어 있고
쇼핑몰, 카페, 음식점 등이 몰려있어 하이델베르크 최고의 번화가이자
하이델베르크성, 카를테오도르 다리 등 하이델베르크의 명소들을
연결시켜 주는 대동맥같은 보행자 전용 도로이다.















(하우프트 거리, 형식은 비슷해도 같은 건물은 하나도 없다)

쇼핑하러 간다고 잠깐 30분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대학로를 가보려고 길을 물으니 이 길로 쭈욱 가면 된다고 하여
한참을 걸어도 대학로 같지는 않아 시간이 없어 되돌아 왔다.
나중에 다시 확인을 하니 대학교는 갔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 건너편에 있었다. 쇼핑을 1시간 넘게 할 줄 알았더라면 역사깊은
하이델베르크 대학까지 갔다 올 수 있었는데.. 에휴~





(꽃 장식.. 삭막판 콘크리트 벽이 한층 정겹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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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카페들.., )

노상카페는 눈에 익은 정겨운 풍경이지만
성령교회 건물에 다닥다닥 자리잡고 있는
기념품 상점들이 특이하다.











(멀리서만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성)

하이델베르크 성은 13세기에 축성된 이후로
수 차례나 파괴되고 복원하고 확장하고 다시 파괴되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하이델베르크의 랜드마크가 되어
수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난공불락같은 요새였던
하이델베르크 성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독일에서는 개신교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교회 간에 발발한 종교 전쟁(30년 전쟁)
기간 동안 하이델베르크 성은 양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점령당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30년 전쟁이 끝난 이후 재건축 작업에 착수했으나
1689년과 1693년 루이14세의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제대로 된 복원 작업이
이루어질 수가 없어 성은 더욱 더 황폐해졌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성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1764년 낙뢰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여
성의 일부가 또다시 훼손되어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제일 아래 단면도 같이 잘린 건물이 화약탑인데
벽의 두께가 무려 7m나 된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성에 있는 포도주 술통(Heidelberg Tun))

1751년 선제후 카를 테오도어 때 제작한 것으로 용량이
22만 리터가 넘는 세계에서 제일 큰 술통이라고 한다.







(독일에서 最古의 하이델베르크대학교)

1386년 교황 우르바누스 6세의 승인을 받아
프라하대학과 빈대학에 이어 세 번째 독어권 대학으로 설립.
30년 전쟁(1618∼1648) 이후 쇠퇴하였다가 프랑스혁명 전쟁 이후
옛 명성을 회복하여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대학이 되었다고 한다.
600여 년간 오랜 역사와 함께 각 분야 학문 연구의 터로 자리잡으면서
전 세계 수 많은 학자와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드는 대학으로 성장했다.
대학의 중앙도서관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풍부한 자료로 유명하며,
특히 12세기 말부터 14세기 초에 걸쳐 작성된 필사본들은 그 사료적
가치나 문학적 가치를 따지기도 어렵다고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마크 트웨인, 이마누엘 칸트, 칼 야스퍼스,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알프레트 베버 등 이 대학출신 유명인사들.
세계의 유명대학과 역사나 실력으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데
자료를 찾아 봤더니 2013년 독일 대학 랭킹 1위였다.

독일의 대학들은 순수학문의 추구, 연구, 지식의 전수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고 한다. 독일의 대학에서 직업 준비는 2차적
목적이었지만, 시대가 변하여 대학교육의 이상도 변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로 1950년에는 대입적령 학생의 6%만이 대학에 진학했으나,
근래에는 중등학교 졸업생의 1/3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독일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에는 종합대학 103개, 예술대학 52개,
전문대학 164개를 비롯하여 373개의 대학이 있으며
대학생 수는 221만 명 가량 된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 학생감옥)

1712년부터 1914년까지 하이델베르크 대학 구내는
치외법권 지역.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규칙을 어긴 학생들은 자치기구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처벌을 받았는데
그 당시에 학생들을 일시적으로 감금해 놓던 장소가 바로 학생감옥.
1차 세계대전 이후 문을 닫고 지금은 관광용도로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감옥은 잘못에 따라 1일에서 30일까지 빵하고 물만 주면서 가두었지만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되기 때문에 강의시간에는 나가게 했다고 한다.
학생감옥에 들어가 보면 당시 대학생들의 낭만과 고뇌 등이 벽과 천장에
여기저기 낙서로 남아 있으며 한 때는 대학생활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치고 감옥행을 자처한 학생들도 있었다고..





(골목길은 이렇게 정감있고..)







(주택가는 숲과 어울어진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하이델베르크 연대기와 옛 모습)

안내판의 연대기는 독일어라서 알 수 없고..
그림에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의 옛모습과 하이델베르크 성의
옛모습도 뚜렷이 잘 표현되어 있다. 성령교회는 그 당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도심의 중심에서 우뚝하게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성곽이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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