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3. 00:04ㆍ山情無限/백두대간(完)
백두대간 12차 (12구간 : 윗왕실재에서 비재까지)
산행일자 : 2006. 9.16(토) 04:35 ~ 16:45 (12시간 10분)
산행날씨 : 출발시 약한 비, 흐림
산행거리 : 도상거리/32㎞ 누적거리 : 270.7km
산행코스 : 윗왕실재-백학산-개머리재-지기재-신의터재-윤지미산-화령재-봉황산-비재
소 재 지 : 경북 상주시 내서면, 모동면, 모서면, 화동면, 화남면, 화서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9/15
② 구간별 산행 시간
10:50
③ 복귀
18:00 비재 출발
2.
자정이 다된 시간에 그것도 태풍 "산산"의 영향으로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 배낭을 메고 산에 간다니 걱정하는 아내도 아내지만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은 무슨 별종이라도 만난듯한 표정이다.
이번 구간은 은근히 걱정이 되는 구간이다
백두대간 중에서 고도가 제일 낮은 지역이긴 하지만 지난 달도
통상적으로 큰재에서 자르는 구간을 10km나 더 지난 윗왕실재에 잘랐고,
이번에도 화령재에서 8km나 더 지난 비재에서 잘라
3구간을 2구간으로 만들다 보니 무려 32km가 넘는 거리다.
요즘 들어서는 산을 오를 때 힘이 부칠 때가 많아
그동안 게으름을 피웠던 헬쓰까지 하면서 이번 구간을 대비해 보지만
은근히 민폐끼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동하는 동안 눈을 좀 부쳐야 하는데
무지개 식당까지 오는 동안 한 숨도 못자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3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대간종주를 하려니
언제 끝날까 하는 조급함에다 한 달에 한번 가는 대간길이 성에 차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미 계획된 일정을 변경할 수도 없고…,
하여 중간에 시간을 내어 낙남정맥을 뛰어 보지만
대간 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기가 쉽지않다.
흔히 말하는 대간병이 정도를 넘는가 보다.
어젯밤 울산을 출발할 때 퍼붓던 장대비는
대구를 지나면서 멎기 시작했지만 산행 들머리에 도착하자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우중산행 준비를 하여 칠흙같은 밤 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누가 대신 가 줄 수 없는 대간 12구간을 이어가기 위해 고갯길을 오른다.
윗왕실재 절개지를 타고 백학산을 향하여 잠시 오르면 480봉이다.
이리 저리 방향을 틀며 이어진 길은 키 낮은 잡목으로 마치 장애물 경기하듯하다.
엉거주춤 자세를 낮추어도 가지가 부딪히고 연신 모자가 벗겨진다.
(윗왕실재를 출발한지 1시간 여만에 백학산 정상에 올랐다)
숨을 헐떡이며 오른 봉우리가 백학산인줄 알았는데…,
백학산은 높낮이가 비슷한 세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어 조금 더 진행하자 나타난
세 번째 봉우리가 정상이다. 온 산을 하얀 학이 뒤덮었다 하여 백학산이라는데
대간길에서 제일 풍수가 좋은 위치라고 용철씨가 귀뜸한다.
산행하다보면 가끔 길을 잘못들어 되돌아 오기도 하지만 오늘은 좀 특별한 것 같다.
백학산에서 길을 잘못들어 되돌아 나와 오른쪽으로 90도 꺾여난 대간길로 들어섰다.
비탈길을 10여분 내려와 먼동이 틀 무렵 백두대간이 잘려진 임도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며
인원을 확인하니 우리가 알바하는 동안 몇 명이 빈다. 먼저 출발해 버린 것이다.
웃지 못할 해프닝은…오늘따라 무전기도 없으니...,
먼저 대간길로 들어선 위겸씨와 김대장 일행은 우리가 앞서 간 줄로 알고
우리를 따라잡기 위해 내달리고…, 우리는 또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내달리고…,
쫓고 쫓기는 대간길…, 40분 여를 달려 개머리재에서 김 대장을 따라 잡았는데…,
위겸씨 일행은 보이지 않아 택명씨를 비롯한 대간 준족들이 다시 따라잡기 위해 나섰는데…,
비재에는 선두에 섰던 위겸씨 일행이 제일 늦게 나타난 것이다.
(개머리재)
(가을은 사과를 빨갛게 물들이고...)
선두를 쫓느라 그렇게 높낮이가 없는 능선을 내달려
골풀이 무성한 농로 오른쪽 대간 마루금으로 내려서면 인삼밭이 나오고
가을 햇살을 받아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밭이 있는 개머리재다.
백학산 내려 올 때부터 길을 덜내고 신고 온 등산화가
오른쪽 복숭아뼈 윗쪽 힘살을 아프게 하여 신경이 쓰였는데
선두를 따라 잡느라 바쁘게 걷다보니 스치기만 해도 아플정도로 부어 올랐다.
손목보호대를 덧씌어 보지만 별무 효과다.
아직 갈 길이 구만린데 오늘은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다.
(김대장은 만났는데... 선두는 어디로 갔는지...)
개머리재 옆 포도원 옆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지기재로 향한다.
개머리재에서 10여분 전진하면 왼쪽으로 비포장 도로가 보이는 380봉에 오른다.
잠시 내려서면 선유동 삼거리인 비포장 도로를 만난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선유동 마을이다.
(어릴적 추억을 떠 올리게 한 여뀌가 가득한 밭)
숲사이로 지기재의 포장도로가 보이고 군침을 흘리며 사과나무 과수원을 지나간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서 내려서다가 다시 올라서면 430봉이다.
키 큰 전나무 숲을 지나 어릴 때 시냇가에서 물고기 잡는다고
한 아름씩 베어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돌로 찟던 "여뀌(Water pepper)" 가
가득한 밭을 통과하니 지기재다. 지기재는 상주 모서면과 내동면을 연결하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가로질러 지나간다.
(금은골 마을입구에 무궁화가 활짝 피었다)
지기재를 지난 후 신의터재 가는 길,
금은골 진입로를 따라 가다 입구에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 마을을 좌측에 두고 진행한다.
묘지가 있는 오른쪽 주능선을 따라 금은골 뒷산을 통과한 후
안숙밭골 논길과 완만한 능선길을 걷는다.
지기재에서 신의터재 가는 구간은 야산의 잔솔나무 지대와 많은 과수원과 밭, 농로 등
지그재그로 얽혀있는 산길을 가기 때문에 길을 찾느라 애를 먹는 곳이다.
또한, 빽빽한 잡목과 덤불 숲은 장애물 통과하듯 자세를 낮추어도
연신 배낭을 잡아 당겨 진행이 힘든 구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에서 빗물을 다 털고 가니 다행이긴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 초창기에는 길을 뚫을 수가 없어 마을로 우회해서 지나간 지역이라고 한다.
다른 구간은 산이 높아도 고속도로 같지만…
(신의터재/280m)
커다란 표지석이 있고 금강과 낙동강 분수령 간판,
그리고 의병장 김준신 의사의 유적비가 있다.
쉼터까지 아담하게 꾸며놓아 대간꾼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소공원이다.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여기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신의터재는,
“임난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리었고 임난 때 의사 김준신(金俊臣)이
이 재에서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많은 왜병을 도륙하고
임진 4월 25일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터재'라 불리었으나,
일제때 민족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어산재'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교육의 장으로 삼고저
옛 이름인 '신의터재'로 다시 고치다.
1996년 12월. 상주시장”
점심을 먹고 곧바로 304봉을 향하여 오른다.
처음부터 완만한 구간이어서 좋다.
왼쪽의 포장도로를 보면서 계속 동쪽으로
완만한 잡목이 우거진 능선 길이 이어진다.
329.6봉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넘어서자마자 나오는 사거리가 영안동과 장자골 가는
고갯길이다. 잠시 오르다가 완만한 길은 360봉을 올라서서 동쪽으로 향한다.
(윤지미산)
무지개산을 바라보면서는 북쪽으로 오르다가 작은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무지개산 삼거리. 무지개산을 왼쪽으로 돌아 진행하는데 기복이 심하지 않다.
지난 밤 뜬눈으로 지샌 탓일까 졸며 걷는데 마침 쉬어 가잔다.
쉬는 동안에 배낭을 베고 누워 나보다 더 졸리는
승엽씨와 10여분 동안 달콤한 잠을 자고 다시 출발한다.
무지개산 내리막길 340, 390... 300m급 봉우리가 올망졸망하다.
끝없이 고만고만한 산들의 오르내림이 호젓하다.
서쪽으로 내려서면 골티재이다.
안부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무지개폭포, 산데기못을 거쳐 골티로 내려가는데 대간길은 직진이다.
437.7봉까지는 잡목이 무성한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들을 계속 지난다.
437.7봉을 지나 힘들여 올라가니 윤지미산 정상이다.
뜻은 알 수 없으나 산 이름이 참 아름답다.
윤지미산(538m)
이름표를 돌무덤에 세워놨다.
백학산 이후 지기재에서 화령재까지의 야산길이 좋았다.
화령재 건너 봉황산의 능선에 오르기까지는 윤지미산이 한자리 하고 있는 셈이다.
고만고만한 전위봉도 몇 개 거느리고 있어 야산이지만 제법 힘을 쓰게 한다.
더 이상 비가 올 것 같지도 않아 비옷을 반바지로 갈아 입었다.
휴! 이제 좀 살듯하다.
새 신발에 물 넣지 않으려고 미련스럽게 여기까지 오버 트라우져를 입고 왔으니…
윤지미산을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다.
오른쪽 발목 통증이 심해 제대로 걷기가 힘든다.
내리막길에서는 더하다. 같이 출발한 일행은 이미 저 아래 숲길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 그냥 갈 수 있겠는가?
숲 속에 노란 망태를 뒤집어 쓴 버섯이 자기를 이쁘게 담아 달라는것 아닌가!
그렇다! 대간길에서 멋진 사진 한장 담을 여유가 없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지...
(청원-상주간 고속도로가 발 밑을 지나간다)
비탈길을 계속 내려온 안부에서 왼쪽 계곡으로 빠지는 것 같지만
조그만 봉우리를 내려서면 나오는 임도를 따라가다 다시 오른쪽 길로 올라
봉우리 오른쪽으로 꺾으면 공사중인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터널 위다.
이어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서면 화령재다.
(화령재)
화령재(320m),
도로 옆에는 큼직한 표지석에 화령재 해발 320m라 적혀 있고
언덕위에는 "화령정"이라는 아담한 팔각정이 서 있다.
또 동쪽으로 낙동강과 서쪽의 금강으로 나뉘는 '분수령'(分水嶺) 표지판과
백두대간 종주 안내판도 있다.
간식을 들면서 휴식하는데 서울서 온 대간팀 기사분이
봉황산 오르는 들머리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을 해줘
여태 아끼며 남겨 두었던 물을 벌컥벌컥 마시니 힘이 솟는다.
신라시대 이후 경주와 더불어 경상도(경주+상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상주는,
국수봉에서 속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구간으로 멀리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넓은 들녘을 적시며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예로부터 쌀, 목화, 누에고치를 일컫는
'삼백'(三白)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화령재에서 왼쪽으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200여m쯤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 화살표 “문장대” 이정표가 있다. 상곡1리 돌기둥이 있고 그 길 건너편이 들머리다.
민가에서 텅빈 물통 가득 물을 채웠다. 호주머니 돈이 있어야 어깨에 힘이 주이듯
물통에 물이 가득 차야 마음이 놓인다.
도로에서 본 봉황산쪽 산등성이가 제법 고도감을 느끼게 된다.
(봉황산을 향하여...)
화령재에서 출발하여 잡목 숲을 헤치며 450봉을 통과하고
입산금지를 알리는 경고판과 함께 대간길을 따라 줄을 쳐 놓은 송이 밭을 왼쪽에 두고
계속 진행한다. 산불감시 전망대가 있는 570봉까지 힘든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힘이 든다. 아! 쉬어가고 싶다.
(전방이 조망된다. 지금도 힘이 드는데 불쑥 나타난 봉황산이 기를 죽인다)
(오늘 구간에는 유난히 꽃며느리밥풀이 많다. 이 지역 며느리들도 시집살이도 심했겠지?)
(봉황산 왼쪽 방향 마을)
(봉황산 오른쪽 방향 산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산불감시초소(570m),
봉황산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정상이 지척인데도 진도가 안 나간다.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상당한 급경사를 치고 올라가니
진행방향 좌측으로 평화로운 마을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산너울이 춤을 춘다.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주니 여기서 잠깐 쉬어가야겠다고 앉았는데
뒤따라오던 김대장과 명호씨가 올라온다.
봉황산 정상까지 많이 남은 줄 알고 쉬었는데
조금 오르니 봉황산 정상이다.
무슨 이유로 깊은 산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지,
산을 오르는 행위란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한발 두발 고통을 참으며
내면의 산을 쌓아 올리는 일인가?
때로는 인생의 비밀을 찾아 진지한 사색에 잠겨볼 만도 하다.
(이번 구간의 최고봉 봉황산)
봉황산(740.8m)
정상에는 상주시청 산악회에서 새운 정상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종의 태를 묻어 태봉산이라고도 하고
옛날 봉황새가 살았다는 봉황산은 깨끗한 모습의 삼각형 산으로 정상은 그리 넓지 않았다.
정상에서는 나뭇가지가 가려 조망이 신통치 않아 정상석 위에 올라
백두산과 금강산을 향해 카메라를 가눠보지만 형제봉이 막아 선다.
금강산은 향로봉에서나 볼 수 있으려나…,
앞으로 계속 북진할 백두대간 산줄기는 추풍령 이후 낮추었던 지세를
다시금 일으켜 세워 옹골차고 우람한 산들이 줄지어 버티고 있다.
김대장이 벌써 비재에 도착한 택명씨와 통화를 했는데…
위겸씨 일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단다. 무슨 일이 잘못되지 않아야 할 텐데…,
봉황산을 내려서는데… 길 옆에는 간간히 보이던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군락을 이뤄
가을을 물들이고…, 왠 꽃며느리밥풀은 오늘 구간 내내 피어 사람을 심란하게 하는지…,
그동안 2구간이나 빠졌던 명호씨가 많이 힘든 것 같다.
길섶의 야생화에 홀려 가다보니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구절초가 피면 가을이 오고 구절초가 지면 가을이 간다지...)
봉황산 구절초
백두대간 길에 소요가 일어난 듯,
유배라도 온 듯 옹기종기 구월의 하늘엔
운명의 꽃, 바람꽃이 피었구나
봉황산을 타고 내리는
옅은 햇살 구름 속을 걷는 바람아
생명을 실어와 순결의 꽃 피웠구나
구절초, 산 꼭대기에 핀 구절초
노란 배꼽 드러내고 하늘을 보는 너는
가을의 혼이었구나.
(때로는 나무도 산꾼들같이 물통을 차고 있었다)
(비재 직전에 만난 늘씬하게 쭉쭉뻗은 전나무 숲)
비재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은 기대하지 않지만…,
대간 길 마지막 봉우리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 이제 끝일까 하면 또 나타난다.
그래도 야생화가 반기는 호젓한 길 조금씩 고도까지 낮추니 산행길이 즐겁다.
오른쪽에 비재로 올라오는 포장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내리막길 하늘을 찌를 듯 키 큰 전나무 숲에 들어서니
비재를 오른다고 용쓰는 화물차 소리와 간간히 사람소리까지 들린다.
저 아래 다음 구간에 오를 철사다리가 절개지에 서있는 비재가 눈앞에 나타나고,
저 아래는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도 길섶에 자리잡고 쉬고 있는 것이다.
(비재, 우리를 태워갈 버스는 길섶에서 대원들을 기다리고...)
장장 32km가 넘는 길을 무사히 걸었다.
힘이 들었기에 더 성취감도 느낀다. 앞으론 좀 더 겸허한 자세로 산을 대해야겠다.
특히 대간길은 충분한 휴식과 워밍업, 그리고 아무리 좋은 신발이라도
세번 이상은 신고 길을 낸 후에 대간길에 나서야 한다.
기본을 무시한 결과 값진 경험을 한 12차 대간길이었다.
항상 수고하는 김영진 대장,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은 윤종하 총무,
배종균 기획, 김명호 홍보을 비롯한 운영진들과
풀숲의 이슬과 비를 다 털고 헤치며 앞에서 길을 끄는
이택명 사무국장이 고맙고 감사하다.
무사히 종주한 대원들 또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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