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도장골로 올라 청학연못, 거림옛길로..

2014. 8. 17. 23:54山情無限/지리산

 
 


지리산, 도장골로 올라 청학연못, 거림옛길로.. 
(산에 들 때는 준비도 하고, 산에 대한 예의도 갖춰야..)



○ 2014. 8. 5(화)    날씨 : 흐렸다 갬
○ 도장골 - 시루봉 - 청학굴 - 청학연못 - 음양수 - 거림옛길
○ 무제, 장보, 시나브로





이번 휴가는 유유자적 지리종주를 할까
아니면 대피소를 한 곳 잡아놓고 지내며 지리의 풍경이나 담아 볼까하고
대피소를 예약하러 국립공원대피소 예약 사이트에 들어 갔더니만 그동안
대피소 예약방식도 변경되고 이미 가고자 하는 날짜는 예약마감 상태.
대피소 예약시스템이 바뀐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니.. 그동안 산에는 못가도
맘은 산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산에서 멀어져 있었던게 실감난다.
어떻게 할까? 마침 무제님이 올해도 지리산 자락에 있는 친구의 별장을 빌렸다기에
와이프와 합류하기로 했다. 그런데 태풍 '나크리'가 지리산 인근에 400mm의 폭우를
쏟아붓고 계속 비가 올 것이라하여 나만 하루늦게 2박3일 일정으로 합류했다.
첫날, 둘째날은 말 그대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오랫만에 지리에서 휴식하며 청학동,
남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특급 전망대 금오산,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로
회남재를 돌아, 고운호 등을 드라이브하며 시간을 죽이며
말 그대로 휴가다운 휴가, 부담없이 즐기고 있었다.
 
정말 멋진 휴가다. 무제님과 휴가를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은
계속 비가 와서 산행을 못할 줄 알고 합류를 했다. 같이 산행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했다. 그는 신백두대간을 12번만에 끝낼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철각의 산꾼인데다, 내 몸상태가 지리산을 헤집고 다니기엔 무리였기 때문이다.
올들어 산행이라고는 겨울 한라산 한 번 가고 얼마전 박배낭 메고 신불산
한 번 오른 것이 전부이니 이런 상태로 지리산 빨치산 산행을 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솔직히, 마지막 날도 비가 오기를 바랬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기대와 달리 파란 하늘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산행은 도장골로 올라 거림옛길로 내려 오겠다고 한다.
거림옛길.. 안 가본 길이어서 평소 같으면 쾌재를 불렀을텐데..
오늘은 영 아니다 그렇지만 일단은 산행채비를 하고 나섰다.
도중에 힘들면 탈출하든지 아니면 거림옛길로 가지않고
세석에서 주 등산로로 내려 올 심산으로..





(거림, 작년 가을에 내려오고 처음 오른다)





(길상사 방향)





(05:15, 도장골로 접어 들었다)

지리산이면 그저 좋은데 코스가 정말 좋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도장골에서 촛대봉으로 오르는 것도 좋고,
연하봉으로 올라 주능선을 촛대봉까지는 오는 코스도 좋다.
연하봉에서 촛대봉 오는 구간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구간인데,
연하선경으로 지리8경으로 꼽힌다. 난 겨울 모습에 끌려 해마다 그 길을 걸었다.
오늘은 시루봉쪽으로 올라 청학굴과 청학연못에도 들렸다가 빨치산 산행으로
잡목숲을 뚫고 세석대피소 턱밑까지 갔다가 잠시 낙남정맥이 지나는
추억어린 남부능선을 조금 걷다가 거림옛길로 내려와
북해도교에서 거림 주등산로와 합류하는 코스.

지리산 아흔아홉골 사연없는 골이 없지만 도장골과 대성골은
민족의 상흔이 가시지않은 현대사 비극어린 골짜기.





(어제까지 내린 비로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이영회부대 안내 간판, 참고사진)

지리산 아흔아홉골 사연없는 골이 있겠냐만
도장골 역시 우리 현대사의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남아있는 골짜기로
민족사의 불행이 잉태되던 시기 빨치산 최후의 여공비 정순덕이 남편을
찾아 나섰던 골짜기로, 1951년 게릴라전이 활발했던 이영회 부대의
아지트가 있던 곳. 도장골은 그 때의 그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두색 숲에 이깔나무만이 하늘을 찌를듯 자라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산죽과 연두색 숲, 그렇게 그리던 호사스런 지리산의
품에 들었는데.. 이 무슨 낭패람..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30분 정도 걸을 즈음 숨이 탁 막힌다. 더 이상 가기가 힘들 것 같다.
지리산에 들면서 이렇게 준비없이 들다니..
당연하고 지리산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계곡으로 내려 서서 잠시 쉬었다.)

무제에게 난 그만 계곡에 쉬다 돌아 갈테니 두 사람만
가라고 했더니.. 좀 쉬었다 천천히 가자고 한다. 무리하지 말고
가는데까지 가 보기로 했다. 쉬고 나니 많이 나아졌다.
산에는 장사가 없다. 열심히 다니는 수 밖에는..





(잠시 작전타임, 오늘 갈 길을 가늠해 보고..)





(폭포가 아닌 곳이 없다)





(몇 번을 다녀도 이런 모습은 못봤는데..)







(와룡폭포도 물소리가 요란하다)

멋지게 한 컷 찍어야 하는데 카메라까지 매뉴얼이
안된다. 카메라도 주인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도장골은 이전에 물이 너무 많아 계곡산행을 포기한 적이 있고,
또 한 번은 계곡이 말라서 계곡산행의 재미가 없었는데,
오늘은 조금 미끄럽긴 해도 물이 많아서 좋다.





(계곡산행은 물이 많아야 제맛이지..)







(합수부 폭포, 물줄기는 바위도 뚫을 듯.. )

원시의 신비를 간직한 도장골은
80년대 중반부터 지리산꾼들에게 알려졌다고 하는데,
'지리산 최다폭포의 한신계곡, 소와 담의 뱀사골,
원시적 경관을 자랑하는 칠선계곡의 특징을
합쳐놓은 것 같다'고 한 표현이 실감난다.

물줄기는 민족의 아픔을 씻기라도 하려는듯..







(계곡을 버리고 시루봉 방향으로..)

시루봉 방향 등로가 뚜렷하지 않아 조금 헤메다
등로에 들어섰다. 어떤 산꾼이 이정표가 하나도 없는 것과
길이 확실치 않은 것이 도장골의 매력이라고 하더라만..









(이 심심산골에서도 반기는 것들이 있었으니..)

?, 참취, 말나리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이렇게 호젓한 길도 있다. 오늘은 이런 길이 딱 좋다.
문수산이라도 올라보고 올 껄.. 그래도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
이제 걷는 것이 힘은 들어도 숨이 차지는 않다.





(하긴, 산행에 암릉 구간이 없으면 무슨 재미..)







(행복이란 파랑새가 아니다)

성취주의자는 미래의 노예로 살고,
쾌락주의자는 순간의 노예로 살고,
허무주의자는 과거의 노예로 산다.
행복은 산의 정상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고
산 주위를 목적없이 배회하는 것도 아니다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이다.

탈 벤-샤하르의 '해피어'中





(잘 생긴 주목..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갑자기 몰려 오는 구름)





(뭔 사진이 이래요..)









(사람도 산에 들면 자연의 일부)





(장보님과.. )







(구름은 많이 바쁜듯..)





(청학굴에도 들려 보고..)

시루봉에서 치고 오르면 등로에서 멀지않은 곳에 청학굴이..
요즘은 박꾼이 줄어든듯.. 박터에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우뚝한 촛대봉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듯..)

미안하지만, 오늘은 옆길로 빠져 버리려구요.







(구절초가 핀걸보니 벌써 가을이 가까이 온듯..)

하긴, 내일 모래가 입추아닌가? 나만 계절 바뀌는 줄 몰랐지.





(시루봉 방향, 젖꼭지 같은 시루봉)











(오랫만에 들린 청학연못)

오늘은 찾는다고 주변에서 제법 헤맸다.
찾기가 쉽지않은데 늘 올 때마다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니 더 어렵다. 앞서 간 무제님이 찾았다고 소리친다.
찾고 보니.. 역시 길목이 중요하다.

청학연못의 크기는 넓은 곳이 15m, 좁은 곳이 6m 정도되는
타원형으로 깊이는 대략 1m 내외로 예상한다. 샘에서 나는 물이
연못을 이루는데 윗쪽은 대슬랩에 접해 있고 아래 쪽은 인공으로
쌓은듯한 둑모양으로 되어 있다. 청학연못의 조성시기에 대해서는
대략 2가지 설로 나뉘는데, 150년 전쯤으로 보는 견해와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록이 있다는 견해.











(오랫만에 왔으니 실컷 머물다 가자)

청학(靑鶴)은 날개가 여덟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얼굴이 사람같이 생겼다는 상상의 길조(吉鳥)로서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전설의 새라고.. 이 새가 울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하여
옛 사람들은 청학이 사는 청학동을 신선의 고장이라 여겼다고 한다.
이상향의 청학동 위치는 지금의 삼신봉 아래 청학동과는 다른 개념.
지금 청학동이라 부르는 유불선갱정유도교를 신봉하는 도인촌에
사람이 살게된 것은 불과 몇 십년전의 일로 지명도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다.





(청학연못에서 빨치산 산행으로)

처음에는 잡목숲 속으로 흐릿한 길이 보였으나
얼마가지 않아 길이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바람에 한참동안
빨치산 산행으로 세석대피소 턱밑으로 빠져 나왔다.
잡목 숲은 키 큰 사람에게는 장애물 경기..







(세석대피소 샘터 근처에 피어있는 동자꽃과 초롱)







(청학동, 의신마을 방향으로 직진)







(양지꽃과 산오이풀)

돌양지꽃 같은데.. 이렇게 키가 큰 녀석은 처음,
식물은 생장환경이 안 좋으면 꽃을 더 많이 피우고,
햇볕이 부족하면 키를 더 키운다더니.. 이 산중에서도
인간 세상같이 살기가 각박한 건 아닌지?





(음양수 샘에서 석간수 한 잔 마시고..)





(청학동, 의신방향으로 가다가)

잠깐이지만, 남부능선 길을 걸었다.
낙남정맥 타던 생각, 남부능선에 깃들인 추억이 되살아 났다.
언제 걸어도 좋은 길, 비 오는 날 걸으면 더 정감있는 남부능선.
여럿이 걸어도 좋고, 혼자 걸으면 더 좋은 길..







(싸리꽃과 연보라비비추)





(샛길로.. 이 길이 거림옛길)

음양수 샘에서 조금 내려서서 좌측 샛길로 들면
북해도 교에서 주등산로와 합류한다. 들머리는 제대로 들어 섰는데
길 찾기 쉽지않았다.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우거진 풀숲사이로 난
희미한 등로를 찾아 제 길로 들어섰지만 그 바람에
우천의 기도터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이런 이정표도 만나고..)







(북해도까지 오는 동안 3번 정도 계곡을 건넌다)

처음 힘들었지만 무사히 시루봉도 오르고 촛대봉
턱밑까지 무사히 올랐다. 청학연못을 보니 새 힘도 생겼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잡목 숲 헤쳐나오느라 많이 힘들었다.
너덜이 심한 거림옛길을 내려서는데 무릎에 신호가 왔다.
무리했다는 증거다. 무릎 보호대를 하고, 카메라는 아예
배낭 속에 넣고 조심조심 걸었다. 그 바람에서
좋은 풍경 몇 컷은 놓쳤지만..





(드디어 북해도교, 거림 주 등로와 합류했다.)





(수량많은 폭포앞에서 마지막 한 컷)







(드디어 날머리)





(탐방로 안내판)





(단성으로 나와 목화추어탕집에서 저녁먹고..)

무제님과 장보님은 울산으로, 나는 시골로..





(산행코스, 우리는 녹색선으로..)

생각잖게 지리산을 걸을 기회가 왔다.
지리산길을 걸으니 행복했다. 준비없이 지리에 든 것이 예는 아닌듯..,
경을 치렀으나 무사히 산행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비록 민족사 비극의 현장,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있는 도장골은 그 때의 원혼을 씻기라도
하려는듯 몇 일 동안의 큰 비는 계곡의 물이 넘칠 정도로 세차게 흐르며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덕분에 도장골 계곡산행의 묘미를 어느 때 보다 더했다.
오랫만에 들린 청학굴.. 청학연못은 언제나 처럼 평온한 모습 그대로 였다.
거림옛길 너덜을 내려서면서 산은 정직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로 한동안 산을 찾지 못했는데 시간을 내어야겠다.
2박 3일 동고동락한 장보님과 여름 휴가를 지리산에서 보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고, 하동의 구석구석 안개 속에 오른 금오산,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길 회남재까지 드라이브로 안내해 주고, 마지막으로
오늘 멋진 산행까지 안내해 준 무제님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아! 지리, 지리 속에 있어도 그리운 지리.
지리산 갈 계획부터 잡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