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다양한 문화의 보고
2015. 8. 17. 01:42ㆍ여행/여행기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여행기 (1/2)
(스페인에는 스페인 사람이 없다.)
○ 2015. 7. 10 ~ 21 날씨 : 맑음, 무더움
▶ 스페인 (바로셀로나/사라고사/마드리드/똘레도/콘수에그라
코르도바/그라나다/미하스/말라가/바누스/타리파/론다/세비야)
▶ 모로코 (탕헤르/카사블랑카/라바타/페스)
▶ 포르투갈 (파티마/오비도스/신트라/까보다로까/리스본)
▶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을 두고 어느 나라를 먼저 가 볼까 견주다
스페인을 먼저 가 보기로 했다. 두 나라 모두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여러 민족의 침략을 받고, 다양한 문화와 접촉한 역사를 가진 나라들이다.
스페인은 800년 가까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으나 현재는 가톨릭 국가이고,
터키는 특정종교를 국교로 정하지도 않았고,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어
타 종교를 믿는 국민도 있지만, 국민들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고있는 이슬람 국가이다.
이번 여행은
지브롤터 해협 건너 아프리카 모로코까지 잠깐 들리는 여정이다.
우선은 오랜 역사와 전통, 다양한 문화를 만날 것이 기대되지만,
이열치열은 덤이 될 것 같다.. 현지는 건기여서 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기온이 42℃까지 오른다니 더위와 한 판 해야 할 것 같다.
낯선 환경,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며,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고 있을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6개월 전에 계획을 세운 여행이지만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했던
메르스 사태로 여행을 제 때 떠날 수 있을까 가슴 졸이며 준비한 여행.
다행히 7월로 접어들면서부터 메르스 사태가 진정세로 돌아서면서 긴
터널의 끝이 보였다. 국가적으로는 더 큰 혼란과 피해가 없어 다행이고,
개인적으로도 계획한 날짜에 여행을 떠날 수 있어 감사하다.
유럽의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는 시점이긴 하지만
때를 잘 맞춘 것 같다.
(타고 갈 비행기와 첫 대면.. KLM)
스페인을 향하여 ☞ 사진 클릭
(Amsterdam schiphol 공항을 경유하여)
(다시 2시간 반을 더 날아 바로셀로나 상공)
(바로셀로나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각 10:30)
드디어 스페인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진 나라.
아랍인의 지배를 받아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는 나라.
17개의 자치주로 나뉘어 있는 스페인은 지역에 따른 지방색이 분명히
갈리는 나라. 오히려 나라보다는 자기가 태어난 지방(고향)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나라. 수 많은 민족과 인종이 섞여있고,
지방색이 강하고 사람마다 성향이 너무 달라서 "스페인에
스페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나라.
역사 문화적 차이로 인해 지금도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지방색 강한 다양성의 나라 스페인.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우리와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살아 가는지를 체험하며 느끼는 것이
(제일 처음 찾아간 곳은 몬세라트 수도원)
공항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영산 몬세라토 산(해발 1236m)에 자리하고 있다.
몬세라토 산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할 때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산으로 11세기에 베네딕트 수도원이 세워져 성모 마리아
신앙의 성지로서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의 종교적 터전이 되어왔다고 한다.
최고의 볼거리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검은 마리아상'
"라 모레네타". 몬세라트 수도원까지 케이블카와 산악철도가 놓여있다.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하고 내려올 때는 산악철도를 이용했는데
등산코스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 형편이 된다면 절경을 바라보며
등로로 오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에스콜라니아(Escolania) 소년 성가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합창단 중 하나. 성가대원 전원이
수도원 부속기관 '에스콜라니아'라는 음악 교육기관에서 수준높은
교육을 받고 있어 가창 기술이 상당히 높은 경지에 다달아 있다고 한다.
수도원에서는 매주 토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1시에 한 차례
미사를 드릴 때 소년성가대가 성가를 부른다고 한다. 지금은
방학기간이라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성당의 내부와 회랑 모습)
가운데 사진이 '라 모레네타(La Moreneta)'
바로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 자연 채광 모습) ☞ 사진 클릭
바르셀로나. 스페인 제2의 도시.
도시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구시가에는 스페인 전성기 때 지은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신시가지는 19세기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현대 건축물 외에도 당시 유럽에서
명성이 높았던 건축가들의 작품이 거리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지중해에 연한 항구도시, 스페인 특유의 정열을 느낄 수 있는 축구,
리오넬 메시가 속한 바로셀로나FC의 홈구장 캄프 누도 가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제한된 시간 바르셀로나에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비롯한 가우디의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봐야할 것 같다.
(바르셀로나 콜론(콜럼버스) 광장의 콜론 탑)
바다를 향해 우뚝 솟아있는 콜론 동상은 왼손에
미국 토산물 파이프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지중해를 가르키고 있다.
1888년 미국과 카탈루냐의 교류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탑으로
상단부는 시내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라고 한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론, 동상 주변을 감싸고 있는 돌 판화는
콜론이 항해를 떠나기 전까지의 과정이 시기순으로 새겨져 있다.
당시 콜론을 후원한 이사벨 1세 여왕의 모습도 조각되어 있다.
바로셀로나의 첫인사는 강한 햇살, 따가울 정도로 강했다.
바르셀로나 제일 명물 람블라스 거리가 콜론 광장과 연결되어 있어
가 보고는 싶은데 따가운 햇살과 아스팔트 지열에 얼굴이 후끈거려
항구쪽으로 나갔더니 해풍이 시원하게 불어 살만하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광장에는 진기한 물품이 가득한 벼룩시장도
들어섰는데 더위에 지쳐서.. 시간맞춰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온도계가 37℃를 가르키고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약과.
이번 여행의 서막에 불과했다.
(구엘공원..)
'직선은 인간의 선이며,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말한
가우디의 예술세계를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구엘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카사 비센스, 구엘 별장,
구엘 저택,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작품들만 돌아보는데도 하루가 모자랄 것 같다.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이자 파트너였던 구엘 백작이
전원 주택 건설을 의뢰하여 착수, 건설중 공사가 중단되어 원래 60채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3동만 건설되었다고 한다. 가우디는 자연미를 살린 건축물을 짓기위해
산을 깎아내고 흙으로 계곡과 시냇가를 메우는 대신 산의 원형을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구엘공원의 상징물인 모자이크 분수와 구불거리며
가우디의 손길닿은 곳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구엘공원에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자 가우디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대성당.
웅장함에 놀랐고 벽면을 장식한 조각품들에 눈길을 뗄 수 없었다.
1883년 31세였던 가우디는 성당 건축에 전생애를 바쳤으며,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설중이고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단다.
정면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중앙의 첨탑과 4대 복음 성인 마태, 누가,
마가, 요한을 상징하는 4개의 첨탑, 그리고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첨탑이 장식되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는
'성(聖) 가족'이라는 뜻으로,
예수와 마리아, 요셉을 말한다.
(대성당의 내부 모습)
기둥도 나무의 형상이다. 가지가 나뉘고 잎이 달리고..
정말 눈길가는 어느 한 곳 입이 벌어지지 않는 곳이 없다.
자연채광으로 인한 실내 조명은 정말 아름답다. 황홀하기까지 하다.
사진으로 많이 보았지만 실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과연 가우디의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작가의 작품이 세계문화유산에 하나가 등재되기도
어려운데 가우디의 작품은 무려 3개나 등재되었다니..
모두 바르셀로나에서 만날 수 있다.
(사라고사 가는 길의 풍경)
간간이 태양광 발전을 위한 집적판이 눈에 뛴다.
우리도 빨리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과 생명을 담보로 한
핵발전에서 탈피해야 한다.
사라고사 ☞ 사진 클릭
바르셀로나에서 3시간 거리의 에브로 강변에 있는 도시
사라고사는 기원전 로마시대부터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번영했다. 로마제국, 서고트족,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거쳐
1118년에는 레콩키스타(Reconquista, "재정복". 8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기독교 왕국들이 무슬림이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 땅을 되찾기 위해 벌인 전쟁)
의 물결을 타고 아라곤왕 알폰소 1세가 이람교도들에게서 도시를 탈환했다.
그 후 19세기에는 나폴레옹이 거느린 프랑스군의 침입을 받아
전쟁터로 돌변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과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주제를 내걸고
'2008년 사라고사 박람회'가 6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열렸다고 한다.
광장의 물은 다 보이지는 않지만 빙하가 녹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
이제 어느 나라나 물을 물쓰듯 할 수 없게된 것 같다.
(바실리카 필라르 대 성모성당 광장)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실질적으로 독일 이탈리아를 지원해
국제적으로 고립되며 연합국의 폭격을 받아 필라르 성당 돔으로 투하되었던
성모님께서 지켜주신 '기적의 성당'이라 부른다고 한다.
막대기 끝에 꽃다발이 달렸다. 결혼축하 예식인듯..
땡볕에서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필라르 대 성모성당의 내부 모습)
기적의 성당은 돔 보수를 했을테니 폭탄이 떨어진 곳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터지지않은 폭탄은 성당 지하에..
사라고사는 카롤로스 4세 때 활동한 궁정화가
고야의 고향으로, 광장거리에는 고야의 동상이 있다.
그는 사라고사의 필라르 대성당의 천장 벽화를 그리는 작업을 맡았는데..
(마드리드 가는 길 창밖 풍경)
스페인에 왔다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검은 황소 간판 '토로 데 오스보르네'(Toro de Osborne)와
수 없이 많은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는 풍력발전 단지.
1970년대에 오일쇼크로 경제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석유, 가스 등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총수입의 약 25%가 되었지만 현재는 풍력발전을
주력으로 하는 대체에너지 생산과 개발에 선두국가가 됐다고 한다.
풍력발전의 경우, 유럽국가 가운데 가장 위상이 높으며,
이미 2010년 기준 풍력으로 얻는 전력량이 42.976GWh에 달해
전체 전력량 중 16.4%를 풍력으로 충당했다고 하니
지금은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을 것 같다.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의 돈키호테와 산초, 그 리고 세르반테스) ☞ 사진 클릭
해발 646m에 자리잡고 있는 고원도시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1561년 Felip 3세가 수도를 똘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천도한 이후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구시가는 주로 17~18세기에 건설된
거리에도 옛날 모습이 곳곳에 남아있다.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현대적인 빌딩거리가 펼쳐진다.
도심의 대표적인 번화가 그란비아가 시작되는 스페인 광장은
돈키호테의 동상이 있어서 더 유명한 곳. 마드리드에서 생을 마감한 세계적인
동상을 보고 있자니 책에서 보던 돈키호테가 되살아 난듯하다.
스페인에 오게된 이유중 하나가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만나보고
싶어서이기도 한데 마드리드에서 벌써 만났다.
프라도 미술관, 세계 3대 미술관 ☞ 사진 클릭
에스파냐 왕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1819년 페르난도 7세 때
건립되어 왕립 프라도미술관이 되었고, 1868년 혁명 후에 국유화되어
프라도로 이름이 바뀌었다. 건물은 카를로스 3세 때 비라누에바의
설계로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자연과학박물관을 만들 예정이었으나
뒤에 미술관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수집품은 중세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에스파냐 및 유럽
여러 나라의 회화에 중점을 두고, 그 중에서도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 등 3대 거장에 관해서는 질과 양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또 루벤스, 반다이크를 중심으로 하는 플랑드르 회화, 리베라,
무리요, 수르바란 등 에스파냐 화가의 작품수집도 뛰어나다.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세례','부활','성모자','오순절'
,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바커스의 승리'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고야인데, 초기로부터 만년에 이르는 100점이
넘는 유화와 수백 점의 소묘가 소장되어 있는데 '옷을 벗은 마하',
'옷을 입은 마하'를 비롯 '카를로스 4세의 가족','1808년 5월 3일',
'마녀의 집회' 등 각 시기의 대표작들을 소장 전시하고 있고,
보시의 '쾌락의 뜰', 루벤스의 '사랑의 뜰'도 전시하고 있다.
(마요르 광장(Plaza Mayor))
마드리드의 마요르 광장은 펠리페 2세가
1561년 마드리드의 왕궁으로 옮겨온 후 1580년에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가 의해 시작하여 그의 제자인
후안 고메스 데 모라가 펠리페 3세 때인 1619년에 완성했다.
광장 중앙에는 펠리페 3세의 청동 기마상이 있다.
이 광장에서는 투우, 가면무도회, 왕실 결혼식, 대관식 등의
행사도 거행되어 왔고, 아빌라의 테레사, 이시도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등의 성인이 시성을 받은 곳이기도 했다.
또한 17세기 스페인 종교 재판이 성행했을 때 이단자 등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처형당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 보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마요르 광장은 관광객들과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바,
카페, 상점 들이 들어서 있고, 주말이면 야외 골동품 시장이 열리며,
매년 이곳에서 마드리드 시의 수호성인 성 이시드로 축제가 열린다.
한 때는 시장터였으나 16세기에 바로크 양식의 광장으로
탈바꿈했고, 가로 90m에 세로 109m의 넓이로 유럽에서
가장 큰 공공광장 중 하나가 되었다.
(타호강이 3면을 둘러싸고 있어 똘레도는 요새)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중세 도시 ☞ 사진 클릭
마드리드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똘레도는
똘레도 지방의 주도이면서 카스티아 라만차라고 불리는 자치구 주도.
도시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스페인 남부의 정치 경제 사회 중심지로써
풍부한 문화유산을 지닌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좁고 복잡한 거리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똘레도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형성된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한 때 똘레도는 기독교인과 무슬림, 유대교인들이 한데 모여 사는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였으나 무어인(Moor, 북서 아프리카[마그리브[의 이슬람 교도를
가리키는 영어 호칭)들이 추방되면서 이곳은 기독교인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좁은 골목을 돌면서 만나게 되는 이슬람 사원들과 서고트 스타일의 구조물,
유대교회, 르네상스식 궁궐 등은 당시의 흔적을 느끼게 해 준다.
198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지정된 이 도시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관에 매혹되어 거리를 거닐다보면
며칠을 걸어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스페인 르네상스 시대의
그리스인 화가 엘 그레코가 '나의 숭고한 작품'이라고 외친 걸작.
1586년에서 1588년에 걸쳐 그린 유채 그림으로 크기는 480Ⅹ360cm.
이 작품을 보러오는 많은 사람들로 교회가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림은 250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자비로운 톨레도의
귀족이며 산또 또메의 수호성인인 오르가즈 백작을 추모하는 작품으로
14세기의 전설을 토대로, 리얼하고 내성적인 초상을 늘어 놓은
정적인 지상의 매장 장면과 심판이 행해지는 동적인 장신상이
회오리치는 비현실적인 천계를 묘사. 의사공간을 배제하고 지상과
천계가 직결된, 중세적이고 비잔틴적 취향이 짙은 작품.
(골목 사이로 보이는 똘레도 대성당)
톨레도대성당은 고딕양식의 대성당으로, 페르난도 3세가
1227년 건설을 시작하여 266년이 지난 1493년에 완성된 후에도
몇 차례 증축과 개축을 거쳐 지금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똘레도 대성당은 현재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대성당의
규모는 길이 113m,너비 57m, 중앙의 높이 45m에 이른다.
본당 우측 보물실(Sala del Tesoro)에 금과 은, 5000여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진 성체현시대(Custodia)가 유명하다.
(트란스파렌테(El Transparente))
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한 'El Transparente'. 18세기 스페인 건축가인
나르시소 토메는 똘레도 대성당 천장에 구멍을 뚫어서 그 천장구멍으로
들어온 태양빛으로 자신이 만든 이 'El Transparente'를 비추고,
그 빛은 바로크적 제단과 성당이 입체적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빛으로
이루어진 후광을 받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었다.
(성물실의 화려한 천장화)
일데폰소 성인에게 제의를 내리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수 많은 천사들과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루카 지오르다노의 작품.
(천장 장식이 특이하다)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
종루 아래에 있는 소예배당은 보물 보관실.
보물실 보관실 중앙에는 이 성당의 백미, 금은 보석으로 제작된
무게 180kg, 높이 3m나 되는 성체현시대가 전시되어 있다.
눈이 부시고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맨 꼭대기 십자가는 다아아몬드라고 한다.
독일작가 '엔리께 데 아르페'의 작품
성체현시대는 1년에 한 번 성체절에 성체행렬을 하는데
그 때 가마처럼 둘러메고 똘레도 거리를 행진한다고 한다.
성체절은 성찬식 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현존함을 기념하는 축일을 말한다.
(타호강의 오래된 다리를 건넌다.)
(포도밭, 포도주 발효통과 양떼들..)
중부지방으로 내려오니 끝없는 벌판이 펼쳐지고,
광활한 벌판에는 포도밭들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항아리들은 이전에 포도를 수확하여 발효시키던 통이라고..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스페인은 지난해 전년 대비 22% 증가한
2280만 헥토리터(100ℓ,1헥토리터는 포도주 133병 정도)의 포도주를
수출하여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제치고 포도주 수출국 세계 1위에 올랐으나
정작 실속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스페인 와인을 제일 많이 수입한
나라는 와인의 원조 프랑스. 프랑스는 인건비 등으로 상대적으로 값이 싼
스페인 포도주를 대량 수입한 뒤 프랑스 와인으로 둔갑하여 팔고 있다는 것.
프랑스로 수출되는 스페인 포도주는 마진이 적어 수출물량은 크게
늘었지만 오히려 이익은 전년에 대비하여 2.2% 감소했다는 것.
프랑스 다음으로는 독일, 포르투갈, 러시아가
스페인 포도주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들..
콘수에그라에 돈키호테는 없고.. ☞ 사진 클릭
콘수에그라에 라만차 풍차를 향해 로시난테를 타고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상상했는데.. 콘수에그라에는
우리의 용감한 돈키호테도 로시난테도 산쵸도 보이지 않고
풍차만 우뚝하게 서 있었다.
(콘수에그라 풍차와 성)
(여기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
코르도바 (이슬람교와 가톨릭교가 혼재하는 메 스키타 사원) ☞ 사진 클릭
기원전 로마 식민지 시절부터 안달루시아의 중심지이자
로마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10세기에는 이슬람 왕국의 중심지로
발전을 거듭한 코르도바. 현재는 세비야와 그라나다에 밀려 조용한
소도시로 남아있지만 오늘날에도 도시 곳곳에서는 당시의 번영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는 볼거리가 많다.
711년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한 이슬람교도들은 점령한
토지를 알 안달루스(Al-Andalus,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건너온 땅이란 의미)라 부르고, 756년 아브드 알라히만 1세 때
수도를 코르도바로 정한 후 알 안달루스 왕국은 발전을 거듭해 갔다.
10세기에 코르도바는 인구가 50만 명으로 늘어나고 유럽과 북아프리카
이슬람 왕국의 중심지로 떠오르며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과 더불어 유럽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다. 전성기에는
이슬람 사원이 700여 개, 병원이 50개, 대학이 7개에 이르렀고
도서관이 70개가 넘는 학문의 도시이기도 했다.
(메스키타 사원 가는 길)
중세시대, 유럽의 암흑기에 이슬람교가 전파되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들어오면서
황금기를 맞은 코르도바로 유럽 각지에서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몰려 들었다. 몰려든 학생들을 수용하고자 모스크 안에
스페인 최초의 교육기관인 마드라사를 설립한다.결국 이곳에서 시작된
학문의 씨앗이 11~13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나
다른 철학자들의 업적을 후세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레콘키스타 후 코르도바는 쇠퇴하여 1031년 코드로바 왕국은
끝내 멸망하지만 지금까지 이슬람교, 가톨리교, 유대교가
뿌리내린 문화의 흔적들이 공존하고 있다.
(메스키타(Cordoba Mezquita) 사원의 내부)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아브드 알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의 이슬람 사원에 뒤지지 않는 규모의 사원을 건설할 목적으로
785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뒤 코르도바의 발전과 함께 848년, 961년,
987년에 확장하여 2만 5000여 명의 신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완성하였다. 페르난도가 코르도바를 점령했을 때 메스키타의
일부를 허물었고, 카를로스 5세 때에는 이곳에 르네상스 양식의
예배당을 무리하게 사원 중앙에 지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도가 한 곳에 동거하는 사원이 되었다.
그러나 건축이 완성되자 카를로스 5세 왕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건물을 허물었다며
무척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남북 180m, 동서 130m로 현재 남아있는 단일 이슬람사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사원 내부에는 줄무늬 석영, 벽옥, 대리석,
화강암 등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숲을 이룬다. 1293개의 기둥을 세웠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850개. 둥근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서 있어
미궁 속을 연상하게 한다. 적과 백으로 보이는 아치는 흰색 돌과
붉은 벽돌을 교대로 조합한 것이며, 천장의 정교한 모자이크는
비잔티움제국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메스키타 사원 담벽.. 앗 뜨거!)
오늘도 39℃, 햇살은 따갑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해져 우리나라 보다 훨씬 기온이
높아도 견디기는 오히려 나은 것 같다.
(끝도없이 펼쳐지는 올리브 농장)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내려오니 보이는
것이라곤 올리브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앞에서 포도주를 제일 많이 생산하면서도 와인으로 돈은
프랑스가 다 챙기듯 이는 올리브유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
스페인은 세계 최대 올리브유 생산 국가이나 전체의 40%가
이탈리아로 수출되는데 이렇게 수출된 올리브유는 이탈리아에서
병에 담겨져 이탈리아산 올리브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그나저나 올해는 최대 생산국 스페인이 뜨겁고 건조한 날씨로
생산이 평상시의 절반으로 줄어 들었고 2위 생산국인 이탈리아는
비가 지나치게 자주 내리고 초파리가 횡행해 올리브 재배에
어려움을 겪었다니 올리브유 가격이 폭등하지는 않을지..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 사진 클릭
스페인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도시 그라나다.
800년간 찬란하게 꽃피웠던 이슬람 문화와 꾸밈없고 성실한
가톨릭 문화가 융화되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알람브라 궁전. 집시 동굴마을인 시크로몬테,
언덕위의 하얀 동네 알바이신 등 매력 넘치는 볼거리가 풍부하여
만달루시아 지역의 보석이라 불릴만하다.
이슬람 왕조 그라나다의 이븐 알 아미르 왕자는
나사리 왕조를 세우고, 도시 방어를 위한 요새로써 알람브라 궁전을
새롭게 쌓는다. 궁전의 이름인 알람브라는‘알칼라 탈람브라’에서 온 것으로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 궁전(La Alhambra)의 성벽은 2km이고
길이가 740m, 넓이가 220㎡에 달하는 마지막 무슬림의 섬광과도 같이
그들의 혼이 절정을 이룬 건축물이다. 나사리 왕조의 번영기였던 14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주로 세 개의 정원, 즉 맞추카의 정원, 코마레스의 정원,
그리고 라이온의 정원을 기본 축으로 하여 설계된 정원 형식의 건축물이다.
내부는 왕궁, 카를로스 5세의 궁전, 헤네라리페 정원,
알 카사바(성채)로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인 나사리 왕조의 보아브딜 왕은
스페인 국민의 국토 회복 운동에 굴복하여 평화적으로 알람브라 궁전을
카톨릭 왕에게 건네주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때가 1492년 1월,
바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있던 해이다. 이로써 스페인은
1238년부터 시작된 약 8세기 동안의 이슬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근대 스페인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헤네랄리페 저층 정원)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직사각형의 긴 연못과
분수주위에 잘 가꾼 사이프러스 나무와 장미, 미로와 같은
사이프러스 나무 등으로 아름답게 꾸며놓은 정원이다.
(코마레스 궁 아라야네스 중정(Court of the Myrtles))
그라나다의 전형적인 정원으로 직사각형 연못이 있고
양옆으로 아라야네스(천국의꽃)가 심어져 있다. 코마레스 탑이
물위에 비치는 반영으로 유명하다. 이 궁전은 3세기 후
인도의 타지마할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나사리 궁전, 멕수아르 방 벽면.. 경이롭기만 하다!)
나사리 궁전은 유수프 1세때 짓기 시작해
무하마드 5세가 완성한 것으로 알람브라의 핵심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볼 수록 정교하고 신비한 모습에 끌려
눈길이 사로 잡힌다. 아!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회랑에서 본 사자의 정원)
정원 한 가운데는 시간을 알리는 12마리의 사자상이
분수대를 떠 받들고 있다.
(아벤세라헤스의 방(비극의 방, Hall of the Abencerrages))
당시 큰 세력을 과시하며 궁전에서 살았던 아벤세라헤스
가문이 있었는데, 정적이던 헤네테스 가문에서 아벤세라헤스의
귀족이 왕의 후궁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때문에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젊은 남자 30여 명이 이 방에서 처형당하고
이들의 피가 방과 연결된 수로를 타고 흘러 안뜰의
사자상의 입에서도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2중 3중의 장벽)
(카사블랑카(하얀집)가 여기에 있었다)
망을 보기위해 알람브라에서 가장 먼저 지었다는
벨라의 탑 망루에 오르면 사방이 훤히 조망된다.
서쪽 바로 코 앞에는 하얀집들이 벌집같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아랍인들의 마을인 알바이신 지구가 보이고, 그라나다 센트르,
멀리 동남쪽 방향으로는 씨에라 네바다까지 조망된다.
(드디어 추수하는 농부를 보았다)
오늘이 스페인에 온지 3일차인데 처음으로 들판에서
일을하고 있는 농부를 보았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동안
농부를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상점이나 레스토랑은
물론 은행이나 TV방송조차 쉬는 시에스타(낮잠자는 시간)인데도
콤바인으로 밀을 추수하고 있었다. 흔치않은 풍경이다.
시에스타는 보통 지중해 연안국가들이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2~4시간 정도를 낮잠으로 보내고 원기를 회복하여 낮시간이
길어 저녁까지 일을 하자는 논리다.
보통, 스페인에서는 오후 1시~4시,
이탈리아에서는 오후 1시~3시30분,
그리스에서는 오후 2시~4시까지 시에스타가 이어진다고 한다.
시에스타 시간을 고려하지 못해 쇼핑이나 식사에 애를
먹을 수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되겠다.
미하스 (코스타 델 솔의 보석) ☞ 사진 클릭
유럽 최대휴양지인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은
`태양의 해안‘이란 뜻으로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의
지중해에 접해 있는 그라나다 남부의 모토릴에서 지브롤터 해협의
타리파까지 약 300km에 이르는 지역이다. 한 해 동안
800만명이 찾을 정도로 세계적 휴양지다.
스페인 관광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이며,
안달루시아의 관광 산업의 35%를 차지하며 연간 2000만 가까운
관광객들이 온다고 한다. 코스타델솔의 기후는 온난하며, 연평균
기온은 22도 정도이며, 맑은 날이 연간 300일 이상이어서 겨울에도
요트를 타고 지중해를 가를 수 있고,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골프장을 비롯한 관광 관련 시설, 회의, 전시 시설 등이 많다.
또한 해양 테마파크 조성과 고급스런 문화기행과 호젓한
여행상품으로 관광객들의 기호에 부응하고 있다.
(하얀집들.. 그리스풍 마을, 미하스 )
미하스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는 않은 곳이나
한번 발을 내디디면 오랫동안 여운이 남아 있을 만큼
아름답고 인상적인 작은 마을이다. 스페인의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 해안에 위치한 미하스는 로마시대부터
있었던 아주 오래된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차를 타고 마을을 돌아보면 동화 속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을 내며 미하스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좁은 골목은 직접 걸어 다니며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것도 묘미다. 골목을 따라 안달루시아 전통 양식의
하얀 주택이 이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하스에서는 평범한
집조차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예쁘다. 집 테라스와
동네 울타리에 예쁜 화분이 놓인 모습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알록달록 타일로 장식된 흰색 벽,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 등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도시 자체가 지닌 독특한 아름다움
덕분에 미하스는 '안달루시아의 에센스' 혹은
'코스타 델 솔의 보석'이라 불린다.
(하얀집들로 가득차 있는 미하스)
아름다운 해변이 몰려있는 코스타 델 솔의
첫번째 관문으로 불린다. 말라가는 과거에 페니키아인과
로마인의 지배를 받은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피카소 박물관이 자리한 주변과 이슬람교도들이 지은
알카이사르 요새 앞에서도 로마 유적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말라가는 1950년 스페인 정부가 태양과 해변을 관광객에게 팔아보자는
솔 이 플라이(Sol y Playa)관광 정책을 코스타 델 솔에서 펼치면서
큰 수해를 입기도 했다고 한다. 말라가는 관광객 전용 아파트와
고급 리조트, 호텔과 별장들이 자리해 햇볕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유럽인들에게 크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말라가는 매력적인 도시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발만 담가 보았다.)
지중해에서 시원하게 수영하고 싶었지만..
(밤 10시가 되니 가로등이 들어온다)
낮시간이 길고 시에스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술집이나 bar가 성업중인 것을 보면 술을 좋아하는 스페인도
밤문화가 발전한 것 같다. 술 좋아하고, 늦게까지 일하고
회식까지.. 우리나라 하고 비교할 수 없겠지만..
(부두에는 고급 요트들이..)
말라가주 남부의 세계적인 해변 휴양지 코스타 델 솔에 속한
고급 리조트 항구로, 휴양 도시 마르베야(Marbella) 서쪽 인근에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 호세 바누스(Jose Banus)가 여행을 즐기는 전 세계
갑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호화 요트 항과 사치스러운
쇼핑 단지를 목표로 1970년에 건설했다.
모터보트와 요트 915대가 한꺼번에 정박할 수 있는 부두,
이곳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비롯한 여러 왕족과 세계적인 갑부들의
호화 요트 전용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항구 뒤편의 번화한 거리에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부티크,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카페, 바, 명품 상점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어, 낮 동안 항구에서 다양한 레저를 즐긴 사람들이
밤이 되면 이 거리에서 쇼핑과 유흥을 즐긴다.
(73)
(호세 바누스(Jose Banus) 흉상)
푸에르토 바누스(Puerto Banus)항을 조성했다는 부동산 개발업자
(전용 비치가 있는 이런 곳에 별장 하나..)
스페인 사람들의 꿈이 마르베야에 별장 하나 갖는 것이라는데..
마르베야는 갑부들의 별장 지대인 바누스항 인접 도시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 유럽 대륙에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타리파 항구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지브롤터 해협은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곳으로 파도가 심해
배가 운항을 못할 때도 많다고 하는데 오늘은 정상운행이란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프리카 모로코까지 대륙간 최단거리는 14.5km.
스페인에서 제일 가까운 모로코 항구는 세우타항이지만
조금 먼 타리파로 간다. 타리파까지는 4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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