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단풍을 쫓아 거림에서 중봉골로..

2015. 10. 31. 14:15山情無限/지리산

 
 
 


지리산, 단풍을 쫓아 거림에서 중봉골로..
(가을을 그냥 떠나보낼 수 없어 지리산에 들다)



○ 2015. 10. 23 ~ 24  /  날씨 : 연무, 흐림
○ 거림-장터목대피소-천왕봉-중봉-써리봉-물길음재-중봉골-순두류
 




올해도 지리산을 다녀와야
가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지리산에 들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맘을 읽은듯 지리산을 가자고 한다.
일정도 단풍이 곱게 물들 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다른데서
생겼다. 대피소 예약제가 변경되어 사전에 신청을 받아 추첨으로 미리
대피소를 배정하고 남은 객실만 예전같이 매월 1일과 15일에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는다니 대피소 확보는 예전보다 더 치열해진 것.. 산에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예약시스템이 바뀐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문제지, 새로 도입한 제도는
앞으로 얼마나 취지에 맞게 잘 운영하느냐가 관건이긴 하지만 인터넷
소외계층인 장년층을 배려하는 측면에서는 진일보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좋은 제도에 찬동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현실은 현실. 당장 지리산에서 하루 밤을 
보내려면 대피소 확보는 필수. 이제 확률이 더 낮아지긴 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어
세 사람이 각자 날짜와 대피소를 분담하여, 사이트가 열리는 날 준비하고 있다가
10시 정각 100m 경주하듯 자판을 두들겨 장터목대피소 이틀을 확보했다.
목표는 하루만이라도 잡자는 것이었는데.. 이제 이틀중 
어느 날로 택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까지 생겼다.





(지리산도 가뭄이 심한 것 같다.)

거림골도 도장골도 물이 많이 말랐다.





(입산 신고..)













(입산한지 5분도 안되어 단풍터널이다.)

지난 10일에 지리산에 눈이 내렸다더니
올해는 예년에 비해 단풍이 빨리 내려온 것 같다.
벌써 여기까지 단풍숲을 만들다니..







(하늘에는 별이 있고..)

가을 숲에는 꽃처럼 아름답고
별처럼 빛나는 단풍이 있다.











(단풍에 취해 황홀한 길을 간다)







(지리산 거림골 단풍은 여기가 꼬리)





(천팔교 부근에 언뜻언뜻 보이는 단풍)

지난해 친구와 이 길로 내려왔을 때
황갈색 숲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어서, 이 부근
단풍을 기대하고 그 때 보다 몇 일 이르게 왔는데도
올해는 단풍은 이미 이곳을 지나 한참이나
아래까지 내려가 버렸다.









(잠깐 계곡으로 내려가 폭포와 노닐기도 하고..)





(고도를 높일수록 때늦은 늦가을 분위기다)

뭐랄까.. 초반에 맛있게 먹고 굶어야하는상황이랄까?
그러나 전체로 보면 크기는 같을터.. 조삼모사와는 다른 것.
아쉽게 생각할 수록 이전의 좋은 기분만 반감될 뿐..
산을 어디 단풍만 보려 오나? 단풍은 덤이지..







(조망처에서.. 흐릿한 남부능선과 삼신봉)

날 맑은 날은 멀리 삼천포까지 조망되는데
오늘은 박무로 바로 앞 삼신봉 세 봉우리도 다 보이지 않는다.
이 연무현상이 중국 농촌에서 가을겆이하고 나온 짚을 태운 것도
원인중 하나라니.. 이래저래 이웃이 참 중요한 때인 것 같다.





(남부능선, 세석대피소, 거림.. 삼거리 이정표)

세석대피소 턱밑, 1400 고지







(세석대피소)

샘터에서 생수 한 잔 마시고, 촛대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노고단, 백무동, 장터목, 거림방향 갈림길)

배낭메고 스틱 짚고 있는 이 꼬마 산객은?
피곤할텐데 대피소에서 일기를 쓰고, 위인전까지 읽었다.
지리산 주능선을 걷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초등학교 2학년이 본분을 지키면서 지리산을 탄다.
참 대견하다.





(촛대봉 오르다 세석대피소를 배경으로..)





(??)









(촛대봉에서 천왕봉 방향과 영신봉 방향)









(산에 들면 사람도 산의 일부분)

멀리서 보거나 실루엣으로 보면
바위나 분간도 안되고 하늘을 유유히 떠가는 구름이나
마음이 나래를 펼치는 것.. 별반 차이없을 듯..





(촛대봉, 장터목까지 2.7km)

지리 주능선에서 제일 아름다운 구간,
부담도 없는 널널 1시간 반.





(주능선에는 고사목이 거의 사라졌다.)

처음 지리산에 발을 들인 70년대 말만 해도
키 큰 고사목들이 즐비했는데 날이 갈수록 사위어 가더니
어느새 다 쓰러지고 말았다. 산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듯해도 변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산도 사람같이 살기위해 변하는 것일까?











(1667봉에서 연하봉, 일출봉 구간)

몹시도 추운 겨울 어느 날 연례행사 같이 이 길에 들었을 때
나무 가지마다 녹다가 얼은 수정같은 얼음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명징한 구슬들이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일 때면 정말 형언할 수 없는 모습.
한 줄기 바람이 불어 무지개빛을 머금은 구슬들이 부딪히며 내는
청명한 소리는 지상의 소리가 아닌듯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아! 잊을 수 없는 모습, 선율.. 지리산에서 받은 많은 많은
선물 중에 특별했던 선물. 인간은 산을 실망시킬지라도
산은 결코 인간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뒤돌아 본 연하봉 실루엣)

雲雨之情, 석양에 붉게 물든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 자태만으로도 동양화 한폭같은 모습이다.





(오늘 하루를 묶고 갈 장터목대피소)





(능선을 타고 올라 오는 안개)

사실, 산을 타고 넘는 구름이라 해야겠지만
사전적 의미는 지면에 붙으면 안개고 하늘에 떠 있으면 구름..
1600고지를 넘는 하늘의 구름도 산을 타고 넘으니 안개(?)







(산의 밤은 일찍 온다)

태양도 집이 가까울 수록 빨리 떨어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태양이 능선 위로 한 뼘도 더 떠 있었는데
저녁준비한다고 부산을 떠는 사이 벌써 대문 앞까지 가버렸다.
하마터면 작별인사도 못할 뻔 했다. 태양이나 사람이나
돌아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고, 태양이나 사람이나
집이 가까워질 수록 걸음이 빨라지는 것 같다.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석양을 보면서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도 이같이 내 주변을 한 뼘 만이라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기를 바람 해 본다.





(천왕봉 도착 직전,벌써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다)











(날이 새자 부스스 기지개 켜며..)

어깨 걸고 일어서는 산줄기, 산줄기들..





특별한 일출! 이런 광경을 준비하고 있었다










(햇귀, 갑자기 하늘에 불이 붙었다)

온 하늘을 태울 기세다.
꼭 참숯에 불이 붙은 것 같은데
그 앞에서는 용트림하듯 구름 두 조각이
바쁘게 움직이며 변신을 거듭한다.
정말 장관이다.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마에 땀 흘리며 이 산정에 오르고,
숨죽이며 기다린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환희
내려갈 산이지만 산을 오르면서 덤으로 얻는 행복.
이 자체만으로 얼마나 큰 복인지..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 절정의 순간)







(손톱만큼 얼굴을 내밀더니 이내 쑤욱 오른다.)

오늘 하루도 선물로 주어졌다.
온 만물에 광명한 빛으로 밝혀 주고,
온 생명에게 온기로 살리고, 키워 주는 무한의 사랑..
태양과 함께 은혜와 기적으로 주어진 오늘 하루!
선물로 받은 이 하루를 감사하며, 배우며, 베풀며
내 생애 마지막 날로 여기고 최선을 다해
보람되게 살아 보기를 다짐해 본다.







(그저 바라만 볼 뿐.. 눈부시다!)











(천왕일출을 수없이 만났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이런 감격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니..









(그러게.. 인생도 고통이 있어야 깊이가 있듯..)

청궁으로 솟아 오르는 태양의 찬란함도 좋지만
구름이 시샘 속에 박차고 오르는 이런 태양이 멋지지 않은가!
인생에서 만나는 질곡도 인생을 가치있게 하려는 것 아닐까?
구름이 조연하여 더 빛나고 아름다운 일출같이..









(하늘은 쉼없이 변화한다)







(70)









(좋은 포인트에서 한 컷하고..)







(정상석 앞세우고 인증사진도 한 장 남겨 본다.)

정상석 인증사진 없다고 누가 지리산 갔다오지 않았다고
할 것도 아닌데.. 이것도 하나의 관례가 되어 간다.





(서쪽 하늘에 구름이 일기 시작하더니..)





(우리는 중봉 방향으로..)

불과 20분 남짓 사이에 서쪽에서 일어난 구름은
동쪽의 구름을 부르더니 순식간에 구름이 정상을 점령한다.
바람도 심하게 분다.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지만 고산의 기상도 실로 예측하기 어렵다.
특별한 일출 잠시 후의 상황이다.







(중볼골 골바람을 뜷고 오른 중봉)













(써리봉, 비를 머금은 구름이..)

써리봉 조망을 삼켜 버렸다.
바람 자는 곳으로 피하여 기다려 보지만
구름이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철없는 녀녁.. 어쩌자고,)

계절은 벌써 눈내리는 초겨울로 접어들었는데
양지바른 곳이라고 철도 잊고 꽃을 피우다니.
곧 닥쳐올 북풍한설은 어쩌려고..

나무 가지마다 습도 높은 구름이 맺어 놓은
물방울이 빗방울 같이 뚝뚝 떨어진다.





(나도 한 때는 靑靑한 젋은 날이 있었다니까..)





(구곡능선(황금능선)으로..)





(여기서의 조망도 일품인데..)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까보다.
이것이 지리산의 자연스런 모습이니









(유장한 구곡능선, 중봉골..)

용트림하듯 Z자형으로 유장하게 뻗은 황금능선
저 끝쪽에 구곡산이 보이고, 단풍으로 아름답게 채색되었을
순두류계곡, 중봉골도 수묵화 같은 모습으로 어렴풋이 보인다.
아직은 바람이 세차게 불지만, 오히려 그 세찬바람이
구름을 몰고 가는지 파란 하늘이 조금씩 비친다.





(구름이 많이 걷혔다, 산줄기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을 뚫고 밧줄을 타고, 산죽숲을 가로질러..)

바람 자는 한적한 곳에 터잡고 쉬며 아점을 해결하고..



















(물길음재에서 중봉골로 내려섰다.)

어느 계절의 산이 좋지 않겠냐만
이번엔 지리의 단풍을 보아야만 가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단풍이 좋은 곳으로 코스를 잡았는데 거림골에서 느꼈듯
올해는 단풍도 갈 길이 바쁜지 산을 빠르게 내려온 것 같다.
사실.. 이곳 단풍도 아름답기로 손꼽을만하여 찾았는데
한 발 늦었다는 생각인데.. 그래도 멀리서 온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는듯 절정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이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디 떨어지는 것이 낙엽뿐이던가!)













(이쯤되면.. )

시라도 한 수 읊고 가야할 것 같아
도종환님의 단풍드는 날을 외어 본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일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 (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막바지에 만난 단풍숲길..)

가을의 한가운데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순두류, 중산리 3.6km)





(감보다 더 붉게 타는 감나무 잎도 멋진 단풍)





(그날, 지리산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았다)

이번 지리산행은 시작은 부랴부랴 했지만
일단 시동이 걸린 후로는 일사천리, 절묘한 타이밍의 연속이었다
대피소 확보부터, 대중교통 연결편까지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첫날 덕산에서 택시로 거림까지 이동하기로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거림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우리가 순두류에 내려서기 5분 전에 떠난 버스는
전화를 하니 20분에 올라왔고, 중산리에서 진주, 진주에서 울산 오는
버스도 대기시켜 놓은듯했다. 그래서 울산에서 저녁을 먹었으니 말이다.


이번 지리 산행은 한 발 늦어 기대했던 거림골 1000고지의

단풍은 절정을 넘긴 모습이었지만 그보다 아래쪽의 단풍도
그 못지 않았고, 중봉골, 순두류의 단풍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되고 남는다.
생각지도 않은 천왕일출은 두고두고 잊지못한 모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날 특별한 일출을 보여준 하늘은 장관의 일출을 보여주려고 하늘을
잠시 열었다가 우리가 천왕봉을 떠날 즈음 치기 시작한 구름 장막은
하루종일 열어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올 가을 단풍을 쫓아 지리산에 들어
멋진 단풍과 덤으로 잊지못할 선물까지 받았으니 무얼 더 바라겠는가!
뒤돌아 보니 모두가 감사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