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2. 16:14ㆍ山情無限/낙동정맥(完)
낙동정맥 12구간 (시티재에서 한무당재까지)
○ 산행일자 : 2008. 8.23(토) 07:51 ~ 16:34 (5시간 47분)
○ 산행날씨 : 흐리고 기온높음, 약한바람
○ 참석인원 : 김영진, 김위겸, 배용환, 장병익, 시나브로 (5명)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3.3㎞ 누적거리 : 201.8km
○ 산행코스 : 시티재-호국봉-어림산-마치재-남사봉-한무당재(-관산-만불산)-아화고개
○ 소 재 지 : 경북 영천시 고경면 / 경주시 안강읍, 현곡면, 서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05:10 울산 종합운동장 출발
06:15 아화고개 도착
06:20~45 시티재로 이동(택시)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7:00 산행시작
07:29 호국봉(382.9m)
08:43 야수골네거리
09:19 송전철탑
09:57 어림산(510.4m) 삼각점
10:41 마치재
11:17 남사봉(470m)
12:09 임도
12:47~13:05 한무당재
13:20~13:30 아화고개로 이동(택시)
14:30~15:30 아화고개-시티재-아화고개(승용차)
③ 복귀
18:00 아화고개 출발 (울산 / 저녁)
20:00 울산 종합운동장 도착
2. 산행기록
이제 울산에 많이 가까워졌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5시 종합운동장 출발이다. 지난 달 컨디션이 좋지않아
불랫재-시티재 구간을 빼 먹은 바람에 한 구간을 건너
뛰고 오늘은 시티재에서 아화고개 구간을 이어간다.
이번 구간은 반세기 전 동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총탄과
포연속에서 처절하게 죽음을 주고 받았던 역사의 현장이다
잠들기 전에 장대비가 쏟아져 우중산행 걱정을 했는데
새벽에 눈을 뜨니 밤새 비는 말끔히 개이고 구름이 바쁘게 이동한다.
사실, 지난 백두대간 황철봉 구간을 다녀오고 오랫만에 먼 길을
나서는 탓에 오늘 25km는 좀 부담이 되는 거리다. 대비하느라
지난 수요일에는 야간에 무룡산도 올라갔다 오긴 했지만...
(시티재에 있는 영천시 상징 조형물)
옅어지던 구름이 붉게 타오르길래 카메라를 겨누는데
길 옆의 전봇대가 방해를 한다. 전봇대를 피해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이 그만 붉은 기운이 사라져 버려 셧 찬스를 놓쳤다.
1시간 조금 더 걸려 오늘 날머리 아화고개에 도착하니 곧 이어
택시가 도착한다. 택시를 타고 오늘 들머리 시티재로 향한다.
낙동길도 이제 울산에서 많이 가까워져 빨리도착했다.
(시티재, 안강휴게소)
길을 넘어오기 전에 택시에서 내려야 하는데
택시가 안강휴게소쪽으로 넘어가다 보니 들머리가 반대편이다.
4차선 고속국도 중앙분리대를 넘기는 너무 위험스런 상황.
다시 한 참을 올라가 도로를 건너 들머리로 향한다.
(길옆 높은 옹벽을 타고 올라)
4차선 고속국도를 많은 차들이 질주한다.
들머리는 1m 가량의 높은 시멘트 옹벽 위 수로를 따라 오른다.
시그널이 달려있는 잡풀 무성한 곳으로 들어서니 이내
밤새 내린 비를 머금은 풀이 옷을 축축히 적셔온다.
(처음부터 만만찮다)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나타난 봉우리를 넘으니
이동통신사의 무선기지국이 있는 안부가 나왔다.
오는 동안 뒤따라 가는데... 풀잎에 맺힌 물방울은 좀 털려도
키가 큰 탓에 거미줄은 계속 얼굴 높이로 귀찮게 달라 붙는다.
그럴바에야 아예 내가 선두에 서서 거미줄을 다 걷고 가는게 낫겠다.
완전무장을 하고 길을 열면서 가는데 땀이 많이난다. 땀이 찬
선글래스를 벗으니 불쾌한 거미줄이 얼굴에 쩍쩍 달라붙는다.
1시간 가까이 악전고투를 했다.
(스틱을 훠이훠이 저으며 거미줄을 걸으며...)
사실, 거미줄이 귀찮기는 해도 거미를 탓할 수는 없다.
거미는 이 숲의 주인이고 거미줄은 그들의 생업이니...
그 그물같은 거미줄을 걷으며 가는 것이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하다. 훼방꾼같은 생각도 들고...
(호국봉 / 382.9m)
조그만 봉우리 꼭대기에 오르니 하얀 페인트를 칠한
'호국봉(護國峰)' 말뚝이 나온다. 원래는 이 봉우리가 호국봉은
아닐테지? 아마 오른쪽 아래에 영천호국원이 들어서자
그 뒷산이라는 연유로 이름 붙여진 것 같다.
(열린 틈으로 보이는 왼쪽 방향, 하곡지도 보인다)
(9)
(무슨 버섯?)
(낙동길은 직진, 좌측으로 내려서면 임도)
오른편으로 콘크리트 지주의 철조망을 만나는데
곧 아담한 잘록이의 네거리에 내려선다.
(계속 이어지는 철조망)
능선을 따라 철조망이 계속 이어지길래
어떤 돈 많은 사람의 사유지 경계인가 했더니
풍산금속에서 불발탄 처리장으로 이용하면서
안전을 위해 설치한 철조망이라 하군요.
(야수골 네거리)
논실리의 개척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400여년 전 처음으로 김녕 김씨가 이 마을에 정착하였고,
임진왜란 때 영천 의병장 권정 장군과 김귀희 장군이
이곳에서 거문고와 비파소리로 암호를 정하고
제반 작전을 의논하여 왜군을 크게 무찔렀던 바,
이 마을을 논실(論瑟)이라 하는데 일제 때 일본인들이
강제로 답곡(沓谷)이라 불렀고 광복 이후 이곳 주민들이
지명을 다시 논실동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예감이란게 참 이상하다. 갑자기 열쇠가 생각나
카메라 색에 넣어 두었던 열쇠를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그 열쇠뭉치에 중요한 것들이 많이 달려 있는데...
다시 찾아봐도 없다. 어디서 흘렸는지 알 수가 없다.
산행을 접고라도 열쇠를 찾아야 할 판이다.
(무슨 버섯2)
(송전철탑)
없어진 열쇠가 산행하는 내내 신경쓰이게 한다.
울산에서 출발할 때부터 기억을 더듬으며 생각해 보니
시티재에서 카메라 색을 내려놓고 산행채비를 할 때 흘린 것 같다.
그나마 일찍 열쇠가 없어진 것을 안 것이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지금부터라도 찾아 나설 수 있으니 말이다. 울산도착해서 차를 타려고
열쇠를 찾다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일찍 알게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인다.
시티재... 안강휴게소를 지나가는 사람도 많을텐데...
그대로 있을까? 그대로 있겠지...
(신라시대에 임금이 올랐다 하여 어림산(御臨山), 삼각점)
안강의 조용한 소나무 숲속에 흥덕왕릉이 있다.
삼국유사에 다정다감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기도 한
신라 42대 왕인 흥덕왕은 성은 김씨, 이름은 수종.
826년 왕이 되어 836년 죽을 때까지 11년간 재위했는데
즉위한 첫 해에 왕비 장화부인이 죽자 평생 아내를
잊지 못하고 슬퍼하며 홀로 지냈다고 한다.
군신들이 재혼할 것을 청했으나,
"앵무새가 짝을 잃어도 슬퍼하는데, 어찌
사람이 짝을 잃었다고 곧 다시 아내를 맞겠느냐"며
거절했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여태 잘 가다가 어림산을 오르는데 다리가 풀리면서
힘이 들기 시작한다. 컨디션도 문제겠지만 아마도 목표가
바뀐 탓이 더 큰 것같다. 이제 오늘 구간을 다 가는 것보다
열쇠찾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가 되었으니...
(구름버섯)
(골등골나물)
(마치재)
지형이 말의 이빨과 비슷하다 하여 마치(馬齒).
말티재라고도 하는 마치재는 황수탕으로 유명한
덕정리 청석골과 경주시 현곡면의 남사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927호 지방도가 지난다.
(무슨버섯 3)
(층층잔대)
(남사봉(南莎峰) / 470m)
남사봉은
남쪽 자락에 있는 남사리 마을에서 따온 이름으로
가마들에 잔디가 많았고, 마을이 남향으로 향하고 있다
하여 남사라 했고, 좌로는 어림산, 우측에는 어림산 줄기인
인내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아늑하고
산세가 수려하여 명소로 꼽힌다.
고 박정희 대통령도 퇴임 후 이곳에서 살기를
희망하였다는 일화도 있고, 동학교주 최재우선생도
남사지 아래 이곳 출신. 그곳에 유허비가 있다.
한무당재에서 내려서려고 마음 먹으니
걸음이 더 무거워진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난 여기서 좀 쉬었다 가야겠다.
(평화로운 숲)
(무슨 굴? 여우굴?)
(참취)
(뭐 하는 곳?)
남사봉에서 한 숨 자고 터벅터벅 내림길로 내려오니
임도가 나타났다. 정리되지 않은 주변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흉측스러운데 축구장보다 넓은 잔디밭과 집이 어울리지 않는다.
고요한 산속에서 개는 왜 그리 짖어대는지...
(앞으로 가야할 능선이 숲 사이로 빼곰히 보인다)
(한무당재, 청석골재라고 부른다.)
경주 서면과 영천 고경면을 잇는 콘크리트 포장된 고개로
근처 골짜기에 청석(靑石)이 많이 나는 청석골이 있고 산적이
출몰했다 해서 청석골재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일행들은 같이 가자고 하지만... 어림산 오를 때부터
떨어진 페이스를 남사봉에서 쉬면서 많이 회복하긴 했지만
이미 생수도 많이 소비해 버렸다. 무엇보다도
빨리 시티재로 가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개망초)
(쑥부쟁이)
(어수리)
(둥근이질풀)
(달맞이꽃)
일행을 낙동길로 보내고, 난 아화고개로 가기위해
지나가는 차를 잡으려 애를 써보지만 서는 차가 한 대도 없다.
택시를 부르려해도 통화권 이탈이어서 할 수없이 통화가
가능한 곳까지는 걸어가야겠다고 태양이 작열하는 포장길을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길섶에는 많은 들꽃이 반긴다.
(마당의 고추는 햇살을 받으며 붉은 색을 토해내고...)
이 모습을 담고나자마자 도착한 택시로 아화고개로 이동.
휴게소에서 시원한 콩국수 한그릇 먹고 시티재에 가니
가방이 구른 곳에 열쇠뭉치가 그대로 있는 것 아닌가!
얼마나 반갑든지... 비록 오늘 구간을 중도에서 접었지만
그래도 잃었던 열쇠뭉치를 다시 찾았으니 조금도 아쉽지가 않다.
오늘 못간 구간은 다음에 아내와 같이 와서
산행을 하고 경주에서 데이트나 해야겠다.
(애기지의 어리연, 그리고 조사)
(어리연)
일행이 올 때까지... 열쇠찾으러 시티재까지 다시
갔다오고도 2시간 반이나 남아 애기지에서 어리연꽃을
담으며 낙동길에서 정말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아화고개 애기지휴게소)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일행이 도착했다.
오늘은 혼자만 산행을 제대로 못했지만 열쇠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것만으로도 산행못한 것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도 이와 같은 것 아닐까?
아무 사고없이 생활하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도
마치 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살아 남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기적으로 여기는 것 같이...
오늘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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