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6. 10:22ㆍ山情無限/산행기(일반)
매월당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용장골로 오른 고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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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코스는 용장마을을 들머리로 하여
용잠골로 올라 고위봉으로 올랐다가 원점회귀하는 코스..
용장골은 용장사가 있었던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용장골 은적암은 조선 세조 때의 대학자이자 승려인 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집필한 곳 아닌가?
오늘 이 코스를 잡은 깊은 뜻이 느껴진다.
호젓한 산길이 열리고.. 조금 진행하니 샘터가 나온다.
시원한 생수 한 바가지씩 마시고..
내일부터는 장맛비가 시작될 것이라는데 오늘 산행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장마가 시작되면 길 나서기가 쉽잖은데.. 오랜만에 산에 드니 정말 좋다.
산에 들면 이렇게 좋은 것을.. 싱그런 초목향이 코 끝을 스치고,
이름 모를 산새들도 지저귄다. 탁월한 선택이다.
매월당 김시습..
국문학 전공자들답게 예사롭지 않다.
대충 훑고 지나 갈 수도 있겠건만 한참을 머물며
시험답안 확인하듯 되새겨 본다. 역사의 현장,
문학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산 공부다.
용장골은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던 곳이다. 21세 때(1455년) 수양대군(세조)의 단종 폐위소식을
접하고는 통곡한 뒤 읽던 책을 모두 불 태우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가난한 무반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에 세종 앞에 불려가 그 비범함을 확인
받을 만큼 빼어났던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 과정을 겪으면서 세상과 갈등하게 된다.
스무 살 때에 시작된 그의 방랑은 수년간 전국의 명산대찰을 떠돌다가 29세 되던 해에
찾은 곳이 바로 이곳 용장사이다. 매월당이 용장골 은적암에 7년 동안 머물면서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집필하게 된 것이다.
매월당은 용장사의 매화를 보고 붙인 이름이고, 법명 '설잠'은 '눈 덮인 멧봉우리'를 뜻한다.
은적암에서 잡다한 세속의 번뇌를 씻어낸 뒤 그는 충남 부여 무량사에 머물며
후학을 지도하다가 59세(1493년)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에게서 자유분방한 사고와 기행 또한 유불선의 변증법즉 인식 등이
드러난다. 김시습이 호남, 관동, 관서지방 등을 여행하고 쓴
놀 유(遊자)를 붙인 네 권의 책을 모아 후대에 엮은 것이
바로 사유록(四遊錄)이다.
시를 옮겨 본다.
용장골에서 / 梅月堂 金時習
용장골 골 깊으니 茸長山洞窈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不見有人來
가는 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 細雨移溪竹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 斜風護野梅
작은 창가엔 사슴 함께 잠들었어라 小窓眠共鹿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쌓였는데 枯椅坐同灰
깰 줄을 모르는구나 억새처마 밑에서 不覺茅畔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庭花落又開
* * *
"시 한편으로 그를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세상을 뚫어지게 관조하는 눈과,
매이지 않고 함께 사는 이치와
꽃이 피고 지는 속에서
도무심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김영우 / 명지대 교수-
갈수기여서 지금은 물이 졸졸 흐르지만
그 옛날 매월당이 이 길을 오르내리며 땀을 훔쳤을 것 같은 너럭바위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탑상골 용장사지 삼층 석탑.
잘 보이지 않던 탑을 300mm 줌으로 당겨서 본다.
古文에 해박한 해설가의 해설까지 들으면서..
산행이 아니라 문학답사를 나온 느낌..
설잠교(雪岑橋),
'설잠'은 '눈 덮인 멧봉우리'란 뜻의 김시습의 법명.
김시습은 이 계곡을 건너 그 옛날 용장사로 오르내렸을 듯..
다리를 건너 계속 올라가면 용장사지가 나오지만
오른쪽 길로..
용장사지는 다음에 들리기로 하고..
오늘은 고위봉으로..
지금이야 모든 나무가 녹색 잎을 내어 뽐내지만
다른 나무들이 겨울나기에 들어가도 헐벗은 황량한 산을 지키던 산죽
없을 때 함께한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듯 그런 산죽이 좋다.
마치 녹색의 불을 밝힌 듯
녹색의 별들이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듯..
쉬엄쉬엄.. 쉬며 가며..
간식에 곁들여 커피도 마시면서..
살면서 흔치않은 여유다.
완만한 오름의 정겨운 산죽지대를 지나니..
녹색을 머금은 산정호수,
산 정상부에 이런 저수지가 있었다니..
인공적으로 둑을 쌓은 것 같기는 하지만 산의 정취를 더한다.
청연은 어떤 모습일까? 갑자기 지리산의 청연이 궁금해진다.
백운재에 오르니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힘들게 오른 것은 아니지만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니,
쉼직한 곳에서 여유로운 산행에 여유를 더 한다.
정상이 바로 저기.. 고위봉으로..
고위봉(494m) 정상.
남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
사람들이 잘 찾지는 않지만 금오봉(467.9m) 보다
조금 높은 남산의 주봉이다.
정상석의 고위봉 아래 괄호 속의 글자가 무슨 글자로 보이는가?
왜 남산이 아닌가 싶어 뒷면에 새겨져 있는 글자를 봐도 낭산이다.
고위봉을 낭산으로 부르는가 보다 하다가도 경주의 낭산은 선덕여왕릉이 있는
야트막한 산 아닌가! 궁금증이 발동하여 경주문화원과 시청에 전화를 걸어도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없었는데 조금 후에 국립공원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낭산이 아니고 남산이 맞다하면서 'ㅁ'이 'ㅇ'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해프닝은 끝났다. 경주의 남쪽에 위치하니까 남산.
주봉으로 금오봉보다 남쪽에 있는 산이니까 남산.
남산은 높이가 채 500m도 안되지만
평지에 우뚝 솟아 망산이라고도 한다.
높지는 않지만 수많은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부담 없이 산행코스를 선택 할 수 있어 좋은 산.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인 남산은 동편은 완만한 반면,
서편은 골이 깊고 가파르다.
전망바위에서 잠시 조망을 즐긴다.
옛 선인들이 자연을 가까이 하면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멋있었다.
자연 속에서 흥취를 느끼며 시를 짓고, 이를 거문고에 얹어 노래로 부르던 그런 정경이
떠오르는데.. 이렇게 전망 좋은 곳에서 민 선배의 요청에 부대표의 'O sole mio' 열창.
시조창이 아닌 퓨전이지만 풍류가 특별한 것이겠는가!
조망바위에서 금오봉 방향 조망
올망졸망한 봉우리들과 능선이 만든 골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남산은 산의 규모에 비해 화강암이 많고 화강암이 풍화되어 생성된
화강토여서 미끄럽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미끈하게 뻗은 소나무도 있고 제멋대로 자란듯한 소나무도 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도 했던가. 뱀처럼 똬리를 튼 소나무가 암릉과
어우러진 풍치가 좋다. 아마 자유분방하게 자란 저 소나무가 토종이겠지.
이 자유분방한 모습은 사진작가들이 좋아하는 삼릉 소나무 숲이 일품이지
자연의 선은 곡선이고, 인간의 선은 직선이라고 했던가!
천룡사지 막걸리가 맛있다는 남산초가집 식당에서
또 'O sole mio'! 열창이 끝나자 다른 식탁에 있던 산객들도 박수로 환호한다.
반주도 없이 이렇게 잘 부르다니 대단한 실력이다. 내가 들어본 중에서는 최고인 것 같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부럽다. 김형.. 정말 멋있습니다!
하산. 용장마을로 원점회귀 하는 길
꽃말이 '영원한 행복'이라는 꽃말을 가진
아메리카 원산인 루드베키아가 골짜기를 점령하고, 하늘말나리와 도라지꽃,
이름 모르는 꽃까지 피어 골짜기가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여긴 또 수국과 개망초까지..
개망초도 북아메리카산.. 이젠 온 들판을 잠식한 귀화한 개망초.
6시간 만에 주차장으로 원점회귀
무게와 속도 경쟁으로 전쟁과 같은 삶을 살지만 산행이 그렇듯
인생도 잡다한 짐 내려놓고 가볍게 천천히 걸으면 평화로운 것!
2시간 거리를 6시간 만에 하산했으니 이런 산행이 또 있었던가 싶기도 하지만
산길을 걸었으니 산행은 산행. 의미를 찾는다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유유자적
매월당이 오르내렸을 용장골을 걸으며 국문학을 이야기 하고 옛 선비들의 풍류를 이야기 하며
방랑한 천재 시인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 선비출신의 승려로 기행을 벌인 기인,
최초로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작가,
농민의 고통을 대변한 저항시인 매월당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금오신화를 다시 읽어 보고 매월당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으니 이 또한 오늘 산행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김형, 다음은 어느 코스를 걸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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