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종주 (7구간 : 한치에서 발산재까지)

2009. 7. 12. 17:25山情無限/낙남정맥(完)


낙남정맥 종주 (7구간 : 한치에서 발산재까지)






         ○ 일 시 : 2007. 6. 2 (토)     (흐림, 비)
         ○ 참 석 : 홀로
         ○ 코 스 : 한치 - 대부산 - 서북산 - 668봉 - 여항산 - 미산령 - 오곡재 - 발산재
         ○ 거 리 : 22.5km (누계 : 101.8km)      ○ 소요시간 : 9시간 10분

         ○ 구간별 시간
                    06:50~08:40  이동 (울산~한치 / 승용차)

                    08:45        들머리, 한치 출발
                    09:45        대부산(649.5m)
                    11:10~25     서북산(738.5m)
                    11:55~12:20  668봉(소무덤봉) / 점심
                    13:05~10     여항산(770m)
                    13:53        미산령
                    14:30        오곡재
                    15:20        오봉산 갈림길
                    16:50        옆 임도 끝남
                    17:55        날머리, 발산재

                    18:20~35     이동(발산재~진동 / 버스)
                    18:38~50     이동(진동~한치 / 택시)
                    18:55        승용차 회수, 한치출발





4개월 만에 다시 찾은 낙남길 이어가기다.
주일에 가는 "세월산방"의 낙남길에 동행할 수 없어
남은 길은 혼자서라도 이어가기로 결심하고 처음 나서는 길이다.
혼자가면 어려움이 많겠지만 특히 교통편 연결이 어려울 것 같다.
그 지역에 대한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것은 덤일테고...

출근하는 날보다 바쁘게 설쳐 차를 몰고 한치로 향한다.
제주를 비롯한 남부지방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여서 그런지
습도가 높고 하늘은 찌부등하다.





(4개월만에 다시 찾은 한치, 대부산 오름길)

마산시와 함안군의 경계에 있는 봉곡리 고개라고도 하는 한티재
마산시 진동면과 함안군 가야읍에서도 각각 약 30리 길
79번 도로의 중앙에 위치한 고개로 이 길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쉬어갔던 곳.
이 고개에 올라서면 진동 앞바다가 한 눈에 확 트이게
보인다는 뜻에서 한티재라 불린다고 한다.
이방실장군 기념비 옆 낙남정맥 들머리에 서 있는
봉화산 2.7km, 서북산 5.2km, 여항산 9.1km라 적힌 이정표.





(밭을 넘어서자 개쑥부쟁이, 엉겅퀴 등 많은 종류의 들꽃들이 반긴다)

등로까지 쫏아 놓은 밭 가녘으로 낙남길에 들어서자 마자
눈에 들어오는 뽕나무에 매달려 있는 까맣게 익은 오디들...
가지를 살짝 휘어 끌어 당기자
성질 급한 놈들이 근처에 오기도 전에 우두둑 떨어진다.
갈길도 잊고 얼마나 따먹었는지 손은 핏빛이다.

정신을 차리고 출발하려는데
주위 펑퍼짐한 풀발은 온통 들꽃 밭이었다.





(하여간 오늘은 산에 들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절을 수도 없이 했다)

오디도 실컷 따 먹고, 야생화의 환영도 받으면서
드디어 외로운 산꾼의 홀로가는 낙남정맥이 시작되면서
가파른 길을 올라 서는데 정중하게 인사라도 하고 입산하라는듯
등로를 막고 드러누운 나무... 조금만 낮아도 위로 넘어 가련만
인사도 아니고 꼭 절하듯 몸을 완전히 숙이고 지나가야 할 높이다.
사실 이런 높이가 통과하기 제일 힘든 높이지만
산에 들었으면 그에 합당한 예를 갖춰야지.





(절을 하고 기어 나가니 빨갛게 익은 딸기가..., 이건 시작에 불과)

입산신고를 정중히 해서일까,
가로누운 나무를 기어 나가자 바로 앞에 빨갛게 잘 익은
산딸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크지 않지만 새콤한 맛이 좋다.
산딸기는 오늘 낙남 7구간의 화두중 하나가 되기에 충분하다.

처음에는 혹시 뒤 따를 산꾼이 있을지 몰라 조금 남겨두고
지나 갔지만 나중에는 지천인 딸기밭을 지나면서도
시간이 없어 제대로 따 먹을 수 없었으니..





(한방에서 뿌리를 황달치료와 구충제로 사용한다는 백선이 길섶에 즐비하다)




(점점 숲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산행은 처음 시작하고 30분 ~ 1시간 사이가 힘들다.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한 날씨인데다 바람마저 잠잔다.
제법 경사가 가파른 길을 20여 분 오르자 나타난 330봉.
숲속으로 빨려들던 낙남길은 다시 내려서고...





(오름길에는 마당바위가 잠시 쉬어가라고 유혹하지만...)




(대부산 정상, 봉화산 갈림길)

잠깐 내려섰다가 가파른 길로 올라서면 봉화산 능선 갈림길
우측 길은 봉화산으로 가고, 낙남길은 왼쪽으로 90도 꺾는다.
봉화산 정상으로 표기된 등산지도도 많지만
봉화산은 낙남길에서 10분 이상 비껴나 있다.





(8)

드디어 하늘이 트이고 왼쪽 아래로 영학마을이
희미하게 분간될 정도로 조망이 된다.
서북산을 비롯한 산봉우리들은 구름이 다 잠식을 하고 있지만...
바로 앞에 나타난 송전선 철탑에서 뿌지직하는 소리가 시끄럽다.
송전선 철탑들은 직진하고 정맥길은 오른쪽으로 돌아가지만
중간에 헤어졌다가 날머리 발산재에서 다시 만난다.





(마치 높은 둑길을 걷는 듯... 이 길을 좌우로 물길이 갈린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흐른 빗물은 함안 가야를 지나
남강을 만났다가 다시 낙동강과 합류하여 부산 앞바다로 가지만
왼쪽으로 간 빗물은 바로 마산 앞바다로 빠져든다.





(오른쪽은 버드내, 왼쪽은 대밭골, 직진하면 가파른 서북산 오름길)




(서북산 / 738.5m)

서북산은 여항산에서 뻗어내린 남쪽능선이
진북면과 진전면의 경계선을 따라 흘러내리다 솟은 봉우리
진동면의 서북쪽에 위치한 산이라 이름이 붙여진 산

서릉은 진전면의 산군 속으로 흐름이 이어가
국도 건너편의 적석산과 마주하면서 대정골까지 산자락이 이어진다.
숨겨진 산이라 아직도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민족상잔의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흔)

6.25 한국전쟁중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했던 50년 8월
미 제25사단 제5연대 전투단이 인민군을 격퇴하여
유엔군의 총반격 작전을 가능하게 했다는 격전지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전사한 티몬스 대위를 비롯한 100여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 아들 주한 미8군 사령관 리챠드 티몬스 중장과
39사단 장병, 주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전몰자 위령비.





(구름 속을 걷지만 신록의 계절은 숨길 수 없다)




(등로까지 쳐들어온 나뭇가지는 안개비를 모아 옷을 적시고...)

빗방울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벌써 신발안이 흥건하다.
우중산행 준비까지 하여왔건만 이슬비에 옷 젖듯
등로주변 나뭇가지에 묻은 안개비 방울들로 옷은 물론이고
신발안에 물이 꿀렁거린다. 아직 갈길이 까마득한데...





(고도를 높일수록 점점 시야는 좁아지고...)




(신록의 계절, 구름 속에서도 온통 초록세상이다)




(잎은 빗방울을 모아 수정을 만들고)




(여항산 정상 오름길에 쳐진 로프)

668봉에서 20여 분 진행하면 암벽 로프지대가 나타난다.
깎아지른 암벽 중간에 멋드러진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벌써 여항산인가 하고 20m는 됨직한 암벽. 로프를 잡고 오른다.
여항산 정상인줄 알았는데 암릉 봉우리 . 다시 바위에서 내려
이제나 저제나 하지만 여항산 정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15분이나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난 암벽,
암벽에 걸려있는 로프를 잡고 오르니 정상.
이번엔 진짜 여항산 정상이다.

구름이 온통 산을 덮고 있으니 조망이 되어야 말이지
마치 곤충이 더듬이로 주변을 파악하듯 10m 정도 앞만 보면서 진행.
인간이 제 딴엔 멀리 본다해도 이와 별반 다를게 없는게 인생!





(좋은 전망대인 여향산 정상도 구름바다 속에 빠져)

여항산 (艅航山 770m)
1583년(선조 16) 정구(鄭逑)가 함주도호부사로 이곳에 부임하여,
함안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남고북저하여 나라를 배반할 기운이 있어
남쪽에 위치한 이 산에 여항(艅航)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다.
각데미산, 혹은 곽데미산으로도 불린다.

계곡의 맑은 물과 산허리를 감싸는 운무가 일품이고
6.25 전쟁 때는 낙동강방어선으로 격전을 치른 곳.
정상에 오르면 20~30명이 앉을 수 있는 너륵바위가 있으며,
너륵바위에서 남쪽에는 상여바위,
북쪽으로 조금 지나면 배넘기 도랑이 나오는데
이전에 배가 넘나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산행에는 7코스가 있는데 어느 길이든 당일코스로 가능하다.
제1코스는 주서리 좌촌에서 정상에 올라 다시 좌촌으로 내려오면 2시간 길,
제2코스는 좌촌으로 정상에 올라 서북산을 타고 갈밭골로 내려오면 4시간 길,
제3코스는 좌촌으로 정상에 올라 미산을 타고 내려오면 3시간 길,
제4코스는 미산을 타고 정상에 올라 서북산, 갈밭골로 내려오면 5시간 길 등

대중교통편은 가야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여항면 좌촌행 버스를 타고 좌촌에서 하차.





(여항산 정상 암릉, 비를 머금어 미끄러워 조심조심)

낙남길은 정상에서 미산령 방향으로 직진인데
칼날 능선에 우뚝한 암릉길, 좌우로 아찔한 낭떠러지다.
굵은 밧줄이 쳐져 있지만 물을 머금은 바윗길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내려선다.





(산꼭대기에 웬 정원이... 찔레꽃 향기가 진동한다)




(꽃 비를 내려 외로운 산객을 환영하는듯...)

이리도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 놓았는가?
지르밟기가 안타까워 까치발을 하고 지나간다.
그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꽃 비가 되어
길을 밝히고 장식하는 그대 이름은 꽃

오늘은 참 행복한 산길이다.
무려 이런 곳을 너댓번은 만났으니.





(미산령, 왼쪽으로 내려가면 오곡재를 넘어오는 길과 만난다)




(미봉산 갈림길, 낙남길은 좌측으로 꺾어가야 한다)

직진하면 미봉산 가는 길,
주의지점으로 알려진 갈림길에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수 많은 시그널중 유독 눈에 띄는 "산새들의 합창"
울산, 경남을 비롯한 인근지역은 물론 낙동길에서도 만났던
친근한 시그널. 이 시그널의 주인공들을 만나봤으면...
이름 만큼이나 산을 좋아하고 아끼는 멋진 산꾼들이겠지?





(하늘이 조금씩 걷히더니 앞 산 봉우리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얼마나 내려갔다가 또 얼마나 오를까?
그런 생각도 잠시..., 이내 생각을 바로 잡는다.
산의 오르내림을 즐기자.
설사 긴 오름이 고통스럽더라도 그 고통마저 즐기려 산에 든 것 아닌가?
오르내림이 있으니 산이지...





(열매가 이쁜데... 무슨 열매지?)




(오봉산 갈림길, 날머리 발산재까지는 아직도 7km가 더 남았다)




(순한 숲길이긴 한데...)

남으로 향하는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낙남길.
그런데..., 큰 절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입산을 하였건만
태풍으로 부러지고 쓰러진 소나무들이 등로를 막고 있다.
고개 숙이며 약식으로 인사를 하기를 수 십번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여 정중하게 인사하기를 수 십번
그것도 안되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인사하기를 십 수번
평탄한 길이어서 속도를 낼 만한 길인데
완전 장애물 경주장이다. 걸음도 더뎌지고 힘이든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지자체나 9정맥이 지나는 지자체들은
앞 다투어 등로를 정비하건만 이곳은 영 아닌 것 같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오곡재 지난 527봉까지는 함안군에서 등로 정비도 잘 하고 이정표도 친절하게
세워 놓았는데, 527봉 부터 진주와 마산경계를 이루며 타는 길은
오히려 낙남길을 다니지 말라는듯 온통 장애물을 놓아둔듯 하다.
이정표 하나 찾아보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좌측 좌측 아래에 시멘트길 임도가 계속 같이 간다)

왼쪽 아래에 527봉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시멘트길 임도가 낙남길과 계속 나란히 이어져 왔다.





(이번 구간은 장애물 경주장 같은데... 옷나무까지 거든다.)




(열 번도 더 만난 산딸기밭, 이제 딸기 따 먹을 생각도 없어졌다)

처음 딸기를 봤을 때는 사진을 찍기 전에 손이 먼저 갔다.
조금 진행하다 나타난 딸기를 보고는 사진을 먼저 찍을까
딸기 따 먹는 것을 먼저할까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다 갈 길은 먼데 마냥 딸기 가지고 그렇게 신경쓸 새가 없어졌다.
오늘 시간만 널널했으면 딸기를 엄청 딸 수 있었을텐데...
어릴 때 뒷산에서 산 딸기 따 먹은 이후로 제일 많이 먹은 것 같다.





(향수를 뿌려 놓은듯..., 달콤하면서도 라일락 같은 향기를 날리고)




(또 때로는 잘 가던 길을 숨겨버리기도 한다)




(인동초)




(이름모를 꽃들이 만발하고 향내도 진동하고...)




(산에 들어서면서부터 한 큰절이 산을 나갈 때까지 셀 수 없을 정도)

여기는 7단 장애물이...
먼저 허들 넘듯이 위로 넘고
다음엔 허리를 굽혀 통과하고
그 다음은 밑으로 기고
그 다음은...
8시간 넘게 걸어 힘이 부치는데 끝까지 이런다.
그기다가 거미줄은 또 얼마나 걷었는지...





(마지막 둔덕같은 봉우리를 힘들여 오르니 차소리가 들린다)

진짜로 마지막 봉우리(310m).
처녀 젖가슴 만한 봉우리들이지만
이젠 마지막이겠지 하고 오르면 또 하나 나타난다.
끝까지 장애물 경주하느라 힘을 소진한 탓에
310봉을 터벅터벅 정말 힘들게 올랐는데
바로 내려서는 것이 아니고 또 서쪽으로 휙 틀어 능선을 탄다.
저 아래 차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날머리 발산재가
다 된 것 같기는 한데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렌즈가 어두어 더 당겨 찍지는 못하고)




(옛 발산재 고갯길..., 문을 닫은 발산재 휴게소가 저 앞에 있다)

가파르게 내려서던 길은 무덤을 지나 우측으로 틀어
공중 화장실 뒤쪽으로 떨어진다.





(다음구간 들머리, 도로를 만드느라 무참히 잘려나간 낙남길 절개지)

발산재에 내렸는데 구도로가 끊긴 탓에 휴게소도 문을 닫은 모양이다.
이제 한치에 있는 승용차만 회수하면 되는데 발산재를 지나는
4차선 2호 국도는 고속도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차들이 쌩쌩 달린다.
택시가 보이지도 않지만 빈 차가 있다고 해도 세울 엄두도 못 내겠다.

지하통로로 국도를 건너 다음 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고
옆 지방도로로 마을까지 가려고 10분 넘게 걷다가가 때 맞춰 온
버스를 타고 진동에서 내려 다시 택시로 한치에 들러 차를 회수했다.





(진주에서 마산으로 통하는 국도 2호선)

진주에서 발산재를 넘어 마산으로 연결되는 2번 국도.
마산에서 진동까지는 대중교통도 빈번한데,
진동에서 대정까지는 75, 76-1, 76번 시내버스가 간간히 운행되고 있다.





(산 속에서는 보이지않던 여항산이... 돌아오는 길 뒤돌아 보니 거기에 우뚝하니 서 있었다)

시골 가는 길 어스럼녘이지만 우뚝하니 위용을 자랑하는
여항산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산에 들어서도 볼 수 없었던 여항산.
여항산은 언제나 같이 함안의 주산답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간이 더 가기전 혼자라도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선 길
우려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풀듯 한 구간, 한 구간
진행하여 올해 안으로 지리산 영신봉까지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월 이후로 방법을 모색하느라 몇 달 동안 낙남길에 들지 못했는데
우중에도 무사히 밀린 숙제를 해 나갈 수 있어 감사하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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