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배내고개에서 한피기고개, 통도사 서축암까지

2017. 9. 10. 16:12山情無限/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배내고개에서 한피기고개, 통도사 서축암까지



일시 : 17. 9. 2 (토), 홀로

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재-영축산-영축능선-한피기고개-서축암






오랜만에 만난 옛 직장동료가 

"요즘은 맨 날 등산만 다니는 건 아니지요?" 한다. 뉘앙스가 있다.

 지금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산을 원없이 다니겠다 생각하겠지만

이전만큼도 산을 찾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집 뒤 문수산도 힘겹게 오르는

 나를 상상이나 하겠는가? 공부에 왕도가 없듯 산행에도 장사가 없다.

아나톨 프랑스가  '사람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에 의해서 살아간다'라 했듯 생각만

하지말고, 바쁘다는 핑계대지 말고, 마음먹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수 밖에 없다.

지난번 배내고개에서 영축산까지 걸으면서 산행 거리를 조금씩 늘려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한피기고개까지 가서 통도사 서축암으로 내려 가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일단 실행이다. 무리하지 말고  가는 데까지 가 보자. 영축산 지나서도

내려서는 길이 군데군데 있으니까.. 넉넉잡고 한피기 고개에 17시까지

도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며..





오늘도 328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328번 버스가 좋은 것은 율리에서 출발하여 배내골 백년마을까지 가니까

고헌산, 가지산, 영남알프스 '하늘억새 길'이 다 커버된다.


328번 버스 운행 시간 (시행기간 : 17. 3. 1~11.30)

율리 출발          06:25, 07:50, 09:10, 10:50, 12:30, 14:20, 15:50, 17:50

배내 (백년마을)   07:40, 09:20, 10:40, 12:20, 14:00, 16:10, 17:20, 19:10

토, 일, 공휴일만 운행하고 주중에 운행을 안 하니 조금 아쉽긴 하지만

승용차를 가져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328번 버스로 꼭 1시간 걸려 도착한 오늘의 들머리 배내고개,

산행 차림을 한 사람들 중에서 네 사람은 석남사 정류소에서 내리고,

배내고개에서 여덟 사람이 내렸는데 네 사람은 능동산 쪽으로 가고,

네 사람은 배내봉 쪽으로.. 나뉘어 산에 든다.





배내봉에는 배내고개에서 조금 일찍 출발한 듯한 산객들이 진치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어디서 본 듯한 모습 같기도 한데..





이 사진은 영 아니다. 가로, 세로 모드가 합성되었으니 말이다.

카메라 배터리가 얼마남지 않아 촬영화상 확인을 OFF 시켜놓고는 사진을 확인도 않고

제대로 찍혔거니 했는데 어째 이런 일이.. 다행인 것은 여기서 확인을 하고 바로 잡았으니 말이지

하마터면 오늘 산행 사진은 죄다 죽을 쑬 뻔 했다. 그나저나 언제 다중노출 모드로 변경되었지?

처음 사진 몇 장은 괜찮은데.. 도중에 카메라 설정을 변경한 일도 없는데..





간월산을 마주보는 조망대에서 카메라 점검도 할 겸 잠시 휴식.

바로 발밑 고개가 옛날 보부상들과 배내 주민들이 언양으로 넘나들던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 '선짐이 질등'이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힘들지 않게 간월산을 올랐다.

오늘 한피기고개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에 자신감이 생긴다.

오늘 길 20km 가지고 이러니 말이다. 대간과 정맥, 지리산 왕복종주, 영알 태극종주 같은 

이야기들은 이미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30km 거리의 하늘 억새길은 걸어 보고 싶다.

영축산까지 걸으면서 한피기고개까지 걸어 보려는 꿈(?)을 키웠

오늘 길을 제대로 걸으면 다음 하늘 억새길 완주에 도전(?)해 볼까.

 



간월산변과 간월재 억새밭, 올해도 어김없이 억새가 피었다.

억새는 꽃을 두 번 피운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첫번째 피는 꽃은 꽃대에서

꽃술이 나오면서 피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꽃술이 호호백발로 산발하듯

만개하는 그것이다. 그리고는 가을이 가면서 찬바람이 오면

그 길로 자신이 그랬듯 과년할 딸 시집보내듯 훌훌히

 꽃술을 구름같이 날려 보낸다.  





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인간은 아름다운 자연마저 도시로 만들고 있다. 간월재는 이제

인공물로 가득하다. 얼마 전 폭우로 무너졌던 돌탑도 다시 쌓았다.

처음 쌓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무너지기를 몇 번..

저 돌탑도 돈을 참 많이 먹는 것 같다!






부식된 계단목과 신불산 오르는 길의 기름 범벅의 침목.

맑은 공기, 꽃향기가 아니라 크리오소트 유제 냄새가 진동하고 낭자하다.

이유없는 무덤이 없듯 항변할 것이다. 나무 계단이 썩지 않고 오래가게 하려면

냄새가 좀 나더라도 콜타르로 만든 크리오소트 범벅된 침목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그게 경제적 아니냐고..,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

사람들이 산을 찾은 이유를 망각한 이율배반적인 생각이고,

탁상공론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결과가 목적에 위배된다.

맑고 신선한 공기, 새소리, 벌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풀꽃 냄새..

도시의 공해가 아니라 자연의 향기를 만나러 오는 것 아닌가!


아.. 기분 좋게 산에 들었다가 간월재만 오면 기분이 상한다.





간월재에서 신불산 정상까지는 데크도 많고, 나무계단도 참 많다.

얼마있지 않아 영알은 온통 데크와 나무계단으로 뒤덮일 것 같다.

신불산 오르다 중간 데크에서 당겨 본 간월재 모습..







신불산 정상의 모습.


신불산 정상석은 정말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고 부자연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른 하늘빛과 변화무쌍한 구름이 배경되어 준다.





인생이 그렇듯 지나 온 길을 돌아 보고, 갈 길을 가늠해 본다.

한피기고개는 능선 중간 뾰족봉 죽바우등에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이제 오늘 걸을 길의 1/3 정도 걸었으려나..






점심은 다람쥐와 함께.. 귀엽기도 해라.

구석진 곳에서 점심을 때우고 있는데 다람쥐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며 혼자만 먹느냐며 투정을 부려 밥알 몇 톨을 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앞발로 밥알 한 톨을 집어 들더니 다섯 번 정도 베어 먹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람쥐와 놀다가

제정신이 들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쁜 다람쥐야 안녕..





참 주인 잃은 신불재 대피소..

한 때는 신불재 대피소가 대피소 본연의 역할을 다하며 요긴했는데..

산꾼들이 운영하다 어느 순간 이 대피소를 영리목적으로 이용하려던 이들이

맡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니다. 사실 여기에만 매달릴 정도로 수익이 나겠는가?

그러나, 대피소라면 정말 급할 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문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안타깝다.






머지않아 은빛 물결로 일렁일 억새꽃밭





함박등, 채이등 뒤로 죽바우등까지 당겨 본다.






신불산에서 영축산 가는 이 길도 참 좋지..

신불산은 산객들이 많았는데 여기는 간간이 보일뿐인데 이 길에서

세월산방의 왕년의 그 지존님을 만났다. 서로 긴가민가하다

인사할 정도였으니 세월이 빠른 탓이겠지..







산오이풀은 이제 떠날 준비하고,

금마타리, 참취도 피었는데 부잣집 규수같이

뽀얀 가을꽃 구절초는 언제 오려나..

영알을 밝혀야 하는데..






이 길은 봄비를 맞으며 걸어도 좋고,

가을 억새가 은빛 물결로 일렁일 때 걸으면

멀미가 날 정도로 좋다.





기념하며 영축산에서 인증사진 한 장을 남겼다.






동쪽사면은 병풍을 두른 듯 급하고, 서쪽사면은 완만하다.

영남알프스는 산이 높아 비경을 곳곳에 숨겨두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오르는 험한 길도 있고,

들고양이 같이 까칠한 길도 있고, 이렇게 순한 길도 있고..

그래서 영남알프스가 참 좋다.





누가 왜 이 로프들을 잘랐을까?

오는 길에서 몇 번이나 본 모습이다.





조망좋은 함박등에서 잠깐의 여유를 갖는데..

채이등에 뭔가 움직여 살펴 보니 공사 중. 아니 왜 저기에 철계단 공사를 하지?

누가 계단 깔 생각을 했을까? 참 자상하기도 해라. 할 일 없으면 장뚝 깬다더니..

당신들은 저기에 철계단 놓을 생각을 하기 전에 환경 보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했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환경을 생각한다면 저 짓을 해서는 안 되거든..  

환경선진국에서는 모르긴 몰라도 저 곳에 안전시설이 필요 했다면

튼튼한 쇠줄 하나, 보기 흉하지 않은 발판 몇 개로 끝냈을 것이다.

이 자연을 마음대로 훼파할 권리도 없는 사람들이, 잠시 잠깐

위임받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왜 이리 월권을 하는지 모르겠다.

핀란드인들은 '우리들의 자연에 대한 갈망은 온전한 자연이다.' 라며

그들의 자연관을 잘 함축한 말을 들려 주었다.







자연은 당대의 것이  아니고,

후대에서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제발, 아름다운 자연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훼파하지 말자.






배내고개에서 출발한 지 7시간 30분만인

16시 30분에 청수우골과 시살등, 그리고 통도사로 내려는 갈림길인

한피기고개에 도착했다. 이제 영축능선도 여기서 작별하고

통도사 서축암 방향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가야할 방향 길은

어디가 입구인지도 찾기 힘들 정도다.





한피기고개에서 내려서는 길 입구도 잘 안 보였는데

조금 내려서니 뚜렷한 길이 나타났다. 길을 넓히는 작업을 한 것 같은데..

멧돼지가 길을 파헤쳐 놓은 바람에 흙이 부풀려 진 곳도 많다.

영축 능선 길에서는 그나마 몇 사람을 만났는데 이 길에 들고 부터는

인적이 완전 끊겼다. 덕분에 마지막 정열을 태우는듯 한

매미 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 여럿 속에도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 //

나에 대하여 / 너에 대하여 /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

그리하면 우리들에게 /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 이문재





한피기 고개를 내려선지 1시간 만에 만난 임도





임도를 버리고 직진하니 편백나무 숲이 펼쳐진다.

운치있는 편백나무 숲길, 피톤치드 편백숲 향기 가득한 길.

심호흡을 하며 걸어 본다.





편백 숲길로 내려서는 바람에

서축암 조금 우측 최상단 논 있는 곳이 나왔다.





어느 길로 갈까?

산길은 끝났지만 아직 산행이 완전 끝난 것이 아니다.





지산리 안마을에서 걸어 온 영축능선을 바라본다.

근래 가뭄이 심했지만 안지산 들판은 벌써 곡식이 잘 여물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머지않아 황금들판으로 변하겠지.






지산리 마을버스 종점에 도착하니 6시 10분

지산리에서 마을버스가 20분에 떠나는 줄 알았는데 55분이라는 사실.

20분을 외운 것도 아닌데 어떻게 입력이 되었지? 외우려는 것은 안 외워지고.. 나 참!

그래도 괜찮다. 마을버스 시간 못 맞춘 것은 아쉽지만 통도사 거쳐 신평터미널로 가나,

지산리에서 신평터미널로 가나 거리 차이가 얼마나지 않는 거기서 거기.

걸으려 나선 길.. 신평터미널까지 걷자!





(오늘 걸은 길, 지산리_신평터미널은 생략)



휴~

이제사 일주일 전에 시작한 산행이 끝났다.

산행기를 정리해야 산행이 끝나니 말이다. 산행도 힘들지만 산행기

정리하는 것도 매번 숙제가 된다. 숙제를 안 했다고 다음 숙제 면제받는 것

아니듯 지난 주말에 갔다온 야영도 밀려서 숙제가 되어 버렸다.

각설하고, 이번 산행에서는 처음 산에 들 때는 힘들었지만

걸을 수록 몸이 적응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귀여운 다람쥐와의 만남도 좋았고, 산오이풀, 금마타리,

새하얀 참취의 반김도 좋았고, 억새 핀 간월재와 신불평원을 걸을 수 있어

행복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영축능선 능선길, 고독하지만 자유로웠던

적적한 길이 좋았다. 구절초가 영알을 밝히고 억새가 호호백발로 피어날 때

하늘 억새길도 걸어 봐야겠고, 별빛이 유난히 빛나는 날

영알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기를..




De Grazia's Song
Sammi Sm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