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재 야영

2017. 9. 15. 00:55山情無限/영남알프스



 

신불재 야영, 일상에서 한 발만 비켜서도 별천지



2017. 9. 7 ~ 8

악남악녀산악회 산우들 (6명)

불승사 - 신불재 - 불승사 (원점회귀)









호젓한 숲길에서 위밍업을 했지만 곧추선 산길이 버겁다.

그래봤자 1시간 반 길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지구를 옮기는 것 같은 심정.

누가 대신 가 줄 수 없는 길, 한 발자국도 건너 뛸 수 없는 흡사 시지포스의 운명 같은 걸음 걸음.

이 순간은 평소의 모든 나태함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저 위 파라다이스까지 0.1ton의 무게를

중력을 거슬러 옮겨야 하는 것 뿐! 누가 가라고 한 길이 아니기에 원망도 핑계도 있을 수 없다.

다행인 것은 힘들면 쉬어갈 수는 있다는 것. 이마에 땀을 흘려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쉼은 이런 것이리라.





오늘의 목적지는 저 꼭대기가 아닌 바로 여기.

가야 한다면 가겠지만 다 왔다 마음을 놓으니 아득하게만 보인다.

좋기야 신불산 정상이 더 좋지만 여기도 좋다.






어젯밤엔 비가 내리고 오전까지 두터운 구름이 내려앉아 있었고,

날이 개이기는 했지만 언양에 들어섰을 때까지도 신불산 주변은 구름 속에 잠겨 있었는데

산을 오르는 동안 구름이 걷히면서 드문드문 파란 하늘이 보이더니만 일몰 직전엔 붉은 기운을 띄우면서

면사포를 쓴 듯 살짝 얼굴을 가린 태양이 얼굴을 내민다.






특히 박짐을 지고 산을 오르면서 가지는 생각..

달팽이는 참 행복하겠다. 의식주 중 먹는 것은 찾아야 하지만 늘 집과 옷은 가지고 다니니..

하지만 달팽이보다야 의식주를 다 지고 다니는 우리가 더 행복하지 하는 생각에 이르면.. 무거운 등짐마저

한층 고맙게 느껴진다. 박짐이 더 무거워 지는 것은 우리의 희망과 들뜸을 잡아주는 무게추 같은 것

일단 하룻밤을 유할.. 채 1평도 안되지만 별장이 부럽지 않은 집부터 짓자.





종일 구름으로 가렸던 하늘이었는데..

오늘밤 하늘에 달도 밝혀 주고 총총히 별도 달아 줄 모양이다. 

아~ 억새만 우리를 반겨주는 것이 아니구나!





아름다운 밤이었다.

산정의 밤은 깊어가고 깊어가는 밤의 깊이만큼 산우들의 정도 쌓여간다.

초저녁에 시작한 우리들의 만찬은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에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행복한 시간은 짧고 힘든 시간은 길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시간도 도사같이 축지법을 쓰는가?


아차! 사진도 한 장 못 남겼구나. 파장에야 겨우 한 장 남겨 본다.

산해진미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조촐하면서도 풍성한 식탁과 곁들여 자잘한 이야기부터

때로는 뜻도 깊이도 알 수 없을 만큼의 심오한 이야기까지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은 가슴 깊은 곳에 담아 두었겠지..






우리는 잠들었어도 밤은 잠 자지 않았다.

밤이 낮인 야행성 동물을 인간이 어찌 당할 수 있겠는가?

그 통통한 너구리 녀석은 자정 넘어서까지 우리가 잠들길 기다린 모양이다.

하긴, 자기들의 주거지에 웬 불청객들이 신고도 없이 왔냐며, 자릿세 받듯 쉘터를 찾아 와

 먹거리를 다 헤집어 놓은 것.. 맛은 알아가지고 맛있는 것은 다 먹고.. 라면까지 뜯어 먹었으니..

밤새 잠 설치며 보초를 서기도 했지만 겁 없는 녀석.. 그동안 잘 먹었겠지.

피둥피둥 살 찐 모습에 동작은 느릿느릿 하지만 줄기찼다.

랜턴을 켜서 비춰도 눈에 불을 켜고 겁도 없이 전진한다.

쫓으면 방뎅이를 뒤뚱뒤뚱 물러났다가 이내 다가오는 녀석.. 

비몽사몽 잠결에 들은 소리는 무슨 야밤에 귀신과 씨름하는

소리냐 했겠지만 그건 너구리를 쫓는 소리였던 것.

나중에라도 오해가 풀려서 천만 다행.






5시 넘으니 먼동이 트더니 이내 햇귀가 돈다.







신불산을 오르는데 태양이 빼꼼이 얼굴을 내밀었다.








오늘도 모든 생물에 힘을 주는 태양이 솟아 올랐다.

산 아래 도시는 골안개가 자욱하다. 이불을 덮은 듯 하다.







아직 갈 길 먼 달

사흘이 지났는데도 아직 들어간 곳 없이 보름달같이 둥글다.

아폴로 11호가 계수나무도 토끼도 다 쫓아 버려 신화와 동화를 잃은 

달이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억새가 없다면 영남알프스가 얼마나 적적할까?





요즘 영남알프스에는 살아있는 나무는 안 심고 죽은 나무만 심는다.

이러다가 온 산에 데크를 깔고 펜스를 치는 것은 아닌지..?







신불산 내림길에 본 신불재, 신불평원의 억새밭,

태백산에서 유장하게 달려온 낙동정맥이 영축산에서 정족산쪽으로 방향을 틀면, 

영축산에서 함박등 채이등 죽바우등으로 이어가는 영축능선.

언제나 걷고 싶은 정겨운 산줄기.






부시도록 빛나는 억새는 가을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지금도 이렇게 눈 부시는데..





지난밤 너구리가 휘젓고 간 모습이 살짝 느껴진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짧았지만 여유로웠던 시간.. 이어 아침

지난밤 너구리에게 습격당하는 바람에 먹거리가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다행.

소고기 전골이 없는 바람에 오히려 라죽이 별미.. 천하에 이보다 더 맛있는 아침이 있을까?

행복은 결코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신불재 이 좁은 공간에서도 전화가 터지는 곳이 따로 있으니..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시간내어 산에 오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평일이어서 산은 한가한데 바쁜 사람은 더 바쁘다.





야영지를 정리하고 짐 꾸려 내려가기 전에 이번 산행을 기념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인 단체사진.. 찰칵






산객들은 지금 신불산 정상을 향해 오르지만 우리는 하산이다.






물 맛 좋은 신불대피소 샘터 물로 특제 커피를 끓여 마지막 산정을 나누고..








?, 물봉선, 참취, ?.. 신불대피소 주변은 꽃들이 많다.





목적을 상실한 신불재 대피소






하산이다. 다들 하루 더 묵고 가자고 하지만 일단은 내려가야 한다.

지난밤 너구리한테 식량도 다 털린(?) 마당에 더 머무른다는 것이..






일상은 늘 톱니바퀴 돌듯하지만 한 발만 비켜서도

별천지였다. 산정에 취했어도 내려가야 다시 오를 수 있는 것.

안부가 궁금한 이도사 집 대문을 흘깃하고, 조금 더 내려서니 날머리다.

채 하루도 안 되는 시간동안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원점회귀.

꿈을 깨고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꿈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