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하늘억새길 종주

2017. 10. 30. 02:05山情無限/영남알프스





미완의 하늘억새길 종주
('동네 뒷산에서 길 잃는다'더니 영알에서 길을 잃다)



2017. 10. 10

 



얼마 전 악방에서 하늘억새길 종주를
한다고 할 때 군침만 삼켰다. 시간을 맞추지 못해
혼자 그 길을 가보기로 하고 날을 잡는데 비가 와서 2번이나
미루다 드디어 오늘 결행하게 되었다. 도상거리 30km.. 12시간 예상하고
나름 문수산을 오르며 페이스를 끌어 올려 왔다. 난이도가 높은 길은
아니지만 종주라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얼마 전 8시간까지 걸어도
무리가 없었기에 용기내어 조금 더 시간을 늘려 보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산과 많이 멀어지긴 멀어진 것 같다.

억새가 만발한 영남알프스를 한 바퀴 돌 생각을 하니
약간은 긴장되고 흥분된다. 얼마 만에 느끼는 기분인가!
이런 길을 가려고 마음먹다니.. 







(배내고개 정상, 배내봉 방향 모습)

5시 반에 집을 나섰는데 6시 45분.
해가 벌써 능동산 중턱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전에는 등억을 산행들머리로 삼았는데 요즘은 거의 배내고개가
산행들머리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도 300m 정도인 등억에서 신불산
정상까지는 고도를 860m나 높혀야 하지만, 고도 685m인 배내고개에서야
능동산과 배내봉은 고도를 300m 정도만 높여도 되니까.
높은 산을 찾아다닐 때는 언제고..
참 많이 약해졌구나싶다.





(드디어.. 장도에 오르다)

산행시간을 12시간 정도 예상하고,
6시부터 산행하려 했는데 늦게 집을 나선데다 중간에
콩나물 국밥 한 그릇 먹고 오느라고.. 이럴 땐 시간도 빨리 간다니까
7시 전에는 내려올 수 있겠지.





(석남터널, 가지산 가는 갈림길)

어제까지 비가 와서 습도가 높다. 오르막길 
땀이 많이 흐르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걸을 만하다.
가지산 가는 갈림길을 지났다. 이 길도 많이 변했다.
중간 중간에 데크까지 설치되어 있고..





(드디어 오른 능동산(983m) 정상)

능동산 오르는데 큰 힘들이지 않은 탓에
오늘 길을 생각했던 것 보다는 쉽게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정상에 오른 것을 축하하는 듯)

햇살을 받은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넌 이름이 뭐니?)

이름을 알아야 이름을 불러 줄 텐데..
능동산을 내려와 임도를 걷고 있는데 길 양쪽엔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비롯한 가을꽃들이 영알의 가을을
밝히고 있다. 따분할 것 같던 임도가 정겹다.
구절초도 함초롬하게 피어 있으면 정말 아름다운데
무리지어 떼창하듯 하니 그 멋이 덜하고
미인들 속에서 미인 고르기 힘들듯
구절초들 중에서 구절초 고르기 힘들어
그냥 눈길만 주고 간다.











(케이블 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영알의 모습)

갈 길도 조망해 보고, 가을로 물들고 있는
영알의 속살에도 잠시 눈길을 주었다. 조망이 좋다.
바로 앞에는 백운산 하얀 암장들이 손에 잡힐 듯 하고
구름모자를 쓰고 있는 가지산도 한 달음에
달려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출발하기 전 재약산과도 눈 맞춤하고..)





(억새밭길 너머로 보이는 재약산)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샘물상회)

하루빨리 산객들이 샘물상회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인 입장에서는
큰돈 들여 집도 새로 짓고 보완을 했는데 지나가는 산객들이
공간을 이용만 하고 매상을 올려주지 않으니 고까운 마음이 들 테고,
 산객들 입장에서는 싫은 소리 하는 그런 주인에게 마음이 언짢을 테고..
그래서 서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무래도 샘물상회에서 먼저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샘물상회
공간을 이용하는 산객들도 최소한의 매출은 올려주면서
상부상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안타까워서 한마디..





(하늘억새길 개념도)





(햇살은 따갑지만 적당히 그늘을 만들어 주는 터널 숲)







(온 산에 억새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정표)





(산명이 언제 바로 잡힐 지?)

울산시와 밀양시 간 산명을 두고 의견이
대립되는데다 국토정보지리원의 관료적인 행태(이전 관보에
천황산으로 게재를 했다하더라도 명백하고 객관적 자료가 있으면 수정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동국여지승람(1481년, 성종 12년)을 비롯한 수많은 고문서와 동람도
(1530년)를 비롯한 수많은 고지도에는 載岳山으로 표기되어 있는 산.
그동안 어디에도 天皇山이라는 산명이 나오지 않다가 느닷없이
1923년 6월 30일에 발간(1914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처음 측도,
1920년 수정 측도. 1923년 6. 25 인쇄)된 5만분의 1 지형도에
다른 많은 산들과 함께 졸지에 天皇山으로 이름이 바뀐 산..
어느 고지도, 고문헌에 載岳山이 아닌 天皇山으로 표기된 것이 있는지?
아니면, 천황산으로 변경한 근거나 유래가 될 만한 명백한 자료가 있는지?
산은 가만히 그대로 있는데 인간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산을 가지고 노는 것 같다.







(영남알프스는 구조물로 뒤덮이고 있다)







(정겹게 보이는 억새도 실상은 자연훼손의 결과)

억새는 사람이 자연을 간섭하거나
훼손시킨 장소를 즐긴다고 한다. 원래부터 억새밭이 아니라
산에서 벌채를 했거나 산불이 난 장소에서 심한 바람의 영향으로 지속되는
풍충(風衝) 이차초원식생이다. 그러다가 점점 다른 식생들에 밀려난다는 것.
실제 사자평 억새밭도 백만 평이 넘었지만 근래 많이 줄어 들었는데
다시 수억 원을 들여 억새밭을 만들고 있다. 사실 산정 능선부에서의 억새축제는
자연 훼손으로부터 생겨난 일그러진 놀이라는 것. 그런 축제를 계속하려면
그곳에서의 식생천이(遷移)를 저지하는 주기적인 생태계 조절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주기적으로 일부러 불을 지르거나 벌채를 해야 한다는 말.
얼마 전까지 화왕산 억새밭 태우기도 그런 이유.
사자평에 수억 원 들여 억새밭 만든 것은..?







(단풍은 아름답지만, 칼라로 만들어도 쓰레기 일뿐)

산이 좋아 산에 든 사람들이라면 
산을 아끼고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한다.
능동산에서 부터 여기 재약산까지 오면서 수없이 본 모습이다.
어떤 방향표지기는 10개도 더 보았다. 단체 산행을 진행하면서
부득이하게 방향 표지기가 필요하다면 재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맨 뒤에 가는 사람(후미대장)이 회수해 가는 것이
산행 에티켓 아닐까?







(재약산에서, 멀리 향로봉이 보인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연기같이 희미한 구름이 피어 오르더니 이내 구름이 뭉실뭉실..









(재약산 아래 데크에서 바라본 모습)

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다.
보긴 봤는데 뭘 봤는지? 풍경만 볼 것이 아니라
지형까지 좀 익혔더라면.. 사자평 앞 능선과 능선 사이에
큰 골로 갈라져 있는 것도 모르고.. 수없이 본 모습이지만
건성으로 보았으니 지형을 제대로 알리가 없지..







(적당하게 거친 길)

내려서면 넓은 길이 나오고
이정표가 죽전가는 방향을 가리킨다.





(재약산 아래 삼거리 간이 매장)

목이 말라 혹시나 했는데 문이 닫혔다.
할 수 없지. 죽전에 가서 목 좀 축이지 뭐
여기까지 4시간도 채 안 걸렸으니 12시 전에 죽전까지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 예상보다 조금 일찍 하산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길로 계속 갔다.)

이정표도 봤는데.. 뭘 봤는지..
한참 가다보니 제 길이 아닌듯 했다.
그래도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오겠지 하고 계속 갔다.
한참 가다보니 조망이 안 되어 조망되는 곳까지 가서
확인하니 이 길은 철구소로 내려가는 능선.. 아차.
와도 너무 와 버렸다.







(한 시간 넘게 헤매다 하늘을 본다)

오늘따라 지도도 안 가지고 오고,
나침판, 시계까지 안 가지고 왔다. 잘 아는 길이라고..
산에서 길을 잃으면 무조건 왔던 길로 되돌아 가야 하는 것이
상식중의 상식인데.. 길을 잘못 들어 여기까지 온 것도 자존심이 용납 않는데
이번에는 잔머리 굴리다 고생길로 들어선다. 되돌아가다 길도 없는 왼쪽
숲으로 들어섰다. 매점까지 되돌아가기는 너무 멀다 싶어 질러가겠다는 심산..
가던 길 오른쪽 멀지 않은 곳에 죽전삼거리 가는 허릿길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잡목 우거진 숲을 헤치며 한참을 내려갔지만 길이 나오지 않는다.
습지가 나왔는다. 사자평 습지와 다르다. 숲이 울창하다. 여기도 아닌 것 같아
옆 능선을 하나를 넘는다. 능선이라야 작은 둔덕 같지만 우거진 넝쿨들을
헤치며 진행하기가 보통 성가시지 않다. 오랜만에 해 보는 빨치산 산행.
여기도 아니다. 통화권까지 벗어났다. 마음이 조급해지려 한다.
침착하자. 하늘을 보며 잠시 숨을 돌린다.
아니다.
뒤늦게 철든 사람같이 기본에 충실하자며
갈 길을 찾아 치고 올랐다.





(다시 돌아와서 보니..)

이정표는 죽전삼거리를 확실하게
가리키고 있었지만 못 보았다. 언뜻 주암마을과
재약산만 보고 그 가운데 길로 간 것이다.





(간이매점에 되돌아오니)

2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 어쩐다.
전의도 상실하고, 시간도 너무 많이 까먹어 버렸다.
이 상태로는 힘들 것 같다. 자신만만하게 출발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복병을 만나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하는 수 없지.
산이 어디 가는 것 아니니..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시도해야 될 것 같다.
마음을 비우자.





(배낭 포켓에는 무슨 전과라도 되는 듯..)

낙엽이 한 줌 들어 있다.
하긴 빨치산 산행을 1시간 넘게 했으니..









(아하 그랬구나.. 너희들을 만나려고..)

아~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아무도 없는 산에 주인이 되어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한다. 벤치에 누워 한참동안 하늘을 떠가는 구름을 보다
혹시나 싶어 억새밭을 살피는데 이번에는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그래, 잃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이지. 물매화를 만났다.
구절초와 구슬붕이까지.. 영남알프스의 가을은 억새만이 주인이
아니라는 듯.. 사자평 습지와 단조성 습지는 물매화가 군락을 이룬다.
조금 늦게 찾아온 것 같지만 그 중 제일 예쁜 녀석을 찾아 본다.
오늘 길을 잘못 든 건 너희들을 만나기 위해서인 것 같지.
  제대로 갔더라면 만나지 못 했을 녀석들..







(이 계절 영알은 그래도 억새가 기세등등하다)





(자세히 보니.. 억새 숲 곳곳에 물매화가 숨어 있다)







(계획대도 걸었다면 차량회수는 문제없었을 텐데)

이제 원점회귀가 안 되니 승용차가 있는
배내고개까지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상황. 처음에는
죽전마을에서 16:10분 버스를 타면 되겠다 싶었는데
(울산-배내골 간 운행하는 328번은 토,일 공휴일만 운행한다)
오늘은 주말 아닌 평일 아닌가!






(마음이 바빠졌지만 억새는)

두 주먹 불끈 쥐고 시위하듯 눈 맞추자 한다.





(이름모를 이 꽃마저도..)

마음도 바쁘고 조금 멀리 있어 지나쳤는데
길섶에서 방긋 웃으며 발길을 붙든다. 그런데 가던 길 멈추고
  눈 맞춤하는 거야 하면 되는데 어쩌지.. 내가 네 이름을 몰라..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고 했는데..





(사자평 억새평원 조성공사..)

억새꽃을 좋아 하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억새밭을 만들어 관광 상품화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복원되어 가던 산을 파헤쳐 억새밭을 만들면
이 억새밭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인공적으로 자연의 복원을 막아야 한다는 것..
벌목이나 산불로 황폐한 지역에 억새가 먼저 자리 잡지만
시간이 지나면 싸리나무를 비롯한 식물의 군집이 바뀌는
식생의 천이가 진행되는데..





(고사리분교-향로산 갈림길, 제 길로 들어선다)

정작 여기는 죽전고개 표시가 없다. 향로산 방향으로 가야한다.





(가을이 지나가는 억새밭을 가로 질러..)







(59)









(발걸음을 자꾸 붙잡는다)

물매화, 참취, 그리고 구절초까지..
언제 있는지도 모르는 버스.. 까짓거 놓치면 어때
차 없으면 배내고개까지 걸어 보지 뭐
그래, 같이 놀자!
 자세히 보니 정말 예쁘구나!!





(사자평 억새밭)









(고사리 분교 쪽에서 올라오는 길)

철구소 방향 갈림길 4거리.. 여기에 이렇게 큰 골짜기가 있는데
 능선이 이어진 줄로 착각을 했으니 그렇게 철구소 상부에서 헤맸지..
끝까지 내려갔으면 여기서 내려가는 길을 만났겠지.
죽전 삼거리는 오던 길에서 계속 직진





(죽전삼거리, 죽전마을-향로산 갈림길)













(전망바위에 앉아 아쉬운 마음으로..)

산 속에서 산을 볼 수 없지만
산 밖에서 보면 산이 보이고 산은 각자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우뚝 우뚝하게 솟은 각각의 봉우리들은 서로 어깨동무하고 있어도
 나는 나다며 키재기 하듯 봉우리를 치켜 세우고 있다.





(건강해서 당당한 소나무들)

요즘 기후 환경 변화로 소나무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약해진 모습을 보이지만, 이곳의 장송들은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이어서 보기 좋다.





(죽전마을로 내려서는 날머리)

경사가 50도는 넘을 것 같다.
이 길은 하늘억새길 주 등로 아닌가? 하늘억새길
 홍보를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이런 위험한 길을 그대로 두다니..
오를 때는 조금 낫겠지만 비가 오거나 눈 오는 날 내려갈 때는
정말 위험할 것 같다. 영남알프스 곳곳에 데크를 설치하는 것보다
  이런 곳에 안전시설을 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드디어 날머리.. )

16:45분, 죽전마을 하산 완료.
오늘 의기양양하게 출발한 하늘억새길 종주는
이렇게 반 토막으로 끝났다. 세상사 계획대로 되면 좋겠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직선보다 곡선이 아름답고
계획에 어긋나도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으니 인생사 일희일비하지 말자.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내달려야 했으니
어쩜 그렇게.. 버스 시간을 알고 맞춘 것도 아닌데
4시 50분에 나가는 버스가 있다잖은가!









(들국화(?)와 코스모스.. 가을꽃)

배내고개에는 길 양옆으로
노란 들국화가 미소 짓고,
코스모스는 가녀린 몸으로
하늘하늘거리며 오늘 하루 애썼다고
응원하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심종태 바위, 그 뒤에 뒤는 재약산)

바둑 복기하듯 오늘 걸었던 길을 한 번 돌아 본다.





(제대로 걸었으면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2~3시간 뒤쯤에는 이 길로 내려 오고 있지 않을까.

오늘 아쉬운 산행을 했지만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어쩌면 다시 한 번 더 이 길에 들게 하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오늘 산행은 의욕만 앞세우고 산행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산행의 기본도 지키지 않아 가져온 당연한 결과. 사필귀정이다.
산에서는 길은 잃었다고 생각되면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야 한다.
방심하면 '동네 뒷산에서 길 잃는다.'는 말을 실감한 하루다.
알바도 산행의 일부라지만 산은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들고
늘 가던 산이라고 자만하지 말고 겸손할 일이다.
조만간 다시 날을 잡아 봐야겠다.



I Tuoi Fiori / Etta Scol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