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억새를 보잤더니 구름이 앞을 가려
2017. 11. 3. 01:35ㆍ山情無限/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억새를 보잤더니 구름이 앞을 가려..
(한 번에 가려던 길을 두 번에 나누어 간 하늘억새길)
2017. 10. 28 (토)
하늘억새길
(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평원-영축산-휴양림)
어문 길로 들어서서 헤매는 바람에 반쪽으로
산악 일기예보도 구름이 조금 낄 정도라니,
영남알프스의 억새도 꽃술이 파마한 듯 한창 부풀어 오르고
있을 때여서, 해를 마주보고 걸으면 억새가 더 화사하게 빛날 것 같아
배내고개에서 출발하여 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재-신불평원
-영축산-휴양림 코스로 잡고 억새 사진이나 실컷 찍자며
328번 버스에 오른다.
(이번에도 배내고개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하늘은 코발트 빛, 공기는 산 속 공기답게 맑고 싸늘하다.
고갯마루 주차장에는 막 도착한 대형버스에서 산객들을 쏟아낸다.
오늘은 억새가 절정에 다할 것 같다. 산객들도 많이 몰려왔다.
배내고개엔 노점상도 들어섰다.
(배내봉 오르는 들머리에도..)
(계절의 순환이 빠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녹음 짙은 터널이었는데
노란 단풍이 들었다. 성질 급한 녀석들은 벌써 낙엽이 되어
등로에 떨어져 발길에 밟히고 있다. 산행하기 좋은 계절..
신불평원 억새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배내봉은 그냥 패스)
배내봉에는 먼저 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오늘은 산 전체가 요란하겠지만 소란을 피해
조용히 걸으며 가을에 잠기고 싶다.
(숨어서 옷 갈아입고 나타났나?)
정말이지.. 이 길을 다니면서도 단풍나무의 존재도
모르고 지나쳤는데.. (마치 어릴 때 개울물이 잦아들면 약풀을 베어다
찌어 물에 풀면 꼭꼭 숨어 보이지도 않던 물고기들이 약에 취해 개울이 허옇케
전에는 본 모습을 알기 어렵다.
(저승골의 가을 본색.. 옷을 제대로 입었다.)
(구름이 점점 내려오더니 이제 간월산 정상을 덮고 있다)
(구름속의 간월산 정상)
정상에서 조금 비껴나 쉬고 있는데 한 산객이
서릉쪽으로 내려가려 한다. 불러 세워 '어디로 가려고 그 쪽으로
가려느냐? 날머리가 어디냐?'하고 물으니 그냥 따라와서 잘 모른다며
일행들을 신불산 정상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신불산 가는 방향을
알려 주기는 했지만.. 산행 코스 숙지도 않고 날머리도 모르고
따라 나서는 모습이 걱정스럽다. 이렇게 안개로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는 일행에서 이탈하기 쉬운데 정말 위험하다. 이런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랬는데.. 오늘은 기상 탓이기도 하겠지만
간월산 정상에서 영축산에 이르는 동안 길 잃은 사람들 안내하느라
내 페이스대로 산행을 못할(?) 정도가 되었다.
(구름이 많이 짙어졌다)
(억새도 많이 의기소침한 모습이다)
(간월재도 구름 속에 잠겼다)
(신불산 오르다 뒤돌아 본 간월재)
(신불산 오르는 중간 데크에서..)
(서울서 왔다는 MTB 자전거 동호회원들..)
통도사까지 자동차로 이동하여 영알에 들었다고 한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 물었더니 '영축산 거쳐 사자평으로 간다'고 한다.
좀 이상하다 싶어 '그러려면 배내골까지 내려갔다가 죽전에서 다시
산을 올라야 하는데 오름길이 급하고 사자평으로 가면 밀양 쪽이기
때문에 자동차가 있는 통도사하고는 방향이 반대다 하니..
선두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신불산 정상은 이 와중에도 사람 가득..)
이번 주를 억새가 절정을 이룰 것으로 멀리서도
많이 찾은 것 같다. 어쩌지.. 제대로 보고 갔으면 좋겠지만,
이것이 영남알프스의 자연스런 모습인데..
아마도 다시 찾으라는 뜻일 수도 있고..
(산도 숨기고 길도 숨긴 구름? or 안개?)
신불산에서 내려서는데 안개비까지 내린다.
나뭇가지에는 물방울 맺혀 뚝뚝 떨어진다.
(오리무중, 오후 1시인데도 캄캄하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기온이 4℃까지 급강하 한다.
점심먹느라 잠시 쉬었더니 내림 길이라서 추위가 더 느껴진다.
패딩까지 껴입고, 반장갑은 손이 시려 보온장갑으로
바꿔 끼며 완전무장을 했다.
(천생, 억새는 이런 모습으로 밖에..)
신불재에 내려서니 하늘억새길 안내지도를 보면서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고 있는 산객들에게 휴양림 쪽으로 내려가는
길과 버스시간을 알려주고 영축산 방향으로 향하는데.. 거의 여름산행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산객이 추위에 얼은 모습으로 내려온다.
저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 마침 가지고 있던 1회용 비옷을 주었다.
도움이 되었을 런지. 정말이지 지금은 신불산대피소가 대피소로의
기능을 못하고 있는데 이럴 때 대피소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다.
(꽃이나 사람이나 세월 앞에는 장사 없지 뭘)
조금 전 비에 젖어 처량한 모습을 한
산오이풀이 있길래 조금 나은 녀석이 나타나면
찍어 주려 했는데 지나쳐 왔는데 이제 그런 녀석조차 없다.
하긴 지난번에 구절초가 미소 지을 때 품위가 좀 떨어졌다
했는데 떠날 날 받아 놓아서 그랬나 보구나
구절초가 데려 온 가을을 데리고 가려 한다.
(인생사나 영알이나 바람 잘 날 없기는 마찬가지)
바람이 얼마나 괴롭혔으면 저렇게
돌아서 있을까!
(영축산, 늘 찍는 정상석이지만..)
(영축산 정상에 오른 MTB 동호회원들)
내려가는 길을 알려 주었으니 잘 내려갔겠지?
거친 길을 조금만 내려가면 MTB로 가기 좋은 임도가 나온다 하니까
고생 끝난 듯 다들 좋아했는데.. 사실 이 팀은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축산을 내려가다 만난 올라오던 두 사람은 걱정이 된다.
청수골 중앙능선 가는 길을 묻기에 그 길은 위험하다며 단조늪을 지나는
하늘억새길과 신불재에서 내려서는 길을 가리켜 주었더니 MTB 자전거를
메고 가파른 길을 올라오느라 그 길은 엄두가 나지 않는 듯한 모습..
그래서 청수좌골로 내려가라 했더니 한 사람은 통도사 쪽을 묻는다.
지도를 펼쳐 길을 가르쳐 주며 그쪽으로 가면 차가 있는 휴양림까지는
먼 길을 돌아야 한다고 나름대로 설명해 주었는데 문제는
두 사람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다는 것.
(이 와중에도..)
영축산 정상부근에도 두 세 팀이 보였는데 여기
단조늪에도 7~8명이 쉘터를 치며 야영 준비를 하고 있다.
안개비 촉촉히 내리는 산정에서의 야영..
그들의 낭만이 갑자기 부러워진다.
(억새밭은 식생천이(植生遷移)가 진행 중)
억새밭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자연이 복원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반길 일 아닌가!
(단조성터)
해발 940m ~ 970m 능선부 신불평원에는
이 늪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단조성터이다. 억새군락지 너머로
이곳 지형이 단지모양을 이룬다 하여 단지성이라고도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취서산 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이 성을 지키던 의병들은 왜군의 기습을 받아 수많은
인명이 전사해 그들이 흘린 피가 못을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영조 때 암행어사 박문수가 올린 보고서에서 단조성을
'산성의 험준함이 한 명의 장부가 만 명을 당할 수 있는 곳'이라
(단조 샘)
참 샘인 단조 샘도 물이 거의 말랐다.
어지간한 가뭄에도 물이 풍부한 샘인데 가뭄 탓인지?
아니면 물길이 바뀌었는지..? 단조 샘 물도 마르고..
한 때 정염을 태웠을 듯 한 단조 샘 단풍도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잎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청수좌골로 내려설까 하다가 휴양림 쪽으로..)
청수좌골도 자주 찾던 길이었는데 펜션이
등로를 막는 바람에 청수골 쪽으로 잘 와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청수좌골로 가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하늘억새길을 따라 휴양림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 길도 참 오랜만에 걸어 본다.
(나무는 벌써 겨울에 맞설 준비를 한듯..)
16시 10분 버스를 타기에 넉넉한 거리였지만
오늘은 간월산에서 영축산에 이르는 구간에서 10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산길을 안내하느라 제대로 걷지 못하고 시간을 보낸 탓에
17시 20분에 있는 막차를 타려고 마음을 먹으니
여유를 찾으며 너럭바위에 등을 대고 누우니
하늘은 벌써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온 것 같다.
먼 길을 떠나려고 단촐하고 의연한, 결의에 찬 듯한
(여기는 딴 세상, 가을 분위기가 물씬하다.)
산 중턱까지 짙은 구름이
단풍나무들이 나름의 때깔로 본색을 드러내고 자랑한다.
이럴 때 따스하고 고운 태양이 뒤에서 비춰주면 색이 제대로 살아날 텐데..
곱게 물든 단풍들이 찬란하게 웃으며 경쟁하듯 맵시를 뽐낼 텐데..
숲에 내려앉은 가을을 반기며 자지러질 텐데..
오늘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깝구나.
(獨也靑靑(독야청청)! 넌 누구냐?)
(지는 잎 속으로, 가을 속으로..)
(인생도 단풍들 듯 흘러가는 것)
나의 마지막 모습도 화려함 보다
이렇게 은은하고 잔잔하게 물들었으면..
(??)
(어디에서 이런 색이 배여 나올까?)
비를 타고 왔을까?
바람에 실려 왔을까?
인간이 이리 칠할 수 있을까?
자연은 그 자체로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
돌아보면 기적 아닌 것이 없다.
(현재 시각 4:30, 여유 있다고 생각했다)
(파래소 폭포, 오랜만이어서 더 반가웠다.)
날머리에서 800m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파래소 폭포로
향했다. 막차 시간까지 50분이 남았으니 갔다 와도 충분할 것
같았다. 수량이 줄어 기세가 덜한 폭포 사진 몇 장을 찍고 시계를 보니
벌써 4시 50분. 이크! 급해졌다. 막차를 타려면
백련 정류장까지 30분 만에 가야 하는데..
(마음 졸이며 걷다가 뛰다가..)
폭포에서 휴양림 정문까지 10분 걸렸다.
막차 시간까지 남은 시간 20분. 급한 마음에 뛰며 걷기를
반복하여 5시 19분에 정류장에 도착했다. 휴우~ 한 숨을 돌리자
328번이 오더니 휙 유턴을 하고는 정류장에 서지 않고 그냥 가 버린다.
'왜 그냥 가 버리지?' 했는데 알고 보니 여기는 양산 땅, 양산 2번과 100번
버스가 서는 정류장. 울산 버스 328번은 여기서 안 서고 울산 땅에 선다는 것.
아~ 탄식이 나온다. 이 허무한 마음..! 막차를 타려고 그렇게 마음 졸이며
바삐 달려 왔는데 눈 앞에서 막차를 놓치다니 이런 낭패가.. 어떡하지?
일단은 울산 쪽으로 가 보자며 걸어 올라가니 저 앞에 328번 버스가 보인다.
파래소 유스호스텔 앞이 백련인 줄 알았는데 그기는
양산 태봉 정류장이고, 약 200m 위쪽에 울산 백련 정류장.
승용차 타고 다닐 때야 그기가 그긴 줄 알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산 공부 제대로 한다.
막판에 여유 부리다 십년 감수 할 뻔 했지만,
오늘 산행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날이다. 지난번 준비 없이 산에 들었다가 차질이 생긴 것을
그나 저나 지난 번 실패한 종주를 오늘도 이루지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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