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5. 01:06ㆍ山情無限/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산은 역시 혼자 가야 제 맛이다.
등억 웰컴복합센터 - 홍류폭포 - 칼바위 능선(우회) - 신불산
- 간월재 - 간월 공룡능선 - 등억 웰컴복합센터 (원점회귀)
18. 1. 13 (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산에
가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혼자서 무슨 재미로,
또는 산에서 위급한 상황에 닥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는
노파심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배낭을 메고 혼자 산자락으로 드는 모습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미지의 산인 경우는 더 그럴 것이다.
하긴 정맥길을 홀로 걸을 때 수렵기간에는 포수의 총이 겁이나 눈에 잘 띄고
총 쏘는 것을 중지해 달라는 심정으로 빨간색 배낭을 메고 다니기도 했다.
혼자 산에 드는 것이 겁이 안 나는 것도 아니고, 산길을 헤매며 어려운 고비를
안 겪은 것도 아니고, 혼자 산에 든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산에 드는 것은 위험을 무릅쓸 줄 알고, 외로움도
이겨내며, 자신을 성찰하기에는 혼자 산에 드는 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 같다.
선배 산악인은 등산의 목적을 "괴롭고 외로운 그리하여 궁극적인 자아를 건지기
위함이니 괴롭고 외롭지 않으면 이미 등산의 참 면목은 퇴색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영남알프스는 여럿이
어울려 가도 좋고, 혼자 가면 더 맛 나는 산이다.
영하 5도, 날씨만큼이나 고적한 산길에 들어섰다.
싸한 기운이 몸을 엄습한다.
추위는 결집시키는 힘이 대단한 것 같다.
가뭄으로 물방울만 뚝뚝 떨어드리던 홍류폭포.. 그 물방울들을 모아서
고드름을 만들고 빙폭을 만들었다. 흘려보내지 않으면 저렇게 모이는 것을..
우리가 흘려보내는 것은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만이 아닐터.
추운 시간이 얼마나 더 흘러야 아이스 클라이머들이 저 빙벽에
붙을 수 있을까. 갑자기 2년 전 얼음골 빙벽에서 유명을 달리한
정윤선 강사님이 생각난다.
된 비알 오르기가 힘들지만 정상은 이 비알이 받치고 있는 것.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가깝다고 했던가. 고독하게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납덩이를 단 듯, 무거운 다리는 연신 쉬어 가고 싶은 유혹을 받아도 뿌리쳐야 한다.
누가 가라고 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대신 가줄 수 없는 길이기에 어쩔 수 없다.
세상에서 정말로 정직한 것이 있다면,
한 걸음도 건너뛰지 않고 이어가는 등산인의 발걸음과 그 궤적.
이마에 땀 흘리며 농사짓는 순전한 농부들,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
정상가는 길에 내리막은 없고 된비알 후 만나는 손바닥 만 한 평지도
가뭄 속의 단비 같은 것. 가쁜 숨을 돌리고 다시 오를 힘을 주니
감사하고 감사하다.
밧줄구간.. 밧줄도 얼었고, 언 바위 위에 눈이 살짝 덮여 있다.
바위도 밧줄도 미끄럽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대비하면 낭패 당할 확률이 낮아진다.
사고는 무모함과 생각 없이 덤빌 때 일어나기 쉬운 것.
칼바위 능선은 미끄럽고 몸은 아직도 무겁다.
오늘은 이 길을 피해 우회 길로 가야겠다.
우회 길로 신불산 정상에 올라 뒤돌아 본 신불 칼바위 능선,
칼바위 능선도 오늘은 개점 휴업한 듯 한 사람도 안 보인다.
신불산 정상의 돌탑, 무너지기도 잘 무너지고
쌓기도 잘 쌓는다. 오히려 무너진 모습이 산과 더 잘 어울리더만..
자연 속에 부자연스런 저 모습이 무어람. 봉화대도 아니고 ..
내가 낸 세금으로 저 짓을 한다니 세금이 아깝다.
신불서릉-간월재 갈림길에서 본 신불산 방향
산객도,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이는 寂寞空山
산은 역사 혼자 가는 것이 맛이 난다.
다도에 혼자 즐김은 신(神)이요,
둘이 마심은 수(殊)요,
또 셋이면 승(勝)이라고 했던가.
그런 경지를 감히 말할 처지는 못 되지만..
산 그리메가 좋다.
채이등 죽바우등 향로봉까지 당겨 본다.
간월재 모습
오늘은 시골 장터 같던 간월재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
이게 누구신가?
영남알프스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명산 김승곤님을 여기서 만나다니..
명산님은 영남알프스를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 "영남알프스" 블로그 운영자시다.
오늘같이 이렇게 산객이 없어 헐빈한 간월재에서 명산님을 만났다.
역시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나 보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임도로 하산하는 산객들..
간월산 오르다 뒤돌아 본 간월재 모습
억새는 꽃술을 남김없이 훌훌 다 날려 보내고
겨울과 맞서며 봄을 기다리고, 또 가을을 기다릴 것이다.
사람이나 억새나 먼 길 떠날 때는 단출해야 한다.
신불 서릉과 배냇골로 향하는 임도..
간월산 규화목 (목재 화석)
규화목은 화산활동이나 홍수 등 강한 힘에 의하여 파괴된 목재조직이
산소가 없는 수중환경으로 이동하여 매몰된 후, 지하수에 용해되어 있던
다양한 무기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목재조식의 세포내강 또는
세포간극에 물리.화학적으로 침적 또는 치환되어 생성되었다.
간월산 규화목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의
'한국의 지질 다양성' 울산지역 조사 중 발견되었으며, 해부학적
조직 분석결과 나자식물(침엽수) 목재의 특징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생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매몰-보존된 현지성 화석으로
생육 기간 중의 환경조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
한반도 및 울산의 중생대 식물상과 고 환경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한다.
바로 머리 위에 간월산이 있지만 간월공룡으로 우회전..
하산은 이곳 간월공룡으로..
간월 공룡으로 막 내려서려는데 산객 한 분이 돌탑 쪽으로 가면서
"이 길로 가면 어디로 가느냐?" 기에 그쪽은 길이 없고 이리로 가야 한다 하니까
길을 잘 모르는데 일행을 만나 다행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산객 배낭에는
빈 페트병 여러 개를 배낭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뭔가 하는 생각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산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산꾼을 만나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일급 조망처에서..
간월재로 향하는 눈으로 칠갑되어 선명한 임도.
저 임도도 몇 군데나 물길을 건드려 큰비가 오면 자주 무너져 내린다.
간월재 돌탑같이, 신불산 정상 돌탑같이..
황량한 겨울 산.. 갑자기 추사의 세한도가 왜 생각나지?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송백이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간월 공룡능선 상단 초입부도 당겨 보고..
조망을 즐기는데 갑자기 엄습하는 걱정..
이제 저 숲 속에는 산토끼도 고라니도 살지 않는 것 같다.
지난 가을 신불재에서 방뎅이가 큰 오소리를 보기는 했지만
산에서 산 짐승 보기가 힘들어 졌다. 저기에 케이블-카 까지 놓는다는데
달나라에서 쫓겨난 토끼 신불산에서도 쫓겨난 것 같다.
산에 산돼지만 우글거리면 어떻게 될까!
이제 저 앞 바위 구간만 지나면 고생 끝
신불 공룡능선이 밖으로 드러난 거친 바위 능선이라면
간월 공룡능선은 대부분 땅 속으로 내려서는 까탈스런 길이다.
이제 마지막 밧줄을 잡고 내려선다.
간월공룡능선은 들고양이 같이 까탈스런 길이 끝나면
이렇게 호젓한 길이 열린다. 마치 힘들여 내려선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편안한 길.. 긴장되었던 마음을 풀고 유유자적 걷고 있는데, 마치
포수에 쫓기는 고라니 같은 젊은 외국인 남녀 한 쌍이 달려오더니
휙 지나간다. '하이!' 하니 '안녕하세요!' 하면서..
카메라를 꺼내니 벌써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쩜 그렇게 고라니 같이..
간월재 오르는 임도를 횡단하여 직진
곧추선 듯 가파른 길이어서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오르기도 힘들고
내려서기도 힘든 길인데 낙엽이 길을 덮었다. 미끄럼을 타며 내려선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말라는 것 같다.
가뭄으로 골짜기 물이 말라 보였다.
물 마른 계곡을 찍다 발을 헛디뎌 낙엽이 쌓인 곳을
밟았더니 그기엔 신발을 흥건히 적실 물은 고여 있었다.
복병은 언제나 숨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산행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날머리에서 이렇게 당하다니..
어떤 산악인이 그랬다지,
"등산의 완성은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날머리 복합웰컴센터 &
날머리에서 되돌아 본 신불산 간월재 방향.
온종일 새초롬하던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든다. 작별 인사인 듯하다.
고적한 산행에 감사한 하루.
한계령 / 양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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