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21. 00:05ㆍ山情無限/산행기(일반)
덕유산, 비를 맞으며 출발하였으나 전화위복이 된 산행
2018. 1. 16 (화)
구천동탐방지원센터-오수자굴-중봉-향적봉-설천봉(곤돌라로 하산)
올해 산과의 관계를 회복해야겠다는
나의 의지를 시험하는지.. 지리산은 대피소 예약까지 해 놓았는데
대설주의보로 입산통제를 하고 산에 오지 말라더니, 덕유산을 가겠다고 하니
동장군이 설치던 겨울 날씨가 갑자기 풀리면서 비소식이다. 이제는 겨울비가 겁나는데..
하필 악방 정기산행 첫 출정인데 어떻게 하지? 망설이다 대기자가 있으면 양보할까 했는데
대기자도 없다. 꼬리 내리기가 그렇다. 그래 잘 되었다. 이렇게 핑계거리를 만들면 올해도
산에 제대로 다니지 못할 것 아닌가! 까짓것, 우중산행 채비를 단단히 하여 집을 나선다.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더니 울산의 하늘도 당장이라도 비를 뿌릴 듯
구름이 잔뜩 내려 앉아 있다. 늘 빗나가는 것이 기상청예보라 오늘도 일기예보가
빗나가기를 바랐지만, 이럴 때는 예보가 적중할 것 같다는 예감.
그러나 예보가 적중하더라도 희망은 있다.
비가 1~3mm로 그렇게 많이 오지 않는다는 것과
덕유산은 기온이 -1℃ ~ 1℃ 사이 일 거라는 것.
잘 하면 눈을 맞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그것.
출발하기 전 단체사진 한 장 찰칵..
대 군사다. 무려 44명. 만차로 왔다.
기상청도 거의 맞추었다.
12시부터 온다던 비가 11시 조금 전부터 내리기 시작했으니..
오늘 같은 날은 기상예보가 빗나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대국적으로 보면 기상청이 이렇게 맞추어 가는 것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하늘이 하는 일을 이렇게 맞추다니 기상청 예보에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비가 그쳐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정상에서는 눈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를 가지고
구질구질한 겨울비를 맞으며 덕유산 향적봉을 향해
출발!
구천동탐방지원센터, 덕유산 산문에 들어선다.
이전에는 삼공탐방지원센터라 했는데..
눈이 귀한 곳에서는 일부러 눈 보러 오는 사람도 있는데
눈이 많은 지역에 사는 사람은 눈 보러 오는 사람이 이상할 것이다.
비로 눈이 많이 녹았지만 이런 눈도 감지덕지
구천동 계곡은 옛날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자 관문이었다는
라제통문(전북 무주군 설천면에서 무풍면으로 가는 경계에 암벽을 뚫은 통문)을 지나
향적봉까지 이르는 계곡. 수려한 절경과 풍치를 자랑하지만 인월담, 구월담, 안심대,
명경담, 백련담도 다 그냥 지나쳐 왔다. 이 길은 산길이라기보다 산책길에 가깝지만
덕유산 주능선 종주를 하고 터벅터벅 내려 올 때는 정말 지겨웠는데..
오늘은 그렇게 지루하지 않다.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카메라는 벌써
비를 맞아 패킹하여 재킷 안 가슴에 품었다. 형상이 꼭 해산달 맞은
여인의 배 같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카메라 꺼내기가 귀찮아
절경은 눈으로 가슴에 담는다.
6km를 2시간 걸어 도착한 향적봉과 오수자굴 갈림길,
일행 대부분 백련사에 올라갔다.
하산 하던 여인 2명, 직진하여 쭉 내려가면
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고 일러 주었는데 아무래도
동엽령에서 안성 방향으로 내려서야 할
산객들인 것 같았다.
이제부터 포장된 도로가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이다.
처음엔 눈과 산죽이 어울리는 호젓한 오솔길 같았는데..
어찌 산길이 그냥 산길이겠는가..
중간에 숨을 돌리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조금 전까지 비가 왔는데
다행이도 오수자굴 직전부터 비가 눈으로 변했다.
산에서 눈을 만나다니.. 갑빠 산행대장 마음고생이 좀 덜어졌으려나.
하늘이 하는 일인데 2~3주 후의 날씨를 어떻게 알고 날을 잡겠는가!
그걸 알면 신이지. 산행대장은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것도 많아 참 힘들겠다.
하늘이 하는 일까지 신경 써야 하고.. 전화위복으로 이렇게 제대로 된
눈꽃 산행을 안내한 갑빠 대장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지금까지 맞은 비는 이미 다 보상받았다.
이 코스 겨울 산행의 백미는
오수자굴의 역고드름이 아닐까! 주능선을 걷다가
이 역고드름을 보고 다시 올라가기도 한다는데..
일반적으로 고드름은 물이나 눈이 녹으면서
흘러내리다 얼어붙으며 거꾸로 매달려 형성된다.
그러나 오수자굴 고드름은 일반적인 고드름과는 달리 땅에서
위를 향하여 자란다. 석회동굴에서 자라는 종유석과 흡사하다.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어 추운 날 따뜻한 공기가
위로 올라가 동굴 천장의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물방울이 차가운
바닥에서 얼면서 쌓이는 것이 마치 동굴의 석순이 위로 자라는
것과 흡사하다. 일반 고드름이 창처럼 끝이 뾰족한 반면,
오수자굴의 역고드름은 머리가 뭉툭한 이유이기도 하다.
날씨가 추울수록 역고드름이 많이 자란다.
급경사가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힘들다.
덕유산 설경을 담으러 왔는데 설국에서 카메라를 꺼내지 못하고
헉헉대며 걷기에 바쁘다. 카메라 가방에 카버까지 씌웠으니
꺼내기도 귀찮다. 사진 한 장 찍기도 힘들다.
내 몸의 무거움을 비로소 알게 하는 길입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느리게 올라오라고
산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이리 고되고 숨 가뿐 것 피해 갈 수는 없으므로
이것들을 다독거려 보듬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나무둥치를 붙잡고 잠시 멈추어 섭니다
내가 올라왔던 길 되돌아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워 나는 그만 어지럽습니다
이 고비를 넘기면 산길은 마침내 드러누워
나를 감싸 안을 것이니 내가 지금 길에 얽메이지 않고
길을 거느리거나 다스려서 올라가야 합니다
곧추선 길을 마음으로 눌러앉혀 어루만지듯이
고달팠던 나날들 오랜 세월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다워
그리움으로 간절하듯이
천천히 느리게 가비얍게
자주 멈춰 서서 숨 고른 다음 올라갑니다
내가 살아왔던 길 그때마다 환히 내려다보여
나의 무거움도 조금씩 덜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편안합니다
깔딱고개 / 이성부
오랜만에 나서는 단체 산행이 신경 쓰여 나름 산행 체력을 조금이라도
보충하여 참석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문수산 두세번 오른 다음 가지산도 오르고, 지리산도 갔다 와서 덕유산 산행에 참석하려 했다.
그런데 감기몸살로 문수산은 한 번도 못 오르고, 준비도 없이 가지산은 생짜배기로 올랐다.
지리산에 갔다 오면 몸이 좀 가벼워지겠지 했는데.. 시골집에서 지리산으로 막 출발하려는
순간 반갑잖은 문자가 날아왔다. "지리산 지역 대설주의보로 입산 통제 대피소 이용 불가.."
아뿔싸! 이제 지리산 너마저 오지 말라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주말에
신불산을 찾았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 쉽게 적응이 되겠는가.
이 길은 쉬운 길인데도.. 산에는 자주 가는 사람이 장사다.
겨울은 마술사다. 마른 가지에도 이렇게 하얀 눈꽃을 피우다니..
반가운 중봉 0.5km를 가리키는 이정표.
중봉까지 오르면 향적봉까지는 거의 고도차 없이 평지나 다름없는데..
이번 산행은 오수자굴 직전에서 중봉까지가 피크.
울며 겨자 먹기는 아니고.. 힘은 들어도 기분은 상쾌하다.
하얀 눈을 맞으며 걷는 제대로 된 눈길 산행이다.
좋다. 백설의 화원이다.
눈처럼 세상의 모든 허물을 덮을 수 있다면..
눈 위에 드러눕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만
백지 같이 깨끗한 눈에 낙서하고 싶지 않은 마음..
가쁜 숨도 돌리고, 고생하는 다리에게도 잠시의 휴식을 주고..
오르막을 끝까지 올라 이어가야 할 길이기에..
덕유산 멋진 산길에서 오랜만에 만난 산우들.. 반갑다. 멋있다. 이쁘다.
중봉, 드디어 주능선에 올라섰다.
주능선에 오르니 상황이 급변하여 찬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며
완전 겨울 분위기다. 얼른 두터운 재킷을 겹쳐 입었다. 본격적인
설경이 펼쳐질 텐데.. 손도 시리다. 그보다 시간이 없다.
덕유산의 상징 주목과 구상나무..
중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이 길에는 주목군락
복원 조림지로 약 5백 여 그루의 주목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눈으로 덮이고 조망이 없어 주목과 구상나무가 잘 보이지 않지만
오래 된 주목과 고사목이 덕유산을 덕유산답게 한다.
그런데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도 많이 사위어 가는 것 같다.
이 길..
봄에는 철쭉과 어우러지는 주목이 장관이고,
여름엔 원추리와 온갖 이름모를 꽃들이 장관이고,
이 겨울은 눈을 뒤집어 쓴 주목이 장관이다.
이런 모습 사진에 좀 담아야 하는데..
갈 길이 많이 바쁘다.
발길은 더디고 마음이 바빠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지만,
예쁘게 폼을 잡는데야.. 카메라 꺼내고 넣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예쁜 모습 담아 보려 했는데.. 담 기회로 넘겨야 할 듯..
눈을 뒤집어쓰고.. 설국에서 고적해 보이는 향적봉 대피소
얼마 만에 보는 향적봉 대피소인가?
대간길을 갈 때 빼 먹은 덕유산 구간을 땜빵하느라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육십령에서부터 이곳까지 와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백암봉에서 대간팀을 만나 이어간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날을 생각하니 갑자기 육십령 휴게소 조정자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아직도 잘 계시겠지?
(향적봉 / 1614m, 덕유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다음으로 높은 산)
지금 시간이 4시 25분..
오늘 곤돌라 운행이 4시 30분에 끝난다며
빨리 내려오라고 방송으로 연신 재촉하여
정상석도 한 번 쓰다듬어 보지 못하고
설천봉으로 직행..
몇 년 만에 찾은 향적봉인데..
설천봉은 완전 안개 속이었다.
곤돌라 탑승장 가는 곳도 그냥 방향만 잡고 걸어갔다.
설천봉은 안개가 짙어 방향을 분간하기 어려운데 악천후 시 길을 안전하게
찾을 수 있도록 유도등이나 안내판을 제대로 세워 주었으면 좋겠다.
탑승장에 도착하자마자 곤돌라에 올라 하산. (1520m 설천봉에서 725m
설천베이스까지 2,659m를 초속 5m로 내려오니 채 10분도 안 걸린 셈)
(슬로프 운영시간 : 오전 : 9시-12시30 (주말 8시 오픈),
오후 : 12시30-4시30,야간 : 6시30-10시)
지금은 오후시간 끝나고 야간 시작하기 전이라 슬로프가 조용한 듯..
아직 개봉도 안한 스키 스틱은 언제 써 보지..
곤돌라 타고 설천베이스로 하산하여.. 슬로프를 배경으로 한 컷..
멋있다! 듀퐁님, 총대장님 수고 많았어요.
덕유산 정상에는 눈이 내리는데
여기는 아직도 겨울 찬비가 봄비 같이 내리고 있다.
저기 우리 버스가 보인다.
( 산행코스 )
장쾌한 주능선을 종주하기 정말 좋은 덕유산.
근래에는 곤돌라를 타고 향적봉까지 20분 만에 오를 수 있으니
남한에서 4번째로 높은 고산인데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까지 인기가 많은 산.
눈꽃이 장관인 겨울 덕유산 모습도 담을 겸 겸사겸사 악방 첫 정기산행에 참석했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아 덕유산의 설경은 제대로 담지 못했다. 아마 여태 무심했던 것을 탓하며
한 번 더 오라고 숙제를 주는 것 같다. 그렇게 힘들지 않은 코스를 힘들게 올랐으니
아직도 무거운 발걸음에 대한 질책일 수도 있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오수자굴의 역고드름도 만나고, 비를 맞으며 출발했으나 전화위복이 되어
눈을 맞으며 눈길을 걸었으니 제대로 된 눈 산행을 한 것 같아 감사하고,
많은 인원이 궂은 날씨에도 아무 탈 없이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감사하다. 함께한 모든 분들 반가웠습니다.
산행을 준비하고 이끈 운영진과 산행대장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그토록 그리움이
테너 이영화
* 사진이 부족하여 하늘지킴이님, 김둘리님, 듀뽕스님 사진을 빌려와 글을 완성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山情無限 > 산행기(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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