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기 전 / 김두일

2018. 2. 7. 02:01시,좋은글/詩






봄이 오기 전 / 김두일



 남으로 가는 기차를 타겠습니다. 더딘 열차에서 노곤한 다리, 두드리는 남루한 사람들과 소주잔을 나누며 지도에도 없는 간이역 풍경들과 눈인사를 나누겠습니다. 급행열차는 먼저 보내도 좋겠습니다.

 

 종착역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자운영이 피고 진 넓은 들을 만날 수 있다면. 들이 끝나기 전, 맨발로 흙을 밟아 보겠습니다. 신발을 벗어들고 천천히, 흙내음에 한참을 젖겠습니다. 쉬엄쉬엄 걷는 길, 그 끝 어디쯤에 주저앉아 혼자 피어있는 동백이며 눈꽃이며 키 작은 민들레의 겨울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봄이 깊기를 기다리라고 이르기도 하겠습니다.


 기차가 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에 귀를 열고 해지는 들에서 노을 한 개비를 말아 피우겠습니다. 이제껏 놓지 못한 시간을 방생하겠습니다.


 봄이 오기 전, 완행열차를 타고 남으로 가겠습니다. 남녘 어디라도 적당합니다


      

출처 : 목각편지(네이버 블로그)



김두일 (외별, 1964 ~ )
서울 출생, 천리안 문단작가협회 회원
계간지 <시와창작> 작가 모임 회원
공저시집 / 기억으로 도는 시계바늘 (2004년 책나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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