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어머니 / 오영재

2018. 2. 24. 21:35시,좋은글/詩







아, 나의 어머니 / 오영재

늙지 마시라
더 늙질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 살씩 먹으리 

...



오영재(1935.11.7~2011.10.23)
북한 계관시인,
전남 장성 출생





"아, 나의 어머니"에 관하여...

오영재 시인이 남녘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90년 재미교포 한 문인(김영희씨)이 북한 방문 중 문인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한겨레>에 기고했다. 이 기고문에 오영재 시인의 아픈 망향 사연이 실렸다. 남녘의 오영재 시인 형이 그 사연을 읽고는 김영희씨를 통해 북녘 동생에게 편지와 가족사진을 전달했다.

오영재 시인은 형의 편지로 어머니가 살아있음을 알고는 이듬해 '아, 나의 어머니'라는 시를 미주 지역 문예지 <통일예술>에 발표했다.
 
   아, 나의 어머니
      - 40년 만에 남녘에 계시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늙지 마시라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도
   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세월아, 섰거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 살씩 먹으리


   검은머리 한 오리 없이
   내 백발이 된다 해도 
   어린 날의 그 때처럼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어
   통일 향해 가는 길에
   가시밭에 피 흘려도
   내 걸음 멈추지 않으리니


   어머니여 
   더 늙지 마시라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내 어머니를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
   오마니!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던 어머니였건만 오영재 시인이 2000년 남북 이산 가족상봉단으로 서울에 왔을 때는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였다.



오마이뉴스(12.02.08) "저 남녘엔 나의 어머니 형제들이 있다" 기사 발췌



※ 서울에 살고 있는 형 오승재(소설가)는 자신의 꽁트와 동생 오영재 시인의 시를 모아 수필집 『개구리왕국』(오승재의 꽁트와 북녁시인 동생 오영재 시인의 사모곡, 하늘기획, 2002)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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