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삼대 구 년만의 성대 종주

2018. 8. 1. 00:33山情無限/지리산





삼대 구 년만의 지리산 성대 종주
( 3일 동안 천상의 화원을 거닐다 )



18. 7. 23(월) ~ 25(수)
성삼재 - 대원사 구간
그림자 벗 삼아





무기력증에 빠져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머리는 지리종주를 생각하고 있다. 그래 지리 종주를 하자
마침 주일 오후에 시골 가야 하는데 목요일이 어머니 병원 예약일이니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지리산을 갔다 오면 되겠다.
울산에서만 지리산이 먼 줄 알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니 의령에서도 구례는
멀다. 화대 종주를 하고 싶으나 노고단 통제소를 통과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진주까지 승용차를 이용하면 대중교통으로도 12시 이전에 성삼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정말이지 화대 종주를 하고 싶은 이유는, 법원 판결까지 무시하고, 861번 도로를 막고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날강도같이 돈을 갈취하고 있는 천은사 매표소를 피하고
싶은 것도 한몫한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영상을 만들어 U-Tube에도 올려서
 국제적인 판단을 받아 보도록 해 보자. 성삼재에서 유평까지 종주하기로 한 
마음에 어떤 결의까지 생기며 불편한 마음이 조금 나아진다.
전장에 나가는 심정이 되어 성삼재로 가기로 했다.
 에이 이게 무슨 일이람, 좋은 지리산에 들면서..






(11:17, 성삼재 도착)

성삼재행 군내버스 출발시각까지 여유가 있어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는데.. TV에 '노회찬 의원 투신 사망'이라는
자막으로 속보가 뜨는 것 아닌가! 꿈인가 생신가? 반도 안 먹은 짜장면
젓가락을 놓고 말았다. 노고단행 버스에 몸을 싣긴 실었는데 믿고 싶지 않은
비보를 확인하느라 천은사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데 벌써 버스가 천은사
매표소 앞에 섰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내어 날강도가 돈을 강탈하는
장면을 찍으려는데 멈췄던 버스가 그냥 출발한다.
어라, 이제 날강도짓 그만뒀나? 그럼 다행이고.. 매표소를
무사히 통과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노의원에 대한 생각은
연속극같이 다시 연결되어 머리를 혼란하게 만든다.
아~ 왜 이렇게도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할까!







(11:25, 성삼재 출발)

오늘 구간 중 고도 330여m를 높여야 하는
성삼재-노고단 구간이 첫 번째 고비인데 시작부터 발걸음이 무겁다.
날씨까지 무더워 화개재에서 토끼봉 오르는 구간, 연하천 대피소 직전
명선봉 오르는 구간에서 고생깨나 할 것 같다. 문수산을 서너 번 오르긴 했지만
산길에 무뎌진 몸이 제대로 적응할 수 있으려나.. 목숨 걸 것까지야 없겠으나
산을 등한시했던 것에 대해 속죄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걸으리라.







(노고단 대피소를 거쳐 노고단 고개에 올랐다)

떨쳐 버리려 해도 떨쳐 지지 않는
노 의원 사망 소식이다. 나비가 한 마리 날아간다.
꿈인가? 아 아까운 사람, 정말 좋아하고 응원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걱정되었던 가파른 노고단 고개도
힘든 것을 느끼지 못하고 올랐다.
악에 받쳤나?





(돼지령)

노고단 고개까지 고도를 한참 높였는데,
돼지령까지는 산허리길을 고도를 낮추면서 가니 편하기는 했다.
우선 먹기는 곳감이 달지만, 곧 대가는 지불해야 될 것이다.
산길에 공짜가 어디 있느냐? 노고단 고개까지 오른다고 애쓴 것을
조금 위로해 준 것으로 생각해야지..









(원추리, 흰여로)

돼지령을 지나자마자 이번에는 노랑원추리가
환영하듯 반겨준다. 얼마 만에 보는 지리산 원추리인가!
제철이라고 슬픈 전설을 간직한 동자꽃도 빨갛게 피었겠지?
철이 이르긴 하지만 뽀얀 구절초도 만날 수 있으려나..





(임걸령 샘터에서 13:17)

산에 든지 거의 두 시간 만에 임걸령 샘터에 도착했다.
생수 한 바가지 벌컥벌컥 마시며 일찍 찾아온 허기를 달랜다.
노의원의 비보를 들으면서 반도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놓은 짜장면도
짜장면이지만, 지금도 초코파이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





(삼도봉을 오르는 꼬마 등산가)

멋진 사나이들.. 오래전 가족이 각자의 배낭을 메고
북알프스를 오르는 모습을 보고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지리산에서도
부자가 동행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는데, 오늘 대단한 아버지와 아들을
만났다. 꼬마 친구는 초등학교 2학년! 자기 몫의 배낭을 메고 다부지게
삼도봉을 오르고 있다. 꼬마 친구의 모습에 자극을 받았나?
나도 힘을 내어 삼도봉을 오른다.





(삼도봉에서)

여태 다른 사람들 사진은 참 많이 찍어 줬는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여행지에서나 산에서의 내 사진이 별로 없었다.
그곳에 간 것이 중요하고 가슴에 담은 것이 중요하지만, 지난날의 추억도
기억도 지우개로 지운 듯, 연기가 사라지듯 지워지니 기념할 사진 한 장쯤은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정은 있다. DSLR을 만지는 사람이라도
숙달되지 않으면 남의 카메라로 제대로 찍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선뜻 맡기기가 쉽지 않다.





(아! 불무장등, 불무장등 능선)

전남과 경남을 경계짓는 불무장등 능선은
삼도봉에서 불무장등, 통꼭봉, 황장산, 촛대봉으로 이어가다
섬진강에서 끝이 난다.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은 길이 될 것 같다.
저 아래, 농평에는 명수가 살고 있다. 잘 지내지?





(화개재로 내려서는 길)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가는 데 설치된 나무계단이
정확하게 몇 개일까? 보통 집중력으로는 끝까지 세기가 힘들지만
집중하고 집중하여 세었는데 오늘은 552개!
셀 때마다 다르니 귀신이 곡할 노릇..







(애써 올랐던 고도를 다 까먹은 화개재)

진행 방향 왼쪽 갈림길이 뱀사골, 반선 내려가는 길.
얼마 전까지 저 아래 있었던 뱀사골대피소는 40여 년 전 겨울,
친구 셋과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가 눈보라 속에 하이트 아웃을 만나
몇 시간을 헤매다 희미한 불빛 하나를 보고 찾아가 위험에서 벗어나게
한 대피소였다. 그때 구사일생으로 대피소에 도착한 우리들을 위해
분유를 끓이고 자신들이 덮고 있는 담요를 모아 우리를 덮어주며
보살펴 주던 고마운 산악인들이 생각난다. 정말 그때는 그랬다.
늘 이곳을 지날 때는 감회가 새롭다.

550여 개의 계단은 고도를 150m가량 낮췄다.
그런데 어쩌나? 되로 받고 말로 갚는다는 말이 있듯
토끼봉까지는 내려온 것보다 더 많이 올라야 하는 것을..
격세지감이다. 이전에는 뱀사골 단풍과 피아골 단풍을
한꺼번에 보려고 반선에서 화개재로 올라 이 계단을
거쳐 피아골로 가뿐하게 내려가기도 했는데..





(토끼봉 오름길에서 반석에 누워 하늘을 본다)

화개재에서 토끼봉 오르는 구간은
진을 빼는 구간이다. 당일 종주 때는 가파른 오르막이
속도를 못 내게 걸음을 붙잡고, 오늘은 배낭의 무게가 발목을 잡는다.
순리를 거스르고 중력에 역행하는 일인데 어찌 힘이 들지 않겠는가!
배낭과 함께 피곤함에 지친 몸을 편하게 내려놓고 하늘을 본다.
푸른 잎의 단풍이 하늘을 가린다.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아름답게 채색하여 곧 본 모습을 드러내겠지.
단풍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인간이야..





(바위채송화, 기진맥진하여 명선봉에 오르니)

바위채송화가 환하게 웃으며 맞아준다.
때로는 야생화 한 송이가 힘이 되고, 매미의 노랫소리가 위로가 되고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모든 것을 보상해 주기도 한다.
그다음 모든 것은 덤이다.





(반가운 연하천 0.4km를 이정표, 다 왔다)

한참 동안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지루했는데
오랜만에 나타난 이정표가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명선봉이 높다지만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고
무거운 걸음이지만 딛고 또 내디디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시도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진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선 지 11시간 반)

성삼재에서 출발한 지 6시간,
노고단 고개(통제소)를 출발한 지 5시간 15분 만이다.
처음 성삼재에서 노고단 고개까지 330m 이상 고도를 높이는 구간이
힘들었고, 임걸령에서 삼도봉 오르는 구간, 삼도봉에서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간 토끼봉은 기진맥진하게 했고, 그렇게 올랐던 토끼봉에서는
다시 한참을 내려가더니 악덕 고리대금업자가 원금에 이자를 덤터기 씌운 듯
내려간 것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오르게 했던 명선봉은 오늘의 마의 구간이었다.
배낭도 무겁고 날씨까지 무더운 데다 바람도 없어 걸음은 더 무거웠다.
참 힘든 산행이었지만 가끔 길섶에서 반겨주던 원추리,
동자꽃을 비롯한 이름모를 야생화들의 반김이 위로되고
매미 소리 새소리가 큰 힘이 되었다.





(06:40, 다시 길을 나선다)

새로 지은 연하천 대피소 침상은 거의 절반 가까이
벽을 만들어 갑갑하기는 하지만 코 고는 소리와 몸부림치며
옆 사람을 괴롭히는(?) 일은 많이 줄어들게 했다.
대피소에서 잠을 잔 것 중 가장 조용하게 잔 것 같다.
도중에 두 세 번은 깼지만 말이다.

오라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만
6:40분 오늘 몫의 길을 가기 위해 출발한다.





(모시대(모싯대)가 아침 인사를 한다)

대피소를 나서자마자 함초롬한 모싯대가 인사를 한다.
어제는 오는 길이 바빠 이쁜 너희들과 눈 맞춤도 제대로 못 하고
지나쳤는데 오늘은 여유가 있을 것 같아..





(아직 7시도 안 되었는데)

숲을 뚫고 나온 화사한 빛이
얼굴에 닿으니 화끈한 열기를 느끼게 한다.
오늘도 만만찮을 것 같은 예감이..









(흰여로, 동자꽃/모싯대, 참취)

이것과 저것, 이곳과 저곳 경계를 아우르고
슬픈 동자꽃도 더 불게 웃으며, 모싯대는 더 고귀해지고,
흰여로, 참취의 새하얀 빛이 빛나는 산이면 좋겠다.
마음속에서도 꽃 같은 마음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어수리, 짚신나물, 말나리, 비비추)

고마운 일

누가 처음에 그렇게 이름을 불렀을까

모래

이런 고운 이름을 생각해 냈을까
돌,
하고 이름을 불러주면
입속에서부터 구르기 시작하고
풀,
하고 이름을 불러주면
풀잎 흔들리는 바람이 입술 가득히 인다
누가 써걱거리는 그 느낌에 맞도록
모래를 모래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시인들은 모두
그 이름으로 콩 줍기 놀이를 하듯 시를 쓰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김상현





(안개가 밀려온다)

따가운 햇살을 사정없이 퍼부을 것 같던 눈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겁났는데.. 안개가 몰려오자 순간 안도감이 든다.
인간은 참 자의적이다. 미세먼지와 공해로 파란 하늘을 잃어버려
오랜만에 본 파란 하늘이 좋았으면서도 따가운 햇볕 때문에
태양을 가려 줄 구름 기둥을 반기다니.. 일단은 아침부터
후끈 달아오른 열기를 식혀주니 좋기는 하다.









(동자꽃, 물봉선, 산딸기)

카메라를 늘 끼고 다니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을 놓칠 때가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특히 먹을 것이 있을 때는 셔트누르는 것보다는 입이 먼저여서
다 먹고 난 다음에 아차!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랬다.
앞서 몇 팀이 지나갔는데도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제법 많이 달려 있다. 웬일? 한 움큼이나 따 먹고 나니
생각이 나 이것이라도 남겨야겠다고 찰칵~





(삼각고지에 있는 지킴터)









(산수국, 동자꽃, 바위떡풀)





(벽소령대피소 2.4km 07:18)







(며느리밥풀꽃, 댓잎)







(구름에 가린 저 아래가 빗점골인데..)

지리산 아흔아홉골 중 사연이 없는 골이 있겠냐만
특히 빗점골은 남부군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의
최후 격전지로 그가 최후를 맞은 곳이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이현상, 내 마음속의 빗점골’이라는 시에서
“흔들리며 일어서는 검은 산 지리산/.../ 내 남루한 기억 속의 빨치산/.../
곳곳에 하나씩의 비밀 아지트를 남겨 두고/ 모두 살해당한 지리산 빗점골/
그곳에서 나는 무련, 그대를 만난다/.../ 어느 모퉁이엔가 웅크리고 앉은 산사람이/
더 깊이 고개 숙이는 늦가을 저녁 무렵/.../ 먼저 나무처럼 굳게 서는 법을 배우며/
뒤늦게 빨치산 위령제를 올린다”고 썼다.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정신이 들게 한다)







(참바위취, 수리취)





(숲을 뚫고 내린 햇살이 강렬하다)

방학을 맞아 선생님과 함께
지리산 주능을 종주하는 학생들이 몇 팀이나 되었다.
여기서 만난 학생들은 선생님 세 분과 학생 세 명이었는데
단체 사진을 찍어 주겠다 하니 사진을 찍으려던 선생님이 좋아하신다.
선생님들이 청양에서 왔다고 하면서 '칠갑산을 아느냐?'고 물으시길래
순간 깜짝 놀랐다. 난 블친 칠갑산님을 말하는 줄 알고는~ㅎ
칠갑산을 안다 하고, 또 칠갑산 님은 닉을 칠갑산으로 쓸 정도로
애향심이 대단한 분으로 우리나라 산줄기라는 산줄기는 다 훑고 계시는
대단한 산꾼이라며 블로그를 한번 찾아보시라고 했다.







(참나물, 비비추)







(전망바위에 올라 07:45)







(형제봉 이정표, 벽소령 1.5km)





(벽소령대피소 0.7km)

또 계단이 나타났지만 이 정도쯤이야
연하천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고도를
100m가량 낮추지만 가는 도중에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러니 산길이지..









(08:40, 벽소령 대피소는 공사 중이어서 그냥 통과)





(주 능선의 산죽이 죽어가고 있다)

일정 구간이 아니라 오는 길 군데군데
산죽이 하얗게 말라가고 있다. 지리산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로 인해 힘들게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선이질풀, 원추리)





(10:00 덕평봉, 선비샘은 물이 쫄쫄)

물줄기가 연필 굵기 정도밖에 안 된다.
임걸령과 연하천은 수량이 풍부했는데 이곳은 여엉~
선비샘에서 좀 쉬었다 가려 했는데 주변에 금줄을 많이
쳐놓아 마땅히 쉴 곳도 없고 물 받으려는 사람이 많아
500mm 페트병에 물만 채우고 출발




(10:08 저 아래가 작은세개골)

덕평봉에서 뻗어내린 덕평능선과
칠선봉에서 가지 친 능선이 만든 골짜기가 작은세개골이고,
칠선봉과 영신봉에서 뻗어 내린 남부능선이 만든 골짜기가
큰세개골이다. 이 골짜기 둘이 모여서 이루는 대성골. 대성골은
한국전쟁 중 토벌대와 빨치산의 격전지로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우리 현대사의 비운의 현장. 1952년 1월 토벌대가 빨치산을 토끼몰이
하듯 대성골로 몰아넣고 10여 일 동안 엄청난 화력을 퍼부어
하얀 눈이 핏빛으로 물들고 피가 계곡을 적셨던 곳.





(한 때는 나도 푸르른 날이 있었노라고 웅변하는 듯..)

지난날의 영화는 바람에 실려 갔나? 빗물에 씻겨 갔나?
새들을 품었던 그늘과 바람과 함께 연주하던 악기는 사라지고
가지의 흔적만 간직한 몸뚱이로 하나로 버티며 서 있지만 앞서간
고사목들같이 얼마지 않아 쇠잔한 몸뚱이마저 눕혀야 하는 날이
쉬이 오리라. 사는 것은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인데,
나무는 죽어서도 피곤하다.





(지리터리풀)

'지리터리풀'은 지리산에서 최초로 발견된 한국 고유종으로
장미과 터리풀속에 속하며 꽃은 7~8월에 핀다.





(천왕봉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으니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70)





(칠선봉)







(지나온 삼도봉(반야봉)과 노고단까지..)

내 가는 길이 가다가 가끔 뒤돌아볼 수 있는, 이처럼
전망 좋은 그런 고개들이 있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세석대피소 0.6km 전을 알리는 반가운 이정표)







(12:45, 세석대피소)

그렇게 여유 부린 것 없이 열심히 걸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늦었다. 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잠시 휴식하면서 재충전하여 출발!







(14:15, 세석갈림길)

백무동 방향과 의신, 거림방향, 그리고 노고단 방향,
천왕봉 방향 갈림길.. 뙤약볕 아래 촛대봉 오름길이 부담되지만
누가 대신 가줄 수 없는 길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긴다.







(참취, 짚신나물)





(가는기린초)

'기다림'이란 꽃말을 가진 가는기린초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돌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어린줄기와
잎을 나물로 먹고, 개화기에 채취하여 말린 것을 비채(費菜)라 하며,
토혈·혈변·심계항진증·외상·종기 등의 치료에 사용한다.











(뱀무, 산오이풀, 지리터리풀, 동자꽃 14:25)

이맘때면 지리산은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수많은 야생화들이 피어 누가 보거나 말거나 상관않고
제 자리에서 지구의 한 모퉁이를 아름답게 빛내고 있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야생화와 같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석대피소, 그 뒷산이 영신봉 14:26)

언제 추억의 남부능선을 걸어 보고 싶다.
남부능선은 눈을 맞으며 걸어도 좋고, 비를 맞으며 걸어도
좋다. 봄에 걸어도 좋고, 가을에 걸어도 정말 좋다.
함께 걸어도 좋고 혼자 걸어도 좋은 남부능선









(꿀풀, 나물공주 곰취꽃, ?)

마지막 녀석은 이름을 모르겠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름을 불러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래도 넌 꽃이다.
지리산 한 모퉁이를 밝히는 아름다운 꽃이다.





(보고 싶으면 직접 와서 보라는 듯 천왕봉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조망 바위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이름모르는 새 한마리가 잣 솔방울을 콕콕 쪼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기 몸뚱어리 만 한 솔방을 따서는 물고 사라진다.
잣 알이 찼으려나..





(말나리)

꽃잎에 주근깨가 다다닥 나고
잎겨드랑이에 살눈(으뜸눈)이 있으면 '참나리'
꽃이 땅을 보고 있으면 '땅나리'
꽃이 하늘도 땅도 아닌 중간을 보고 피어서 '중나리'
꽃이 하늘을 보고 핀다고 '하늘나리'
털이 유난히 많은 '털중나리'
잎이 솔잎을 닮았다고 '솔나리'
잎이 우산살처럼 동그랗게 돌려난다고 '말나리'
잎은 돌려나고 꽃은 하늘을 보고 핀다 하여 '하늘말나리'
잎은 돌려나고 꽃은 하늘을 보고 피는데 노란색은 '누른하늘말나리'







(연하선경(烟霞仙境))

지리산 10경에 속하는 연하선경은,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풍경은 지리산 구간 중에서도
풍치가 아름답기로 손꼽을 만한데 특히 연하봉 부근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운무가 어울려 노닌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상의 보석상 진열장 같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 모를 풀들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마치 신선이 된 듯.. 연하봉을 타고 넘는 운무는
산중인(山中人)을 무아의 경지로 몰아가고 있다.





(멧돼지가 큰공사를 한 듯..)









(참취, 산오이풀, 참바위취)

얼마나 그리우면 꽃으로 피어났을까?
밤하늘 별처럼 바위 그늘에 피어있는 참바위취











(연하봉)









(쑥부쟁이, 양지꽃, 구절초)

다른 꽃들이 들으면 섭섭해하겠지만
양지꽃도, 구절초 비슷한 쑥부쟁이도 좋지만
구절초가 좋다. 특히 지리산의 구절초가 좋다.
하얀색도 이렇게 아름다울까!

"그해 가을처럼 새하얀 구절초가 피었습니다
날개 고운 산새가 울고 간 그 자리
눈이 커 잘도 우는 그 아이처럼
산 너머 흰 구름만 보고 있는 꽃
올해도 그 자리에 새하얀 구절초가 피었습니다
날개 없어 별이 못된 눈물 같은 꽃이"





(곡점능선의 주봉 일출봉)





(16:40, 구름 속에 있는 장터목대피소 도착)

어제오늘 걸어온 길 중에서 세석-장터목대피소 구간을
제일 여유있게 걸은 것 같다. 야생화들과도 눈 맞춤을 많이 하고
연하선경에서는 무아의 경지에 빠져보기도 하면서..
벌써 장터목대피소는 장터처럼 북적거린다.





(19:30 갑자기 하늘이 뻥 뚫리더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먹장구름이 몰려오면서
빗방울까지 떨어져 야외에 펼친 식탁을 실내로 옮겨야 하나
어쩌나 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는데 순간 하늘이..
천지 개벽하듯 구멍이 뻥 뚫리더니 구름 속으로 해가 달려가고 있다.
3시간 전 대피소에 도착할 때부터 지금까지 구름 속이어서
내일 일출은 접고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 좋은 선물을 줄 것 같다는 예감!









(20:20 별 볼 일 있는 석양)

반야 낙조는 볼 수 없었지만,
50분 전쯤에 뻥 뚫렸던 하늘은 구름과 바람이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더니 대세는 바람이 구름을 몰아내고
먼저 파란 하늘에 뜬 달을 보여 주고, 다음에 별을 보여 주더니
마침내 노을에 물든 하늘을 보여 주었다.





(3시 50분 대피소 출발)

3시에 일어나 수프와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천왕봉으로 출발하여 4시 40분 정상 안부 도착.
오늘 일출 시각은 05:33, 아직 일출 시각까지는 여유가 많은데
벌써 제법 많은 산객이 정상에 올라 있는 것이 보인다.





(햇귀가 황홀경을 선사한다)







(구름바다 속에서 산들이 어깨 걸고 일어선다)









(지리산 10경 중 제1경은 천왕일출(天王日出)이라)

지리산에 들어 천왕일출을 못 보더라도
안타까워 할 일 아니다. 그것은 덕을 더 쌓고 다음에
다시 오라는 의미일 테니까.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일출! 정말 고마운 일이다. 오늘도 천왕봉에 오른 사람 중에
큰 덕을 쌓은 사람이 많은 덕분이리라.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었는데 어느 순간 구름 장막을 걷어내고
태양이 떠오르는 길을 열고 맞이하게 하다니..
장엄하고 황홀한 모습으로 태양이 하루를 밝혔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20여 분 동안 전속 사진사인냥)

오늘은 천왕봉 전속 사진사라도 된 냥
천왕봉 정상석을 앞세우고 사진 찍은 사람 중 반 이상은
찍어 준 것 같다. 처음 한 분을 찍어 줬더니 너도, 나도 또, 또, 또 다른 팀이..
뒷배경까지 정리해 가면서 20여 분 동안 그랬다. 마지막으로 서울 S고등학교
단체 사진까지 찍어주고서야 나도 증명사진 한 장 남겼는데.. 정작 내 사진은
배경이 복잡하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대구에서 오셨다는 분이
내가 사진 찍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내 주셨다.
감사하다.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대원사 방향으로..)

오늘같이 햇살이 강한 날은 조금이라도 일찍부터
걷는 것이 좋을 것 같아 6시 전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예정에도 없던 사진 찍어 주느라 6시 22분 천왕봉을 출발한다.
대원사 방향으로 갈 것이라던 서울 부부팀은 떠났나 보다.
다른 팀이 더 없는지.. 혼자 중봉으로 향한다.





(천왕봉을 내려서다 만난 흰꿩의다리)





(중봉/1874m)





(중봉에서 보는 천왕봉)





(중봉에서 구곡능선(황금능선) 방향)

풍경은 좋은데 고사목이 늘어가는 것이 안타깝다.
기존의 식생들이 죽어가는 것도 기후변화가 원인이리라.
기후변화는 지속적인 가뭄이나 폭염, 혹한을 몰고 와서 산의
나무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개인은 개인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환경보전을 위해 할 바를 하여야 한다.





(등불을 밝히고 있는 모시대(모싯대))







(비둘기봉 아래 치밭목대피소가 손에 잡힐 듯..)

중봉에서 치밭목대피소까지는
고도를 340m나 낮추는 내리막길이지만 길이 만만찮다.
오른쪽 무릎에 신호가 온다.






(지리산에는 여기 저기 고사목이 많이 보인다)







(써리봉 그늘진 곳에서)

써리봉에 올라 조망을 즐기려는데
햇살이 따갑다. 그냥 갈 수는 없어 그늘진 곳으로 내려와
조망을 즐기는데 눈이 스스르 감긴다. 10여 분 쪽잠을
잔 것 같다. 몸이 가뿐하다.





(금줄이 쳐져 있는 구곡능선(황금능선) 길)

써리봉에서 시작하여 국사봉, 구곡산을 거쳐
외공마을까지 장쾌하게 이어간다.







(09:13 치밭목 대피소)

최신식으로 지은 대피소가 우뚝하게 서 있건만
첫인상은 새마을운동 하면서 어린 시절 놀이터이기도 했던
꾸불꾸불 돌아가는 돌담길도 없애고,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꿔서이면서 참새 잡던 추억까지 앗아가 버린 그런 기분이다.
눈이 많이 오면 처마까지 쌓였던 정이 든 대피소는 이제
옛 사진 속에서나 찾아야 할 듯하다. 지리산을 이야기하고
점필재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민 대장님도 떠나 버린
치밭목 대피소가 황량하게 느껴진다.







(46년간의 역사와 추억은 이렇게..)

오늘 천왕봉에 올랐다가 치밭목 대피소 쪽으로
온 산객은 모두 일곱 사람. 서울서 오셨다는 4분팀과 부부팀,
그리고 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함께 온 4분은 새재 방향으로
가신다 하고, 부부팀은 대원사 방향으로 간다고 하지만 산행속도가
맞지 않아 아무래도 오늘도 혼자 남은 길을 걸어야 할 것 같다.
늦은 아침을 해결하고, 수통 가득 생수를 채우고
1시간을 머문 치밭목 대피소를 떠난다.







(10:20 이정표가 대원사까지 7.8km를 가리키지만)

구체적으로는 6.2km를 가면 유평에서 산길이 끝나지만
진주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유평에서 아스팔트 길 4km를
더 걸어야 한다. 길이 거칠더라도 산길이 더 좋은데 말이다.





(지리터리풀)









(지리산 개방등로 중 제일 원시림에 가까운 것 같다)





(세력 약한 무재치기 폭포)

폭포는 그대로인데 수량이 적으니 힘이 없다.
폭포는 물이 있어야 이름값을 하는 것 같은데
사람은 무엇이 사람값을 하게 할까?

수량이 적어도 더위를 식힐 정도는 되었다.
발도 씻고, 머리도 감고.. 너럭바위에 누워 하늘을
떠가는 구름도 보고.. 신선이 따로 없다.





(바위틈에 자리잡고 뿌리 내린 나무)

생명은 경이롭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 내기 위한 투쟁은
처절하다. 사람이나 나무나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이곳 산죽은 싱싱하여 다행이다)





(11:33 새재 갈림길)

서울분들은 새재로 가신다고 했는데, 지금
어디쯤 오고 계시는지? 하여간 여기까지는 앞서가며
거미줄 다 걷고 왔는데 여기서부터는 거미줄도 걷으면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ㅎ







(너덜과 조릿대, 풀숲에 묻힌 길을 찾아서)





(앞에 보이는 가로질러 넘어야 할 치밭목능선)





(큰까치수영)





(12:45 유평 2.6km를 가리키는 이정표)

이제 고생 끝, 치밭목능선을 넘는다.





(끝없는 내리막길, 이어지는 계단)

힘든 오름길도 아니고 뙤약볕도 아니어서 좋은데
내리막길에서는 무릎에 신호가 왔다. 조금만 가면 되는데..
끝났나 하면 나타나는 계단, 몇 번이나 나타난다.









(13:25 꿈같은 길인가? 꿈 속의 길인가?)

거의 평지길이나 다름없고,
계곡물 소리, 매미 소리, 이름 모를 새 소리, 바람 소리
합창을 한다. 다람쥐가 나타났다가 제 소리에 놀라 달려가고,
노랑 나비가 날고, 심지어 뱀까지 앞장서 간다.
꿈길 같은 길이다.





(피나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꽃인데 이제사 만나다니..
꽃이나 잎을 꺾으면 붉은색의 즙액이 흘러 피나물로 불린다.
꽃잎은 넉 장. 노랑매미꽃 또는 여름매미꽃이라고도 한다.







(완주를 축하하는 듯한 개선문을 통과하니)







(13:57 드디어 날머리, 유평이다)

개망초와 루드베키아, 이정표가 반긴다.
그러나 끝나야 끝난 것이다. 2시가 되기 전에 산길을
끝내고 유평리로 나왔지만, 진주 가는 대원사 주차장까지는
아직 4km의 아스팔트 길이 남아 있다. 이 길은 꼭 덕유산 종주를 하고
백련사에서 주차장까지 걷는 것과 흡사한 기분.
그 많던 구름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번 성대 종주 교통편은
의령(06:30) - 진주(07:10, 승용차)
진주(08:00) - 하동(09:00)
하동(09:30) - 구례(10:15)
구례(10:40) - 성삼재(11:20)
(성삼재 - 유평리)
대원사(15:40) - 진주(16:40)
진주(17:00) - 의령(17:40, 승용차)

대중교통 이용해서 화대종주를 하려면
울산역(22:53) - 대전역(00:06, KTX)
서대전역(00:43) - 구례구역(03:03, 무궁화호)
성삼재, 화엄사행 군내버스




(성대(성삼재-대원사)종주 지도, 사진을 누르시면 크게 확대됩니다)

무기력한 생활의 악순환을 끊고자 감행한 지리 종주.
  역시 결심하기까지가 힘들지 결심하고, 첫발만 내디디면 결국은 이뤄지는 것..
하룻길을 사흘에 나누어 걸었지만 힘들었다. 때로는 자신까지 속여보려 하지만
속일 수 없는 것은 세월, 준비 없는 산행에 체력도 바닥나고 날씨까지 더웠다.
거기에 '노회찬 의원 투신 사망'이라는 비보까지 힘 빠지게 했지만
고군분투하며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번 삼대 구 년 만의 지리산 종주는 아픈 기억과 함께
잊히지 않을 추억의 한 장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