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피아골, 선홍빛 단풍을 만나러 가다

2018. 11. 2. 23:20山情無限/지리산




지리산 피아골, 선홍빛 단풍을 만나러 가다.


언제 : 18. 10. 29 (월)

누구와 : 울산 岳男岳女山岳會

어디로 : 성삼재 - 피아골 삼거리 - 피아골 대피소 - 직전마을







올해는 피아골 단풍을 꼭 보리라 했는데 

마침 산악회 공지가 올라왔다. 이전에는 참 멀기만 했던 지리산이

온 오프라인 산악회가 활성화 되면서 많이 가까워졌다. 산행 신청만 하면

버스가 집 앞에서 태워 산행 들머리에 내려주고, 날머리에서 기다리니

안성맞춤이다. 이전에는 노고단이나 성삼재까지 접근하기 참 멀고 힘들었다.

울산서 첫차를 타고 출발해도 밤늦게 구례에 도착했다. 꼬박 하루가 걸렸다.

화엄사 근처에서 야영하고 다음 날에야 지리에 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 어떻게 다녔나 싶기도 하다. 지리산은 물리적인 거리야 울산이 서울보다

훨씬 가깝지만, 접근하기는 서울보다는 쉽지 않다. 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울산-함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지리산 북부 접근 시간이 많이

단축되고 편리할 것 같긴 한데 언제 개통될지..






울산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옅은 구름이 곧 걷힐 것았는데

지리산이 가까이 가니 구름이 점점 짙어졌다. 오는 도중 빨갛게 물든 단풍을 보고

탄성을 지르면서 왔지만 달궁을 지나 성삼재에 도착하니 우산을 쓴 사람이 보인다. 헐

오늘 비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카메라라도 보호해야겠기에 

일회용 비옷을 장만하고 출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상청보다 일기를 잘 알아서

오늘을 피했는지 평소 같으면 복잡할 길인데 산객이 거의 없다.

구름 속으로 걷는 길이지만 복잡하지 않아 좋기는 하다.






노고단 대피소에 오르니 구름이 더 짙다.

꼭 눈물 글썽글썽한 아이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상황이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고개까지 오늘 오를 오르막은 다 올랐건만

천왕봉은 고사하고 바로 위 노고단 고개 돌탑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와 무관하게 지리산에 든 것을 기념하며 한 장 찰칵





돼지령을 지나는데 제법 비 같은 비가 내린다.

지난 주 한라산도 구름 속에 올랐는데 혹시 그 구름을 몰고 온 것은 아닐까?

첫 번째 헬기장에서 잠시 쉬었다가 비가 잠시 멈춘 두 번째 헬기장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나자말자 그쳤던 비가 또 오기 시작한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오늘의 산행 대장 하니 대장이 비에 아랑곳없이 길을 이끈다.





비가 오니 카메라도 애물단지가 되었다.

패킹하여 배낭에 넣고 잠시 잠시 핸드폰으로 담아 본다.

피아골 단풍은 담을 수 있어야 하는데..





피아골 삼거리, 참 오랜만에 이 길에 든다.







가파른 길로 피아골로 내려서는데 비에 싸락눈이 섞여 내린다.

지난 단풍은 잎이 말리고 색이 바랬지만 꽃처럼 아름답게 지리산을 밝히고 있다.

비가 그친 틈을 타 숨바꼭질하듯 카메라를 다시 꺼냈다.










조금 더 내려서자 피아골의 상징 선홍빛 단풍이 나타났다.

비로 세수한 단풍이 더 곱다. 손을 대면 핏빛이 묻어날 것만 같다.


지리산의 단풍은 피아골과 뱀사골이 쌍벽을 이룬다.

피아골 단풍이 선홍빛 단풍이라면 뱀사골 단풍은 황금빛으로 찬란하다.

사정이 된다면 부운리에서 뱀사골로 들어 피아골을 거치면 양 골짜기단풍을

다 감상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 물론 지리산 어느 골짜기 단풍이 아름답지 않을까만.

개인적으론 국골의 원시미 넘치는 단풍에 넋을 잃은 적이 있다.






벌써 피아골 대피소다.





피아골 대피소는 보수공사 중


피아골 대피소에 오면 '노고단 의병대장'이라고도 하고, '지리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40년간 지리산을 한결같이 지킨 존경스러운 산악인 함태식 옹이 생각난다.

2013년 86세로 세상을 떠나신 함 선생님은 1972년 초대 노고단 대피소 관리인으로 계시다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생기면서 떠밀려 피아골 대피소로 자리를 옮겼다.

떠밀려 은퇴한 2009년까지  노고단과 피아골 산장에서 반평생을 보내며 수많은 인명을 구했고

환경 보호에도 앞장서신 분.. 지금은 대피소가 숙박 시설로 기능하지만 정말 위급할 때

대피소의 기능을 하며 인명을 구한 진정한 산악인이시다.


한적하기로는 치밭목을 뺄 수 없지만 지리산 9개 대피소 중
투숙객이 제일 적은 피아골 대피소.. 각양각색의 단풍이 배경 되어 아늑하고

정취 좋아 무릉도원 같은 이곳도 1984년 피아골 대피소를 지을 때 대피소 터에서만

한 트럭 가까운 인골이 나왔다 한다. 피아골 단풍이 유난히 붉은 선홍빛인 것도

이들의 원혼이 서려있기 때문일까?






피아골도 거칠고 험한 곳은 철계단을 놓아 길이 많이 좋아졌다.






잎을 떨군 빈 가지는 벌써 겨울 채비에 들어간 것 같다.

단풍은 한때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낙엽이 되어 밟히며

흙이 되고, 흙은 자양분이 되어 다시 이 산을 아름답게 물들이겠지.

자연이 순환하듯 인간도 이 같은 길을 갈텐데.. 무얼 그렇게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지.. 산에 들면 모두 철학자가 된다.







구계포교 위에 형성된 소(沼)에 떠다니는 낙엽.

삼홍소는 삼홍교 아래에 있지만, 흔적이 사라진 삼홍소 대신

이제 여기를 삼홍소라 해야할 것 같다.






흔들다리 구계포교.





일찌기 남명 조식은 피아골의 가을을 노래했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에 물든 단풍 봄 꽃보다 고와라.
 천공이 나를 위하여 묏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도 붉으니 삼홍(三紅).





지리산만큼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산도 없다.
임진왜란 의병부터 한 말 의병 활동, 좌우 이념대립의 풍상을 껴안은 산.
지리산 중에서도 피아골은 처절한 역사의 원혼이 깃든 곳.

단풍의 붉기를 내장산과 피아골이 겨룬다지만
민족의 한을 안고 피는 피아골 핏빛 단풍이 심오하지 않을까?







뱀사골은 넓은 계곡 청아한 물이 노랑 빨강 단풍과 이루는 조화가 압권이고,
피아골은 선홍색 곱고 진한 단풍이 일품이어서 지리산 수많은 계곡 중 단풍골은

뱀사골과 피아골로 압축되지만, 그래도 단풍은 피아골 단풍이다.

피아골 단풍을 지리 10경 중 제5경으로 쳐 주니까





생명이 움트는 연록의 봄 산도 그렇지만

가을 산은 특별한 감동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가을이 주는 진하고 깊은 멋 때문일 것이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 산 한 가운데서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가을처럼 깊어가는 것. 삶의 자취가 이 가을과 같은 모습으로

  얼굴에 새겨지고 물들 수 있다면..








어디 피아골 단풍이 붉기만으로 으뜸일 수 있겠는가?
담황색에서부터 주황, 주홍, 선홍색에 이르기까지 뒤섞여 조화를 이룬 모습
화사하기도 하거니와 가을 풍년 들녘인양 풍성하기까지 하다.

날이 흐려 본색을 다 드러내지 못해도 일품인 그 숲길을 간다.






단풍 / 공석진
 
먼 길 떠나는 길손이 아쉬워
옷자래기 붙잡고 떼써본다
 
사랑은 흔적 없이
잿빛 추억뿐이더라
 
하늘 탓을 하랴
우리네 감성을 탓하랴
 
떠나려는 길목을 차단하여
가물어 지친 감성에 쏟아붓는
비가 아니더라도
 
그저 무심히 떠나는
이별은 하지 마라
 
아쉬움에 남는 상처로 치를 떨어
처연한 미련을 보여다오
 
내 비록 마음은 절망하나
너를 느껴보고픈 소망은
 
마지막 숨을 할딱이는
목숨보다 더 간절하다.






나도 단풍 빛에 물들었다. 노이야 고마워!






나는 오늘 피아골 단풍에게 예를 갖추며 왔는가?


존경하는 산악인 김영도 선생은

'산악인은 산의 고도(높이)가 아니라

산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피아골 탐방지원센터를 나선다.







직전마을 부근의 단풍들..

지리산의 단풍은 정상부와 하단부는 한 달 정도의 시차가 있다.

정상은 낙엽이 되었지만, 이곳은 이제 물들고 있다.


오늘 흐린 날씨에 조금은 철 지난 피아골 단풍을 만났지만

피아골은 작은 소와 폭포가 많고 원시 수림으로 자연경관이 빼어난 골짜기로,
봄에는 산목련, 철쭉이 신록과 어울려 절경이 되고, 겨울에는 설국이 되어

동화세계를 연출하지만, 그중 가을 단풍이 지리산에서 으뜸이다.





피아골 직전마을 관광안내도와 버스 시간표





피아골을 떠나려는데 이제 하늘이 개며 노을이 조금 비치기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 코스)


초가을 물들기 시작하는 잎 같은 장년의 열정도
세월과 함께 원색의 단풍같이 인생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겠지.
고운 단풍 같은 모습, 가을 같은 모습으로 나이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단풍 숲을 거닐며 더 간절해진다. 찾아도 언제나 다시 찾고 싶은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 시간내어 또 찾으리라.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는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절규하는 심정으로..


오늘 좋은 산우들과 함께 피아골 단풍길을 행복한 걸음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 산행을 위해 수고하고 애쓴 산행 대장을

 비롯한 모든 운영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