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 정상에서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해를 맞다.

2019. 1. 3. 15:00山情無限/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신불산 정상에서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해를 맞다.


2018.12.31 ~ 2019. 1. 1

불승사 - 신불재 - 신불산 (원점회귀)







가는 해와 오는 해가 자리바꿈하는 날,

아~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산에서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고, 하늘과 가까운 산정상에서 기도를 하는 게 좋겠다.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고 있는데 어째 날씨가 심상찮다.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일기 시작하더니 집을 나서려는데 그사이 구름이 하늘의 반을 덮었다.

산에 들 무렵에는 하늘이 온통 잿빛을 변했다. 오늘은 산행도 산행이거니와

가는 해와 작별인사를 해야 하고 해를 맞기 위해 산에 드는데 구름이 

하늘을 덮으니 낭패 아닌가! 하늘이 하는 걸 어쩌겠나.


겨울 야영 장비에다 카메라와 삼각대, 그리고 근래 제 기능을 못 하는

신불재 샘에서 물을 구할 수 없어 식수까지 챙기느라 배낭이 다른 때보다

훨씬 무겁다. 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르는 큰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니

이마와 등에는 땀이 나는데 손은 많이 시리다. 장갑을 끼고 벗기가

번거로워 오늘은 사진 없이 그냥 올라보기로 한다.





신불산 정상에 오르자 마자 텐트부터 쳤다.

신불재 오를 즈음부터 구름이 조금씩 옅어지더니 이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스카이 라인 부분은 구름이 두텁다.

아! 오늘 일몰은 보기 어렵겠구나!

아니 저건 햇무린가 무지갠가?





눈발이 날린다.

지나가는 구름이 싸락눈을 뿌리고 간다.

싸락눈이 또닥또닥 텐트를 때리는 소리가 마치 

깨 볶는 소리 같다. 





오늘 울산지방 일몰 시각은 17시 19분.

17시 즈음부터 구름이 조금씩 붉은 빛을 내기 시작하더니

스카이라인 부분에 틈이 생기면서 붉은 띠가 형성된다.

오늘 일몰은 거의 기대를 접은 상태이지만

제발 저 틈이 더 벌어지기를..





틈이 점점 벌어지더니 해가 떨어질 지점까지 붉은 띠가

생기더니 용광로같이 불길을 쏟아낸다. 벌겋게 달아오른

 저 산은 방향으로 보아 낙남정맥 천주산 같아 보이는데..


붉은 산을 보니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이 떠오른다.

만주 벌판의 조선인 소작인들에게 못된 짓을 하는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서 송 첨지 노인을 죽인 것을 따지다가 당한 '삵'이 죽어가면서

'붉은 산과 흰옷이 보고 싶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들려주는

애국가를 들으며 운명한 그 '삵'이 떠오른다.





17시 17분, 보고도 정말 믿기는 않는 상황이다.

하늘은 온통 잿빛인데.. 조금 전 보이던 파란 하늘마저도 이제는

구름이 전부 점령했는데 해가 떨어지는 부분만 틈이 생겼다.

간절한 기대에 대한 답일까. 일단은 기다려 보자.






그 두꺼운 구름을 비집고 2018년 마지막 해가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 틈이라는 것이 정말 해의 얼굴을 드러낼 만큼의 공간이다.

이렇게 극적으로 2018년의 마지막 해와 작별할 수 있을 줄이야.

주체할 수 없는 이 감동, 숨죽이고 셔트를 누르고 또 눌렀다.

정말 감격스럽고, 경이로운 순간이다.

결정적 순간이다!






이렇게 구름 틈을 벌리고 마지막 해는 졌다.

생이별하는 연인이 문틈으로 마지막 얼굴을 엿보이듯이 말이다.

해넘이를 많이 봤다. 그러나 이렇게 극적인 해넘이는 처음 보는 것 같다.

2018년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지만, 가는 해를 제대로 보내줄 수 있어

홀가분하고 기분도 좋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잠시 누워 있으려다 잠이 들어 뻥 뻥 하는 소리에 놀라 깨었다.

어디서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아 얼른 카메라 챙겨 나가니 소리는 끝이났다.

언양과 울산의 불빛이 평소보다 밝다. 많은 사람이 2018년과 2019년이

자리바꿈하는 순간을 지켜보느라 그런 것 같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이 다 걷히고 별이 초롱초롱한 것 아닌가!

구름은 어디로 갔을까? 어제와 오늘, 아니 작년과 올해의 하늘은 놀라움의 연속.

어제 지는 해는 극적으로 만났지만 구름이 두터워 별 밤과 해돋이를 기대하기

어려웠는데.. 몇 시간 사이에 이렇게 하늘을 깨끗이 청소하고 ,금가루 은가루같이

반짝이는 별들을 하늘에 뿌려 놓을 줄이야. 정말 감사한 일이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기대해도 좋겠다.








월명성희(月明星稀)라 했던가.

'달이 밝으면 하늘의 별들이 빛을 잃는다'고 했는데

달이 없어 좋은 때,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들이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다.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신불산 정상에 친 텐트의 불빛도 섬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섬과 섬 사이 어둠을 걷어 내어야 한다.

두어 시간 야경과 별과 신나게 놀았다.






햇귀가 돈다. 하늘이 열리며 새날이 밝아 온다.

2019년은 7시간 전에 시작되었지만 이제 새해가 온다.

어제와 다른 붉은 띠가 스카이라인을 물들인다.





신불산 칼바위 능선 뒤로 언양 시가지와

문수산 남암산 너머 울산 시가지는 아직도 불빛이

보이지만, 작은 빛은 곧 큰 빛이 오면 사라지겠지.

지금은 세상을 밝힐 큰 빛을 기다리고 있는 중.





산들도 눈 비비며 잠에서 깨어 일어난다.

산들이 어깨 걸고 일어나니 산줄기가 된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한참을 뜸 들이더니

7시 29분 새색시가 문틈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듯 내민다.

매일 변함없이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태양이다.

추위 속에서도 숨죽이며 기다린 새 하늘의 새 태양!





산 위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는 2019년을 여는 저 태양을 보라!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같이 2019년 한 해도

최선을 다해 살아 보리라!






어느새 얼굴을 쑥 내밀었다.

문수산, 남암산.. 산들도 부스스 일어난다.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바다로부터 온다.

어제의 태양이지만 어제 같지 않은 태양.

빛은 그 자리에 있지만, 항상 새롭게 변한다.

광휘일신(光輝日新)이라 했던가!

오늘에 맞는 글

"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

나날이 새로워지고, 하루하루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은나라의 성군 탕왕은 매일 아침 세숫대야에 새겨놓은 이 글을 봤다고 한다.  

탕왕은 얼굴을 씻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마음마저 씼기를 원했던 것.

새해에는 새롭게 살아 보자.






정말 대단한 산 사람들이다.

몇 시에 집을 나섰을까? 새벽잠을 이기고, 추위를 이기고 산 정상에

오른 산 사람들. 누가 시킨다고 할 사람 있겠는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

산에 오를 가치가 있는 것이지, 이런 열정이라면 세상에 겁날 게 뭐 있겠는가

이제 장엄한 일출도 맞았으니 비닐막 쉘터에 옹기종기 모여 추위를 피한다.

이럴 땐 따끈한 컵라면이 최고지.. 그림이 좋다.






매직아워가 지났지만, 구름이 적당하게 조절한

느슨하고 따뜻한 빛이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 같은 느낌이다.






하늘의 구름은 어제오늘 참 별스럽다.

구름이 장관이다.





아침을 먹다 공중에 붕 떠 있는 지리산을 발견했다.

사라질까 봐 얼른 렌즈로 죽 당겨 보았다. 근엄하기까지 한 300리 밖

지리산이 선명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새해 첫날에 이런 행운까지 따르다니.

천왕봉, 중봉, 하봉을 거쳐 웅석봉으로 흐르는 웅석지맥과

영신봉에서 갈래를 쳐 내려간 낙남정맥 남부능선이

또렸하게 보인다.





온산 앞바다도 쇠가 발갛게 달아오른 것 같은 모습이다.






영축산 너머로 부산 금정산 고당봉이 처녀 젖꼭지 같이

봉곳 솟아 보이고, 영축지맥 뾰족한 봉우리 시살등 뒤로 토곡산,

그 뒤 고개를 내민 김해 신어산까지 아스라이 보인다.

.






위로부터 억산, 영남알프스 주봉 가지산,

옛 언양현의 진산 고헌산. 마음은 저 장쾌한 태극의 능선,

고산준령을 바람같이 구름같이 거닐고 싶지만

이제는 마음만 앞설 뿐..






정말 구름이 별스럽다.

이제는 가을 하늘 양떼구름 같이 변신했다.




신불산 정상 북쪽 데크에서 야영한 산꾼이 벌써 출발한다.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기분 좋게 첫인사를 했다.

오늘 열 번은 해야겠다고 생각한 인사를 첫 번째로 했다.






칼바위 능선 너머로 보이는 언양 시가지와

문수산 뒤로 보이는 울산 시가지를 한 번 당겨 본다. 

나도 이제 짐을 챙겨야겠다.





조금 전까지 제법 많은 해돋이를 보러 온

산꾼들로 붐비던 신불산 정상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텅 빈 신불산 정상을 한 장 찍고 내려선다.






유장한 영남알프스 능선들..

이 곳을 지나는 낙동정맥은 영축산에서 좌측으로 꺾어

경부고속도로를 건너 정족산, 천성산을 거쳐 낙동강 하구 몰운대까지 내달리고,

영축산 낙동정맥에서 시작하는 영축지맥은 시살등, 염수봉, 만어산, 매봉산을 거쳐

밀양강 우측으로 떨어지는 도상거리 45km의 산줄기이다.


신불재에는 아직도 텐트 3동이 처져있다.





케룬을 흉내 낸 인공적인 분위기의

신불산 돌탑보다는 자연스러운 이런 돌무더기가 훨씬 정겹다.

나도 돌 하나를 보태고 간다.





신불재에 서 있는 이정표.

이곳 고도가 대략 1,000m, 신불산이 1,159m

무거운 배낭을 메고 700m를 가면서 고도 160여 m를 높이는 것이 힘들어

여기서 퍼지는 경우도 있지만, 신불산 정상은 힘들여 오른 만큼의 보상은 해 준다.

어제 오를 적에는 힘들었는데 잠깐에 다 내려왔다.  






신불산 정상과 우측 일출봉 능선 쪽을 번갈아 본다.

은물결로 일렁이며 신불평원의 가을을 빛내던 호호백발 억새꽃도

꽃술을 다 날려 보내고 또 새로운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겨울과 맞서고 있는 것 같다.






신불대피소 문은 잠겨 있고, 신불 샘은 물길이 딴 곳으로 가

갈수기에는 샘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영남알프스가 좋은 것은

 중간중간 좋은 샘이 있어 물을 구하기 쉬운 것도 큰 장점이었는데..

신불대피소가 그 기능을 잃으니 샘마저 이렇게 된 것 같다.





내려오면서 칼바위 능선도 한 번 올려 본다.

이전에는 박 배낭을 메고도 신불산은 거의 저 칼바위 능선으로

올랐는데 근래는 가장 편한 코스인 불승사를 기점으로 원점 회귀한다.

세월은 속일 수 없는 것. 이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박 배낭 메고

신불산을 오르지 못할 때가 오겠지. 조금 슬픈 일이긴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을..





이 이야기는 쓸까 말까 하다 쓰는 글..

오늘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10번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나는 산객들한테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의 산객이 기분 좋아하며 화답했다.

아홉 번째, 올라오는 산객들과 마주쳐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멋진 분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니 복 많이 받아야지요" 한다.

또 옆 사람이 "늘씬한 분한테 복 받으라는 인사를 받으니 복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더니,

또 그 옆 사람이 "잘생긴 분이 복 받으라고 하니 오늘 기분이 정말 좋은데요"라고 한다.

이게 아닌데..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디 숨을 곳을 찾고 싶을 정도로 얼굴이 붉어졌다.

립 스비스인줄은 알지만, 솔직히 기분은 좋았다. 민망한 마음에 자리를 피하듯 내려서다

뒷모습이라도 한 장 남겨야겠다고 돌아보니 벌써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들이 천사인지도 모르겠다.





철없는 단풍에도 속마음을 들킨 것 같다.

키득키득 웃으며 축하해 주는 것 같다.





이 도사가 써 붙여놓은 환영 팻말을 지나

이 도사 집이라는 간판을 지나는데 멀리서 인기척이 들린다.

이 도사인 것 같다. 이 도사한테도 인사를 해야겠다. 그럼 열 번이다.

큰 소리로 "이 도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하니

곧 화답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이소"


어제는 그 짙은 구름을 열어 그 틈으로 지는 해를 보여 주더니

한밤에는 하늘의 구름을 깨끗이 지우고 찬란한 별들을 뿌려 보여 주었고,

찬란한 해돋이로 새해를 맞게 해 주었다, 또 300리 밖 지리산까지 보여주더니 

조금 전 인사 한마디에 생전 듣지 못한 얼굴 붉어질 정도의 찬사까지 듣고,

 화룡점정이랄까! 신불산 이 도사님한테서도 복 받으라는 인사까지 받았다.

모두가 감사한 일이다. 올해는 더욱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겠다.

2019년에는 정말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