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30. 00:07ㆍ길따라 바람따라/해파랑길
통영이 아닌 백석 해변에서 백석 시인을 떠올리다
해파랑길
23코스
고래불해변-병곡휴게소-금곡교-백암휴게소-후포항
11.9km / 13:50~16:10 (2:30)
2019. 9. 24(화) 맑음, 27℃
이번 23코스는 오전에 걸은 22코스에 이어
걷는 코스. 영덕 병곡면 고래불 해변에서 출발하여
백석리 해변과 금곡교, 백암휴게소를 거쳐 후포항에 이르는
11.9km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다. 이번 코스 금곡교에서
지금까지 블루로드로 대변되던 영덕군과 작별하고,
울진군에 입성한다. 오늘 후포항까지 걸으면 누적거리
376.5km로 해파랑길 전체 거리의 절반을 넘어서게 되어
반환점을 도는 셈이지만 갈 수록 접근도 어려워지고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고래불 해수욕장(병곡) 입구 고래 상징조형물.
고래불 해변은 명사 20리라 부를 정도로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다보니 고래불대교를 건너 국민야영장이 있는
고래불 해수욕장(덕천)과 고래불 해수욕장(병곡)이라는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오늘 점심도 물회였다.
물회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해파랑길을 걸으면서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 덕분에 각 지역의 물회를 비교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다. 해파랑꾼들이 모여 품평회를 하면
적어도 동해안 지역의 물회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할 것 같다.
병곡2리 어촌계 공동작업장을 지나 후포로 향한다.
병곡 고래불 해수욕장을 돌아 나가는
모퉁이에 있는 용머리 공원에는 고래불 지명 유래를 설명해 놓았다.
"고래불은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 선생이 해수욕장 앞바다에 고래가
하얀 분수를 뿜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고래불("불"은 뻘의 옛말)
이라 부른 데서 연유되었다고 전해지며.."라고
용머리 공원을 따라 해안 길로 나오니
방파제에 둘러싸인 병곡2리 항구와는 달리 파도가 심하게 인다.
도로가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전방으로 길이 세 갈래로 나뉘어 보이는데
어디에도 표지기가 없다. 표지기는 이런 곳에 달아야 하는 것 아닐까
블루로드가 끝난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영덕 블루로드는 포항시를 벗어나면서 줄곧 이어오다
조금 전 고래불 해변을 지나면서 끝이 났다. 같은 영덕군
지역인데 블루로드와 NO 블루로는 정말 천양지차. 해파랑길이
차도 가장자리를 따라서 가는 것은 물론, 표지기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길 안 좋다고 안 갈 수도 없는데..
해는 왜 이리 따갑게 내리쬐노
그저께 태풍이 몰아칠 때 파도에 실려 온 자갈 같다.
사실, 태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하는 일이 많다.
바닷물도 뒤집고, 여름에 어질러 놓은 계곡의 쓰레기도
청소하고.. 피해를 본 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자연은 이렇게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백석리를 지난다.
멋쟁이 백석 시인이 생각나고 그의 바다가 떠 오른다.
바닷가에 왔더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이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백석 / 바다(1937년, 여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의 사랑
한 분은 지금 옮기는 자야이고,
그리고 부모님이 정해 준 부인,
백석의 절친한 친구 신현중과 결혼해버린 통영의 란,
그리고 김진세의 누이,..등.
세월과 세월이 강물처럼 흐르고 가난과 외로움이 쓸쓸할 때
사랑의 처지가 눈물 앞에 뉘어가며 흔들릴 때
그의 사랑도 정처도 그의 조국인 조선의 울도
그와 함께 따라 변해간다.
함흥에서 서울에서 통영에서
의주에서 만주에서 북한에서
백석의 여인도 운명처럼 여럿 등장한다.
아마도 백석의 심중에 남은 여인이 첫사랑-통영의 란이라면,
여인의 심중에 남아 있는 사랑은 자야의 백석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의 사랑 이야기
그림자 벗 삼아..
갓길도 없는 전혀 해파랑길과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아스팔트 신작로는 걷기가 힘들고 지루하다.
평소 같지 않게 핸드폰을 켜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곳곳에 그물을 말리거나 손질하고 있는 모습들..
통발 형태의 대형 원통형 그물이 신기하여
"이 그물로 어떤 고기를 잡습니까?" 하니,
"다 잡아요? 그물 안에 들어간 고기는 다 잡아요."
동문서답 아니 우문현답 같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어떤 고기를 잡을까?
위험한 도로 갓길을 가던 해파랑길이
보행자와 자전거 겸용으로 만들어 놓은
데크로 올라섰다.
금곡천교 아래로 흐르는 유금천만 넘으면
울진군 후포면이다. 이제 영덕 구간과도 작별이다.
금곡천교 아래서 물 한 모금 마시며 발바닥의 열도 식힌다.
신발을 벗으니 발이 살판 난 모양이다.
조금 전 칠보산휴게소를 지나고 가까운 곳에
칠보산 청소년 수련원이 있는 걸 보니 칠보산까지
걸어 온 것이다. 울산서 칠보산까지 참 먼 거린데..
동해안 자전거길로 달리는
라이더들이 제법 자주 눈에 띈다.
길을 걷다 보면 파도가 멋지게 터진다.
다시 그런 장면이 오면 찍으려고 카메라를 걸치고
기다리면 하세월이다. 가려고 하다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기다린 끝에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크게 터지는 파도를 숨죽이며
찍었는데 이게 뭐람. 여백이 다 잘려 나가 볼품없는 그림이 되었다.
속상한 것은 다음 날도 계속 이렇게 찍었다는 것.
카메라 화각이 왜 왔다 갔다 할까?
맛이 가도 제대로 간 모양이다.
파도가 심한 바다에서 낚시하는 사람
옆에 라이터와 담배는 또 뭐지?
버스 시간표가 잘려 나갔지만
그래도 올려놓는 것이 낫겠지. 농어촌버스 시간표는
인터넷으로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에
문의하는 것이 제일 정확할 것 같다.
어떤 곳은 쿠르르, 우르르
어떤 곳은 차르르, 짜르르, 자갈자갈..
파도에 휩쓸린 자갈 구르는 소리가 정겹다.
주전 몽돌해변 걷는 느낌이다.
노란 그물이 눈에 띈다.
물고기들도 노란색을 보고 몰려들려나?
조금 전부터 통발 같은 원형 그물이 많이 보인다.
수많은 어항을 지나왔는데 풍경은 거의 비슷비슷하면서도
조금씩은 다른 것이 어구들이다.
오늘은 동해안 자전거길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 외국인들도 몇 팀을 만났다. 해파랑꾼들도 가끔 보인다.
뒤에서 휙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 한다. 외국인들이다.
우리나라 라이더들은 짐이 단촐한데 외국인들은 대부분
야영을 하면서 가는지 짐이 많다.
사진이 잘리면서 오징어도 몇 마리 날아가 버렸다.
멀리 후포항이 보인다. 축산항 대소산 봉수대에 올랐을 때
가물가물하게 보였던 그 후포다.
이번 코스에서 파도가 이렇게 친구되어 주지 않았으면
얼마나 적적하고 지루했을까?
이제 다왔다.
바로 앞에 후포 등기산 공원의 등대가 보인다.
영해가는 농촌 마을버스 타는 곳을 물으니
농촌 마을버스를 타지 말고 시외터미널로 가서 직행버스로
영해를 가라며, 터미널 가는 길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난 농촌 마을버스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옛말에 아는 길도 물어 가라고 한 것 같다.
23~24 코스 안내판.
16시 10분, 오늘은 여기까지..
조금이라도 빨리 축산항으로 돌아가려고
후포항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고양이가 다리를 건너가고 있길래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그 녀석 가던 길을 멈추고
포즈를 취해 준다. 갈 길이 바쁜데 석류는
또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웃고 있다.
4:18 후포 버스터미널에 도착
4:40분 포항 가는 버스가 있다.
영덕까지 가는 표를 끊었다. 버스가 곧 도착할 시간인데
표를 잘못 끊은 것을 알았다. 영덕이 아니라 영해 표를 끊어야 하는
것을.. 사실, 포항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지명들이 익숙하지 않다.
영덕, 영해, 영양.. 비슷비슷하여 헷갈린다.
특히, 돌아갈 축산항은 생각이 잘 안 난다.
영해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7:05
축산항 가는 버스가 조금 전에 떠났다고 한다.
다음 차는 17:30, 터미널에서 25분 정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18:00 전에는 축산항에 도착할 수 있겠다.
오늘 어디서 잘까? 후포항은 사진찍기 좋을 것 같고.
기성항은 돌아올 때 편리할 것 같고..
축산항에서 고래불 해변 거쳐 후포항까지 28.2km
걸은 시간 7시간, 대중교통(버스)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50분. 갈수록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질 텐데..
후포에 도착하니 이미 노을이 지고 있다.
기성까지 가야하나 어쩌나 하다 돌아갈 때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림이 좋은 후포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아름다운 야경에 홀려 열심히 찍었지만 역시 카메라
화각에 문제가 생겨 사진이 잘리는 바람에
맘에 드는 사진이 없어 아쉽다.
해파랑길 23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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