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4코스 (후포항~기성터미널) 관동팔경 월송정에서 시인.묵객의 흥취를 느끼며..

2019. 10. 4. 22:59길따라 바람따라/해파랑길





관동팔경 월송정에서 시인.묵객의 흥취를 느끼며.. 

해파랑길

24코스

후포항-등기산공원-울진대게유래비-월송정-대풍헌-기성버스터미널

18.1km / 08:30~13:20 (널널 4:50)


2019. 9. 25(수) 맑음, 27




이번 24코스는
울진 구간으로 울진군 후포면에서
기성면을 잇는 구간으로 후포항에서 출발하여
기성 버스터미널에 이르는 18.1km의 길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숲길과 갯벌, 백사장과 온천이 조성된 힐링 코스다.
후포항에서 스카이워크가 있는 등기산 공원을 지나
울진대게 유래비와 대게 조형물이 있는 거일항을 거쳐
관동팔경 중 하나로 달빛과 어울리는 솔숲이라는 월송정,
넓고 울창한 송림과 갯벌 고운 모래가 일품인 구산 해변과
대풍헌과 독도 모형이 있는 구산항 등을 지난다.





24코스 출발점 후포항.

육지에서 울릉도 가는 배편이 여러 군데 있지만

가장 빠른 뱃길은 이곳 후포항 여객터미널에서

씨플라워로 울릉도 사동항으로 가는 배편일 것이다.

매일 오전 오후 각 2회 울릉도를 왕복한다.

일요일은 4회 운항. 하지만 울릉도 여행은

기상 상황 고려가 필수적이다.








후포여객선터미널에 주차 한 후 

어제 밤에 올랐던 등기산 공원은 생략하고

돌아나가자마자 등기산 스카이워크가 나타났다.

해상 높이 21m, 길이 135m. 유리 구간을 지나 끝까지 가면

짜릿함과 멋진 풍경이 예상되지만. 아직 문이 잠겨 있다.

스카이워크 데크에 오르니 끝없이 펼쳐진 동해 푸른 바다에

은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다. 반짝반짝 눈이 부신다.


어제 대소산 등대에서 아스라이 보이던 호미곶이

여기서는 바다 위에 가는 선을 그어 놓은 것 같다.

 지구가 둥글기는 둥근가 보다.





해안을 따라 거일마을로 향한다.






한국공항 평해광업 전용부두에는

석회석을 운반할 선박이 정박해 있다, 등기산에서

채광한 석회석은 4~6mm 크기로 분쇄하여 컨베이어 벨트와

Ship Loader를 이용하여 선박에 선적한 후 수요처에 공급한다.

포스코에는 제철용으로, 한국전력에는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화력발전소 탈황용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아직 해안 쪽으로 길을 피해서

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갓길도 없는 차도를 걷는데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는 차가 여간 위험하지 않다.

도로 선형을 개선하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포크레인이

바위 옮기는 소리가 파도 소리보다 요란하다.






높은 망대에 올라 별같이 반짝이는

 바다에 홀려 할 일도 잊은 갈매기들..







걷고 있는 길은 울진대게로.

파도가 지나가고 나면 수 많은 폭포가

생겨난다.







'원조 대게마을'이라는 거일마을 바닷가에는

큼지막한 대게 조형물과 대게 낚싯배가 눈길을 끈다.

그저께 태풍으로 피해를 본 듯한 해상낚시공원도

청소하며 손님맞이 준비에 분주하다.




집 앞 도로를 쓸고 있는 할머니.

아이구 허리야! 하면서도 펴지 못하는 굽은 허리,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도 그냥 두지 못하는

어머니 생각이 난다.






계속 도로 가장자리를 따르던 길은

가끔 마을 안길로 향하기도 한다. 울진이 대게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길옆에는 대게 형상의

조형물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대게는 울산에서부터 영덕, 울진까지

각 지자체의 홍보가 대단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이제 동해안 전 지역에서 특산물(?) 아닌

특산물이 된 대게다.







직산항

통발을 열심히 깁고 있는 분에게 다가가

"이 통발로는 어떤 고기를 잡습니까?" 하였더니

"문어를 잡는 통발" 이라고 하길래, "통발 하나에

 문어가 몇 마리나 잡힙니까?" 했더니, 웃으시며..

 "몇 마리씩 잡히면 벌써 부자 되었게요" 한다.

문어가 통발 가득 차고 아저씨도 부자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파도가 센 직산1리를 지난다.

지나가는 길손에겐 크게 부서지며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가 장관인데 주민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

태풍이 오고 큰 파도가 일면 이 방파제로

버틸 수 있을까?







방파제 벽에 그려진 그림이 지겨워질 즈음

남대천 건너로 월송정이 있는 송림이 나타났다.

오르막을 힘들게 오르는 라이더들에게 화이팅!! 했더니

"사진 한 장 찍어 주세요?" 한다.

"사진 어떻게 보내 줄까요?" 했더니

"안 보내주셔도 돼요." 하며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갈 길이 바쁜가 보다.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잘 도착하길..







솔밭을 피해 트인 강 쪽으로 들어 온 17호 태풍

타파가 벼를 쓰러뜨린 것 같다. 올해는 유난히 우리나라로

향한 태풍이 많은 것 같다. 가을에 오는 태풍은 농작물에

피해를 많이 주어 농민들에게 시름을 더하게 한다.





해파랑길은 월송정 숲속으로 들었는데

여기도 솔가지가 부러져 널브러져 있다.






월송정 솔밭에 있는 사구 습지







이분들을 여기서 만나다니..

세 분은 22코스 괴시리 마을 내려서기 전 산길에서

 마주쳤고, 두 분은 금음리를 지날 때 서로 인사를 나눴던 분들..

월송정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어떻게 된 것인지 의아했는데

다섯 분은 모두 부산서 오신 한 팀이었다. 두 그룹으로 나눠

코스의 양 끝 지점에서 각각 출발하여 중간지점에서 자동차 키를

전달받아 다른 그룹이 승용차를 회수하여 만난다는 것이다.

해파랑길을 걷는 제일 효율적인 방법 같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지들이다. 스치듯 만났지만

동류의식은 오래된 동무를 만난 듯 반갑고 스스럼없다.

또 이런 인연이 맺어지나 보다. 기념하며 함께

찍은 사진인데 잘 나오지 않아 아쉽다.





월송정에 올라 바라보는 동해




월송정 2층 누각에는

정조가 써서 내린 편액을 비롯하여

월송정의 절경을 읊은 안축, 이행, 송성용, 황여일, 이곡,

김종서, 이산해의 시 등이 걸려 있다.  이 밖에도 그림으로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 중

 '월송정도(越松亭圖)'가 유명하고, 허필의 <관동팔경 월송정>은

선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고, 단원 김홍도의 그림도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시 몇 편을 살펴보면,



정조대왕(正祖大王) 어제시(御製詩)


環亭松柏大蒼蒼  정자를 둘러싼 송백은 울울창창한데
皮甲鱗 ? 歲月長  갈라진 나무껍질 세월이 오래로다.  
         浩蕩滄溟不盡流  넓고 넓은 푸른 바다는 쉼 없이 출렁이는데
  帆穡無數帶斜陽  돛단배는 석양에 무수하게 떠 있구나.
  




고려시대 경기체가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안축의 시





월송정의 절경을 읊은 황여일의 시


 北見靈驚擧玉峯 해객이 뗏목을 타고 월송정을 찾아오니
靑蛇袖裏暎芙蓉 청룡등 가운데에 부용봉이 어렸구나   
東臨碧海開銀鏡 동으로 푸른 바다 은거울 펴놓은 듯    
北見靈驚擧玉峯 북으로 신령한 산 옥봉을 들었구나     

하략,... 대략 이런 내용이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겸재의 <월송정도>(위)와

선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허필의 <월송정도>




소나무 숲 사이로 푸른 동해가 보인다.

전면에는 고려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이행의 시

'월송정'이 걸려 있다. 평해 황씨의 외손으로 백암산

아래에서 귀양살이하면서 매번 달밤에 소를 타고

월송정을 노닐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했다.


         丹丘仙侶夢相逢  푸른 바다의 밝은 달이 소나무에 걸려있네
        叩角歸來興轉濃  소를 타고 돌아오니 흥이 더욱 깊구나     
      吟罷亭中仍醉倒  시 읊다가 취하여 정자에 누웠더니       
     丹丘仙侶夢相逢  선계의 신선들이 꿈속에서 반기네       






월송정의 현판을 보니 ‘월송정’의 월은
달 월(月)자가 아니라, 월나라 월. 넘을 월(越)자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미 조선 시대부터 월송정의 유래에 대한
여러 설이 있었다. 즉 월(越)나라에서 가져온 소나무에서
유래했다는 설, 신선이 솔숲을 날아서 넘는다(飛仙越松)는
뜻을 취한 것이라는 설, 월(月)자를 월(越)자로 쓴 것으로
이는 성음(聲音)이 같은 데서 생긴 착오라는 설 등


월송정(越松亭)의 유래
월송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신라 시대의 화랑들이 이곳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하였다 하여 월송정(月松亭)이라고도 한다고.

명승을 찾는 시인 묵객들이 하나같이 탄복한 곳으로 정자는 고려 시대에

창건되었던 것을 조선 중기 연산군 때의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하였고,

오랜 세월에 퇴락한 것을 1933년 고을 사람 황만영 등이 재건하였으나.

일제 말 일본군이 철거해 버린 것을 1969년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

김정문을 비롯한 80여 명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건축양식이 어울리지

않아 1980년 정면 5칸, 측면 3칸 약 86㎡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인 현재 모습의 정자로 복원하였다.

현판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썼다.






만나기 위해 헤어진다.

한 그룹은 후포로 출발하고,

또 한 그룹은 기성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난, 기성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그룹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쩌노.. 세 사람이 나와야 할 사진이 잘려서

두 사람 밖에 안 나왔으니.. 남모르는 애환은 계속된다.

물론 당시는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








사진을 보니 속상하다.

의도한 대로 찍힌 사진도 있지만 화각이 좁아져

구도도 안 맞고, 더 나왔으면 할 부분이 안 나와

아쉬운 사진이 되었다.





월송정 솔밭길을 걸어나 봤냐

파도 소리 들으며 솔향을 마시며..

다시 걷고 싶은 호젓한 길







구산해수욕장을 지나







대풍헌(待風軒)은
철종 2년(1851년) 조선 시대 동해안 평해 구산포에서
울릉도 독도로 순찰하던 수토가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라 한다. 아담하고 아늑한 느낌이었으나.

대풍헌의 처마가 날아가 버렸으니..





구산항의 독도 모형






고가 좀 올라옵니까?

파도가 이렇게 치는데 고기가 올라오겠습니까?

그러면서 지금 뭐 하고 계십니까?






백암 김제의 충절 시비가

마을 쪽 바위벽과 이곳 해안에 세워져 있다.

백암 김제는 이성계의 역성혁명 소식을 듣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고 일엽편주를 타고

동해로 종적을 감추었다(1392.12.22)고 한다.

그때 남겼다는 한시가 바위벽에 비로 새겨져 있다.

呼船東問魯連津 五百年今一介臣
可使孤魂能不死 願隨紅日照中垠

"충절로 몸을 던진 노련의 나루터는 어디메뇨

뒤따르려니 오 백년 조정의 초개 같은 이 신하

바라건대 외로운 넋이라도 있어 주어

붉은 저 해 되어 두고두고 임 계신 곳 비추리"

옛 충신들의 절개가 느껴진다.






봉산2리를 지나는데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하얀 파도가 이는 모래밭으로 달려가 보니 왕모래 밭이다. 

발이 빠지면서 비명인 듯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낸다..

저 앞에 움푹 들어간 곳이 기성항인가 보다.






두 분이 도로변 땡볕에 앉아 있길래

"더운데 여기서 뭐 하세요. 더운데 그늘도 없이.."

"다 늙었는데 더위는 무슨 더위고?"

"늙기는 뭐가 늙었노. 아직 한창인데.."

"안 늙었다하이 기분은 좋다마느"

"어데 간다고 더운데 이리 가노?"

사투리를 제대로 표현은 못 해도 그런 대화.






온 가족이 마늘을 심고 있다.

"더운데 뭐 하세요." 하니

"덥기는 뭐가 덥노 썬하거마느.."

인사하고 말을 걸어주니 좋아들 하시고

말을 주고 받으며 가니 걸음이 가볍고

한층 즐겁다.






비행기가 연신 뜨고 내리는

한국항공전문학교 울진비행훈련원을 지나는데

오른쪽으로  오늘의 종착점 기성면 척산리가 보인다.

22코스 출발지는 축산이었는데 여기는 척산이다







오늘의 인증사진




24-25 코스 안내판






13시 25분 기성공용터미널 도착.
13시 20분 버스를 타고 후포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어렵게 알아낸 버스였고 내 페이스대로
걸었으면 여유 있게 13시 20분 버스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코스보다 기다리는 시간 없이 톱니바퀴 돌듯 잘 짜인
계획에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월송정에서 만난 분들이 후포까지 태워준다고
하여 동행했기 때문이다. 감사할 뿐이다.


세상일은 그런 것 같다.
계획대로 되는 일도 있고, 예상 못 한 일로
꼬이기도 하고, 예상 못 한 좋은 방법으로 해결되기도 한다.
 완벽주의자였다. 지금도 떨치기 힘든 습관이 남아 있지만..
철저하게 계획하고 사전준비를 한다. 끝이 없지만 그렇게 해야
맘이 편하고 시행착오가 줄었다. 일이 잘되기도 했다. 하지만
치루는 대가는 크다. 늘 시간에 쫓고 힘들었다. 결벽에 가까운
완벽주의를 탈피하고 싶었지만, 습관과 성격은 병보다 무서운 것.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던 습관도 대간과 정맥길을 홀로 걸으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절실함이 병도 고치는 것 같다.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고, 
일하다 보면 예상 못 한 문제도 생기기 마련이고,
또, 그 문제들은 그때그때 해결할 수 있는 것,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이전 같았으면 틀림없이 내 페이스로 계속 걸어가서

예정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잘 짜인
계획에 만족하며 도취하였을 것이다.




버스가 아닌 승용차로 후포로 돌아가는 길


해파랑길을 걷는데는 차이가 없겠지만

집을 나서서 돌아오기까지는 방법도 각양각색 일 것이다.

제일 쉬운 방법은, 들머리까지 태워주고 날머리에서 태워가는 

택배 방법일 테고, 제일 힘든 방법이기도 하고 해파랑길을 제대로

체험하는 방법은 박 배낭 메고 계속 이어가는 방법일 것이다.

매일 걷고 돌아와 차를 회수하려니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다.

이제 차를 교통연결이 잘 되는 곳에 주차해 두고 계속 걷다가

돌아 올적에 자동차를 회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관건은

박 배낭을 메고 걷느냐, 배낭을 가볍게 하고 걷느냐다.


 오늘 함께 하신 분들.. 정말 즐거웠고

고마웠습니다.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죠.

내내 건강하시고 무탈하게 완주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해파랑길 24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