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억새밭에 쏟아지는 별

2019. 11. 24. 23:09山情無限/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억새 밭에 쏟아지는 별


2019.11.20-21

악남악녀산악회 7명







올해 버킷리스트에 있는

아프리카 남북종단여행을 하했는데

여의치 않아 미루고 있던 해파랑길을 시작했다.

쉽게 생각했는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집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스팔트 길이 산길보다

걷기 힘들다는 것을 느낄 즈음 발바닥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강원도에 들어서자 해파랑길이 가끔 산으로 간다, 해파랑길에만

몰두하느라 산을 등한히 한 것을 들켜 산으로 이끌린 기분이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차박도 하고 야영도 하지만, 이 가을 영알의

안부가 궁금했다. 영알 억새와 별을 보고 싶었다. 다행히 형편이

되어 반발만 담갔던 영알 야영을 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영남알프스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노스텔지어 영남알프스!





만산홍엽, 불붙은 가을 산 위로 쳐진

빨랫줄 같은 케이블.. 이전에 저 줄 치는 것을

 막으려 했는데.. 오늘 저 줄에 매달려 오른다.






상단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보니

맞은 편에 하얀 호랑이 한 마리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이전에 겁도 없이 저 백호의 등걸에 로프를 걸고 올랐으니..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겁도 없이..

왼쪽 뾰족봉은 정각산.. 멀리 화왕산도 보인다.







 배낭의 무게가 무거워지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 반하여 여유롭고 자유로워지기 마련인데

오늘은 발보다 마음이 더 바쁘다

정상에서 일몰을 볼 수 있으려나






흔히 등산을 인생에 비유한다.

정상에 오르는 루트가 각각이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도 그렇고

누가 대신 가 줄 수 없는 것이 그렇다.

바늘허리에 매어 못 쓰듯 한 걸음도

건너뛸 수 없는 것이 그렇다.






북풍한설과 맞서기 위해

힘의 근원이었던 잎마저 다 떨군 능선의 나목은

꼭 고슴도치 등걸 같다.






후유~

고생한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듯

일몰까지 손가락 한 마디도 남기지 않은 태양이

꽃술 다 날린 억새 꽃대 끝에 머물러 있다.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에 올라도 정상석을 찍는 것이 불편하다.

천황산으로 부르고 재악산으로 부른들 산이 변하겠냐만

사람에게 이름이 중요하듯 산도 자기 이름이 중요하다.


앞으로 정확한 사료를 바탕으로 제대로 정리가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조선전기 점필재 김종직(1431~1492) 선생의 시문에

載岳이 등장한 이후 1481년 제작된 동람도를 비롯하여 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청구도, 대동여지도,

대동지지, 동여도, 해동지도, 여지도서, 한국지리총서.. 등 수 많은

고문헌과 고지도는 물론, 심지어 일본에서 정한론이 비등하던 시기인

1884년 일본인 石塚寧齊가 그려 간행한 '오기팔도조선국세견전도

(五畿八圖 朝鮮國細見全圖)'에도 재악산(載岳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천황산(天皇山)은 1914년에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처음 측도하고, 

1920년 수정 측도한 후 1923. 6.25에 인쇄되어 6.30일에 발행된

1/50,000 지도에 처음 載岳山이 天皇山으로 둔갑해 나타났다.





지리산이 고픈 마음은

만나지 못해 애타는 임 먼발치에서

바라보듯 영알에 오르면 제일 먼저 찾아본다.

400리 밖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하다.

오늘은 더 멋있다.





하늘 길을 가르키고 있는 것 같은 이정표







아쉬운 듯, 애잔한 모습으로
고개 숙여 작별하는 억새, 석양에 물든 하늘을 품고
미련 한 자락을 감아 안는다.





산너울 너머 가물가물한 지평선 끝

뭇 산들을 품은 자태도 의연하다.

아! 산 중에 있어도 지리산이 그립다.






오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어 도덕 선생님 같았다.

샌님처럼 말쑥했던 태양은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한동안 노을로 물들였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리자

우리들의 산정(山情)도 깊어간다.








별이 하나 둘 뜨고

가슴 속에 뜨던 반달도 떴다.

억새도 서걱서걱이는 산정의 밤은 깊어 간다.

기온은 급강하 우리의 악사 먼산은 시린 손으로 코드를 잡고

산골소녀 하이디 같은 산골 오기는 하모니카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지고 우리들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너와 나의 하늘이
널 생각하는 마음만큼 가득하다. 생각들은

반짝이는 별이 되어 까만 하늘을 수 놓고 있다.
별 밤에 행복했고, 별 밤이 행복하다.





눈 시리게 밤하늘을 바라본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 어제도 있었고 내일도 있겠지만

오늘은 오늘의 별을 모셔가야겠다.






여기서부터 별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펼쳐집니다.









이 사진은 클릭하면.. 제법 큰 하늘이 열립니다.





그렇게 찬란한 밤이 가고

산정에서 새로운 날을 선물로 받았다.

선물을 받기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그저 주어졌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기에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는 것 같다. 

왜 그런지 정말 귀중한 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 같다.

물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고, 별과 달, 태양이 그렇고

새날이 그렇고.. 정말 귀중한 것은 다 그런 것 같다.





간월산과 신불산, 신불평원 위로 황홀한 띠를 펼친다.

마치 갈길에 양탄자를 까는 것 같다.

여명은 이렇게 밝아 왔다.





동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장산 아래

해운대 마린시티 마천루들이 눈에 들어온다.

영남알프스 고봉들은 정말 멋진 전망대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처음 받은
시집의 첫 장을 열듯
오늘도 아침을 엽니다


나에겐 오늘이 새날이듯
당신도 언제나 새사람이고
당신을 느끼는 내 마음도
언제나 새마음입니다


처음으로 당신을 만났던 날의
설레임으로
나의 하루는 눈을 뜨고


나는 당신을 향해
출렁이는 안타까운 강입니다.


아침 / 이해인






이글거리며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

오늘은 어제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라고,

허투루 살지 말고 제대로 살라고 눈 부릅뜨고

불호령을 하는 것 같다.






생명의 근원이자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

일출과 일몰의 파장은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와

호르몬을 생성시킨다고 한다. 잠잠히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갈 정기를 듬뿍 받는다.








올가을 억새도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고 바람 불고 태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생이별하듯 꽃술을 떠나보냈을 것이다. 

소리 없이 울기 망정이지 인간같이 엄살을 부렸다면

온 산이 떠나갈 듯 요란했을 것이다.







지난밤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내려간다고

예보하였는데 아마 그보다도 더 내려간 것 같다.

많이 빗나가기도 하지만 하늘이 하는 비밀 된 일을

그렇게 시시때때로 까지 맞추려 하는 의지가

대단하다. 교만해 보이기까지 하다.






역시 억새는 태양빛을 받아야 살맛이 나

본색을 드러내고 춤추나 보다. 향기도 없는 것이 

아름답다. 이런 모습을 못 보나 했는데 다행이다.

인간은 산을 실망시켜도

산은 인간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아방궁 같은 별장이 뭐가 부럽고

120평 아파트인들 뭐가 부럽겠는가?

비록 한 평 남짓한 텐트에서 느끼는 행복이지만

그 순도는 그런 것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이 순간 마음은 부러울 것 없는 부자다.






참 평화로운 모습들..

세상 사는 것 뭐 별것 있을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덩달아 달려야 하는 일상이지만

 이렇게 한 발만 갓길로 내려서면 별천지인 것을..

마냥 그럴 수 없겠지만, 오늘 다시 힘차게 살아갈 

새 힘을 얻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영남알프스는

지리산같이 품이 넓고 부드러우면서도

설악산같이 까칠한 면도 보인다. 이 산 저 산

다 다녀봐도 영남알프스같이 넉넉하고 아름다운 

산을 찾기 힘든 것 같다. 이런 멋진 산 인근에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갈밭 길을..

아니 억새 밭길을 걷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11월 하순이 주는 무겁고

쓸쓸한 느낌은 어디에도 느낄 수 없다.






하룻밤 우리들이 머물도록 허락해 줘서 감사하다.

남길 것은 추억.. 그 외에는 흔적도 없이 가져가야 한다.

일회용품 사용도 줄이고, 음식도 남겨 버리는 것이 없어야 하고,

발생한 쓰레기는 모두 되가져 가야 한다. 영알에서 이제 야영도

점점 내몰리고 있다. 야영객들이 잘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겸허한 마음으로 풀 한 포기,

개미 한 마리 함부로 밟지 않겠다는 자세로 산에 들아야 한다.

우리는 잠깐 들렸다 가는 손님이고, 나그네일 뿐이다.

이 자연을 터전으로 사는 주인들에게 해를 가하거나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다음 세대에게 빌려쓰는 이 자연과

 환경을 잘 보존하여 물려 주어야 한다.





정말 멋있는 모습들이다.

 올겨울 설박도 기대해 보면서..






박 배낭을 지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 반해

마음은 자유로워지는데.. 이번에는 그렇지가 못하다.

어제는 일몰을 보려고 박 배낭을 메고 바쁘게 걸었고

지금은 또 케이블카 왕복 티켓 시한이 12시까지여서

그 시간 맞추느라 바쁘게 걷는다.





우리 쓰레기봉투가 보여 의아했는데

먼산님이 샘물산장에 일 보려 가면서

되돌아 나올 때 가져 가려고 잠깐 두고

간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억새가 만발하면 연례행사로 2박 3일 정도

진하게 걸었는데.. 박 배낭 메고 이렇게 짧은 시간 걸은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짧게 걸었다고 즐거움이 덜 한 것은 아니다.

여행이 그렇듯 산행도 어디를 가는가도 중요하지만, 같은

곳이라도 누구와 가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번에 좋은 산우들과

함께하여 더 귀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애쓰고 수고한 손길이 복되길 바라며..

감사한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