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그 하얀 능선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2020. 1. 12. 23:59山情無限/산행기(일반)




소백산, 그 하얀 능선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2020. 1. 1(수) ~ 1. 3(금)

외인악우회 외 9명


울산 태화강역-(열차)-단양역-(택시)-새밭유원지

어의곡 지킴터-비로봉-주목감시터-1연화봉-연화봉대피소-죽령

죽령-(택시)-풍기역-(얼차)-울산 태화강역






·일 소백산 가려던 계획이

·금으로 변경되었다. 이런 좋은 일이 어딨냐.

김 대장과 주니 대장, 나 이렇게 3명인 줄 알았는데 산행 준비 

카톡방에 들어가니 전체 9명이다. 다른 산방과 연합한 모양이다.

새해 첫날부터 새벽에는 고헌산 일출 산행으로 새벽잠을 설치고

소백산 칼바람 맞으러 가려고 이번에는 밤잠까지 설치게 되었다.

종주는 아니지만, 자정 직전 출발하는 열차로 가다 보니 8분 때문에 

하루가 늘어났고, 다음날은 어의곡으로 올라 연화2봉 대피소까지 

종일 산행하지만, 셋째 날은 오전에 풍기역에서 열차를 타고

돌아오니 1박 3일이 되어 바쁜듯하면서도 여유로운 일정이다.

2020년 고헌산에서 힘차게 솟는 일출도 맞았으니

소백산 칼바람 맞고 정신 바짝 차려 혼란스런 세상

헤쳐나가야 할 것 같다.






이전엔 완행열차 여행이 낭만적이었다.

특히 밤 열차가.. 오랜만의 밤 열차, 태화강역에서 23:53분 

출발하여 3시 36분 단양역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일출 산행을 

한다고 설친 탓에 중간에 토막잠을 잤다. 이제는 무궁화호 

열차도 KTX만큼이나 엄숙하다. 단양역에 내리니 적막공산,

가로등 불빛만 껌뻑껌뻑 졸고 있는 역 광장 한쪽에서

간단하게 야참을 먹고 택시 2대에 나누어 타고

새밭유원지로 출발한다.





이마에 불을 켜고 어의곡 지킴터로 들어

빙판이 된 길을 1시간쯤 오르다가 도중 널찍한 데크가

있는 곳에서 비닐 셀터를 치고 한참 시간을 보내다 먼동이

틀 즈음 다시 산행 시작. 하늘은 흐리지만, 주변은 눈으로

훤하다. 어두운 길에서 봤던 것보다 눈이 많다.

일출을 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캄캄한 밤 앞사람 

꽁무니만 보고 가는 산행이 아니어서 좋다,







날이 밝은 데다 고도를 높이니

분을 바른 듯 눈을 뒤집어쓴 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여기가 바로 겨울왕국 같다.






설경에 감격하고 환호하며 그냥 가기 

아쉬운 듯 가던 길 멈추고 포즈를 취한다.







눈이 이렇게 많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상상도 못 했기에 더 감격스럽다. 소백은 설경에 목마른

우리들을 위해 새해 첫날부터 멋지게 단장하고 있었다.

사실, 이번 산행은 눈길은 걷는 것보다는, 칼바람이나

제대로 맞고 갔으면 좋겠다며 기대를 낮추었지만

포근한 날씨는 그마저도 어려울 것 같았는데..





김대장,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올곧은 산악인이다.

얼마만의 동행인가? 2년 전 외인악우회 30주년 

기념 산행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올 한 해 회사를 

더 다녀야 한다니 내년에는 함께 산행할 

기회가 자주 생길 것 같다.






신났다. 물 만난 고기처럼..











나도 설국의 한가운데로 끼어들었다.





참 여유로운 산행이다.

가다가 쉬다가, 어느 한 곳 눈길 가지 않은 곳이 

없지만.. 쉴만한 곳에서는 가던 길 멈추고 설중환담.. 

진한 해어(諧語)는 눈을 녹일 듯,

겨울잠 자는 토끼도 깨울 듯.. 깔깔깔~







점입가경(漸入佳境)


고도를 높일수록 설경이 더해진다.

주 능선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점점 기대가 커진다.







이 얼마나 장렬한 모습인가!

눈바람에 맞서 몸 전체로 피우는 꽃, 설목(雪木)

이렇게 북풍한설과 맞서면서 뿌리는 더 깊게 내려

꽃 피울 봄날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만상의 생성법칙은 버팀목으로 자리 지키며 

자기 몫을 다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슨 말이 필요할까!

묵언 수행하듯 소백의 칼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순례자 같이 묵묵히 소백 능선을 넘는다.

겨울은 추워야 겨울이고,

소백산은 하얀 눈으로 덮이고

칼바람이 불어야 소백 아닌가!

소백을 온몸으로 제대로 느낀다.









그럼 그렇지, 과연 이 모습이다.

능선에 올라서니 소백산은 본색을 드러내었다.

그러잖아도 어지러운 세상에서 휘청거렸는데

소백산 칼바람이 산 아래로 날려버릴 태세다.

이럴수록 중심 제대로 잡고 정신 차려야 산다.

담금질하듯, 소백산 칼바람 맞고 정신 번쩍 들어야

 혼란한 세상 그나마 살아내지..











소백산 최고봉 비로봉(1439m)


충북 단양 가곡면과 경북 영주 순흥면, 봉화 물야면에 걸쳐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백두대간 상에 있는 소백산은 원래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에서 유래된 백산(白山), 큰 백산(태백산)에

이어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소백산의 유래라고 한다.

소백산은 주봉 비로봉을 비롯하여 국망봉(1,421m), 제2연화봉(1,357m),

연화봉(1,314m) 등 고만고만한 많은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백두대간을 분수령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남한강에 합류하여

한강이 되고, 남쪽으로 갈린 물은 낙동강에 합류된다.


예로부터 소백산으로 삼국 시대에는 신라·백제·고구려

삼국의 경계를 이루어 수많은 역사적 애환과 문화유산이 전해진다.

소백산의 역사는 계립령(하늘재)에 이어 신라초 158년(아달라왕 5)에

 열린 죽령(689m)과 함께한다. 고구려가 신라방면에 세력을 펼칠 때도

광개토왕은 소백산 죽령은 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통일신라 때

9주 5소경 중 금관소경을 제외한 4소경이 모두 백두대간의 외곽지역에

설치되었는데 죽령은 신라로 통하는 중요 교통요충지였다.

1987년 12월 소백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산에서 찍는 사진 중

겨울 비로봉에서 사진 찍는 것이 제일 고역 아닐까?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칼바람과 살을 에일듯한 추위는

3초 5초면 손가락을 곧게 하여 셔트를 누르기도 힘들고..

배터리 기능도 급속하게 떨어뜨리니 말이다.


비로봉 정상에서 무대책의 한 가족을 만났다.

50대 후반의 아버지와 아들과 딸과 딸의 친구..

겨울 산행 채비를 전혀 하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온 것이다.

등산화는 물론 방풍의나 버프, 심지어 장갑도 끼지 않고..

물론 비로사 방향에서 올라왔다니 겨울 소백산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으나 정상부는 다르다.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정상 인증 사진을 찍어주고는 쫓듯 얼른 내려보냈다.

겨울산에 준비 없이 오르면 큰일 날 수 있다.







그대에게 가는 길은 발 시립니다
지워버린 오솔길
다가오지마라는 숫눈을 밟아
걷고 걷다보면, 또 눈은 내리고
언젠가는 산벚꽃 하얀 꽃눈도 내리고
그때는 시린 발을 잊을 겁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있는

권경업 시인의 '겨울산'이 떠올랐다.






주목감시초소 가는 길..





주목감시초소

이름은 주목감시초소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피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겨울 소백산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소백산에

대피소가 있어야 할 위치는 바로 죽령이 턱 밑인

연화2봉이 아니라 이곳이라 생각된다.







설경에 취해 마냥 들뜬 걸음

매서운 칼바람도 잠시 잠든 눈꽃 터널, 하얀 겨울 

눈꽃 같은 이야기가 쌓여간다 










산릉선 설한풍에 빈가지도 꽃을 피웠는데

겨울잠에 든 설산의 짐승들은 곤히 떨어져 꿈을 꾸는지 

북풍한설의 외침에도 기척 없고, 아랑곳하지 않는다.

칼바람 맞은 산객들의 발걸음만 바쁘다.












바람 부네 바람 불어, 바람 불어 좋은 날

소백산 하얀 능선에서 칼바람 맞네






산은 비우는 곳이다. 

특히 겨울 산은 더 그러하다.

삶의 기쁨과 슬픔은 모두 산 아래에 있다.

산 위에서와같이 자신을 버림으로써 모든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구름이 옅어지면서 앞 능선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천막을 걷듯 바람이 구름을 확 걷어 버리고 파란 하늘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지만 구름이 너무 두꺼운 것 같다.

더 이상을 바라면 욕심이겠지..





연화봉 2.0km를 가르키는 이정표.

이정표가 그렇듯 사람도 제 분수를 알고

제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아름답다.















같은 마음이다. 그냥 갈 수가 없다.

이 동화같은 설국의 일부이고 싶다.






연화봉에서,

묵묵히 산을 지키고 있는 정상석과..






소백산천문대를 지나면서는 임도지만

발목이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다. 지루한 길이지만

마치 강아지가 눈 만난 듯 모두 신나게 걷는다.

눈길이 그저 좋다.





어느새 연화2봉 대피소 턱밑까지 왔다.

오늘따라 대피소가 왜 저렇게 높은 곳에 있냐 싶다. 

황홀한 눈길과 매서운 칼바람은 배낭 속 간식을

꺼낼 여유마저 주지 않은 탓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연화2대피소

오늘 모두 힘든 산행을 한 것 같다. 산길은 정상직전이

힘든데 오늘은 대피소 오르는 길이 제일 힘든 것 같다.

하긴, 연화2봉 대피소는 정상에 있긴 하다.





풍성한 만찬으로 대피소의 밤을 맞고

새벽 5시부터 부산떨며 하산 준비를 하여

동이 트기 전에 대피소를 출발하였다. 풍기역에서 

10시 23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탐방지원센터에서 한 컷..






죽령, 소백산국립공원 죽령분소


풍기역으로 가려고 택시를 부르는데 연결이 안 된다.

한참 만에 단양에서 택시가 왔다. 기사님은 풍기까지 갔다가

다시 단양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택시비가 많이 나온다며,

풍기역보다 단양역으로 가는 것이 택시비도 싸고 

편리하니 다음에는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해가 뜨는 모양이다.

오늘은 파란 하늘에 하얀 눈꽃이 환상적일 것 같다.

하루 더 머물다 가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만, 어제 눈길을 

걸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기대 이상의 덤이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보여 줄 만큼만 보여준다.

더 바라면 그건 욕심이다.





영주시 풍기읍은
신라 때에는 기목진(基木鎭)이라 하다가

고려 초에 기주현(基州縣)으로, 1018년(현종 9) 길주(吉州:安東)에

속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2)에는 은풍현(殷豊縣)을 병합하였다.

1413년(태종 13) 기천현(基川縣)으로 고쳤다가 그 후 문종왕의 태(胎)를

은풍 명봉산에 매안(埋安)함에 따라 은풍의 풍(豊)자와 기천의 기(基)자를

따서 풍기(豊基)라 하고 현을 군으로 승격 시켜 군수를 두었다.

1914년 영주군에 통합되었으며, 1973년 풍기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80년 영주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영풍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개편에 따라 영주시에 속하게 되었다.


 아침은 '칠백식당(054-636-5601)'에서..

택시비를 더 주고 풍기로 온 대장의 깊은 뜻이 

있었다. 식당은 꾸밈없는 시골집 그대로 수수했지만 

음식은 푸짐하고 맛이 일품이었다. 순두부와 인삼돼지주물럭, 

돼지주물럭을 그렇게 맛있게 먹은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고.. 그기에 주인의 후덕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런 맛집은 

소개해도 부담이 없을 것 같다.







오는 날이 장날, 풍기 장날이다.

풍기의 특산물은 인삼, 그리고 매스컴을 장식했던

그 유명한 동양대학교도 풍기에 있었다.







풍기역에서 도솔봉과 소백산천문대도 당겨보고




풍기역에서 만난 베트남 청년..

집에 다니러 간다는 베트남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

소백산 데크 놓는 일도 했다고 하고, 박항서 감독이 오성이라며 

엄지를 치켜들기도 했다. 참 순수해 보였다. 짐이 많아서 일행이 

열차에 실어 주었더니 고마웠던지 찾아와서 과자 2봉지를 떠맡기듯 

건넨다. 탈 때와는 달리 선글라스를 이마에 걸치며 한껏 멋 부린

모습으로.. 가족 만나러 가는 길이니 왜 아니 즐겁겠는가!

바라고 한 일 아니지만,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모습이

정겹고 좋다. 별것도 아닌데.. 오는 길 내내 열차가 훈훈했다.

올해는 시작부터 이래저래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의 연속..

어느새 태화강역이다.


주니 대장과 김대장 수고에 

감사한 마음과 함께한 산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