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50코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통일전망대) 더 갈 길이 없다. 통일을 염원하며

2020. 1. 6. 23:11길따라 바람따라/해파랑길



더 갈 길이 없다. 통일을 염원하며..

해파랑길

50코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명파해변-제진검문소-통일전망대

12.7km(차량이동거리 포함) / 09:40~14:05 (4:35)


2019. 12. 21(토) 맑음, 10





해파랑길 50코스는 부산 이기대에서

출발하여 줄곧 북으로 향하던 길의 마지막 구간.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서 시작하여 동해안 최북단

명파해변과 제진검문소를 지나 금강산과 해금강 지역,

남북이 대치하고 DMZ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길. 제진검문소까지는 도보를 이용하나 이후부터

통일전망대까지는 도보 이용금지로 차량을 이용하는 구간.

DMZ 구간으로 불행한 역사와 통일 의지를 키우며

걸어야 하는 안타깝고 가슴 아픈 길.






수뭇개 바위 일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수뭇개 바위를 찾았다.

구름에 살짝 가린 오메가.. 그래도 이게 어딘가!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출입신고소에서 명파리(제진검문소)까지는 걷고

이어 제진검문소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방법이 안 되니 과정이 복잡하다.

제진검문소까지 걷고, 출입국신고소로 돌아와 차량으로

통일전망대로 가든지, 아니면 통일전망대를 먼저 갔다

온 후 명파리까지 걷는 방법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한다.


명파리에서 13:56에 출발하는 버스에 맞춰

먼저 통일전망대에 들린 후, 출입신고소로 돌아와

명파리까지 걸은 후 명파리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나오기로 했다.






해파랑길 50코스 통일전망대 종합안내판 앞에서.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차량 이동 시간은 채 10분도 안 걸렸다.









통일전망대






송도와 해금강이 지척이다.

군사분계선은 송도를 지난다.


비무장지대는 1953년 7월 맺어진 정전협정에 의해

설정된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 군사분계선은

155마일의 길이로 한반도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이 군사분계선에서 남으로 2km 떨어진 선이 남방한계선이며,

북으로 2km 떨어진 선이 북방한계선이다.
비무장지대는 남방한계선에서부터 북방한계선 사이의

지역으로서, 남북 간의 적대행위 및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해

설치된 완충지대이다. 남방한계선으로부터 5∼20㎞ 밖에

민간인 통제선이 설정되고 있으며, 민통선에서

남방한계선까지의 지역을 민간인 통제구역이라고 한다.

휴전 협정에 의해 설정돼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되고 있는

비무장지대와는 구분된다.







금강산과 DMZ, 남북방한계선..

산봉우리에 있는 남북의 GP들


하루빨리 총부리를 겨누는 대치를 끝내고,

휴전선도 허물어 우리의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해방되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기원해 본다.






휴전선 저게 뭔데..

국토의 허리를 자른 휴전선이 뭔데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저 휴전선을 넘을 수 없단 말인가!

휴전선을 걷고 하루 빨리 남북이 왕래하는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

자유로이 철조망을 넘나드는 새들이 마냥 부럽다.

정치가 뭘까? 이념이 뭘까?





이전의 통일전망대







망배단, 성모상, 조국통일선언문..





금강산으로 달려가야지 여기서 뭐 하냐?





이제 DMZ 평화의 길, 평화누리길도 걸어야 할 것 같다.




통일전망대에서 돌아오는 길에

DMZ박물관 에 들렸다.




베를린 장벽(Berlin Wall)

H 366cm x W 126cm  x L 212cm, W 2.5ton


옛 동독이 서베를린을 봉쇄하기 위해 쌓은

콘크리트 담장으로, 동서 냉전과 독일 분단을 상징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차례로 철거되고

일부는 기념으로 남겨져 있다.


1990년 21개국 118명의 화가는 장벽 붕괴를

기념하여 장벽 동쪽 1.3km 구간의 벽면을 캔버스 삼아

자유와 평화, 희망의 메시지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106점의 대형 벽화로 꾸며진 장벽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East Side Gallery)라고 불린다. 전시된 베를린 장벽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프로젝트의 참여 작가

카니 알라비와 카스라 알라비 형제의 작품이다.


카니 알리비는

장벽 붕괴당시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얼굴에 어린 기대와 걱정, 희망에 찬 모습을,

카스라 알리비는

혼란한 현실의 토네이도에서

탈출하여 희망찬 미래로의 비상을 나타내었다.






DMZ 박물관은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만 존재하는

DMZ를 소재로 하는 전문박물관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남북분단 상태에 있기 때문에 비무장지대인

 DMZ가 설치되어 있고, 세계에서는 최초로 세워졌다.

박물관 구성은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시관과

비무장지대의 형성 과정, 북한의 대남전단 살포 등에

관한 내용,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남북통일과 평화에

대한 주제를 통해서 전시하고 있다.



















노동당사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등록문화재 제22호, 2002.5.31 등록)

1946년 초 공산 치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노력 동원과 모금에

의해 지어진 러시아식 건물이다.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로 현재 안보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1945. 2. 4 얄타회담 - 4개국의 독일 분할점령 계획 확인                                                     

                                                                       1945. 5. 8 유럽전쟁 종결 - 독일의 무조건 항복         

                                                                       1945. 7.17 포츠담 회담 - 독일 관리에 관한 기본 원칙

                                               (탈 나치화, 탈 군사화, 지방분권화)에 합의

                      1948. 3. 6 소련 연합국 감독위원회 탈퇴 - 4대국의 독일 공동관리 체제 종료

       1948. 6.24 베를린 봉쇄 - 소련의 서베를린지역 육로와 수로 봉쇄 

                  1949. 5.12 베를린 봉쇄 해제 - 베를린 봉쇄 종료에 관한 4대국 협정 체결 

    1949. 5.23 서독건국 - 서독 기본법 공포, 독일연방공화국 건국 

1949.10. 7 동독건국 - 통일민주공화국 건국, 소련의 승인     

           1953. 6.17 동베를린 봉기 - 272개 도시와 마을로 확산, 소련군 진압  

1955. 5. 9 군사대립 - 서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1955. 5.15 군사대립 - 동독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가입 

                   1961. 8.13 베를린 장벽 설치 - 장벽과 소련은 동독 공산정권의 보루 역할 





승일교는

남북한이 시차를 두고 완성한 남북합작의 다리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6호로 1948년 8월 북한은

군사적 연결로로 사용하기 위하여 ‘노력공작대’라는 이름으로

지역주민들을 동원하여 기초공사를 하고, 그 후 남쪽이 1958년 12월에

미완성된 부분을 완공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합해 ‘승일교’라고 이름을 붙였다 전해지고 있다. 또 6·25전쟁 당시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중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고 박승일(朴昇日)

대령의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승일교'로 명명했다는 설도 있다.

한탄강 승일교는 다리 미학의 백미'로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가교임을 상징성 있게 연출하였다.





대북방송 장비

2004. 6월 15일 남북장성급 군사 회담 합의 결과에 따라

철거된 대북선전용 방송장비 8종 16세트를 전시하고 있다.




이제는 50코스 도보 구간을 걷기 위해

다시 통일전망대 출입국신고소로..






출입신고소 주차장에 애마를 주차하고

50코스 도보 구간을 걷기 위해 명파리로 출발한다.

300~400m 정도 도로 가장자리로 걷다가





여기서부터는 관동팔경 녹색경관길과 함께간다.






이어 나무 계단으로 산으로 든다.

명파해변까지 4km는 계속 산길이다.







낙엽쌓인 수더분한 길이 이어진다.





산길에는 중간중간 쉼터도 있고,

걷기가 편할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







잠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기도 한다.







숲 사이로 제진검문소가 보이는 것을

보니 거의 다 온 것 같다.





왼쪽 이정표를 보지 못하고 직진하였더니

부대 정문이다. 부대 주변에 길이 안 보여 이쪽저쪽으로

길이 있나 살피고 있는데 앳된 군인 한 명이 나오더니

"민간인은 여기로 오시면 안 됩니다. 통제구역입니다."

돌아 나오니 명파해변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조금 진행하니 명파리가 왼쪽에 나타났다.





세 시간 전에 통과했던 제진검문소를 당겨본다.







명파해변 가는 길에 행사 요원인듯한

건장한 사람들이 보인다. 오늘과 내일 이틀동안

크리스마스 축제를 하는데 아이돌 그룹이

올 정도로 크게 하는 것 같다.







명파해변에 들렸다가





점심을 먹으러 상인들이 하는 음식점이 아닌

명파리 부녀회에서 하는 간이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아마추어여서 그런지 아직 전도 덜 펴고 우왕좌왕(?)..

우리가 첫 손님인데 음식 가격도 얼마를 받아야 할지

정해지지 않은 듯하다. 동지 하루 전이라 팥죽을 시켰는데

순 우리 쌀, 팥이라 자랑.. 맛은 있다. 어묵까지 먹고

간단히 점심 해결.. 오늘 마수가 좋아

장사가 잘될 것이다









여긴 또 대형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축제장과는 별개로 동네에도 큰 전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과 내일 행사라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려나

동네 규모에 비해서는 상당히 큰 행사 같다.






명파 버스 회차 지점에서 30여 분 기다려

13시 56분 명파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 기사에게 인제 쪽 도로 사정을 물으니 "아마도 길이

얼어 있겠죠." 하여 실망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가기가

아쉬워 주유소에서 기름 넣으며 주유소 사장님에게 물으니

기온이 영상이어서 얼었던 길도 다 녹았을 것이라 한다.

그래 생각했던 대로 진부령 넘어 인제 용대리, 한계리.. 

설악 외곽을 돌아 한계령으로 나와 보자.









진부령,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아주 낯설다.





눈발이 날린다.

큰 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빠져나가는 동안 길도 얼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이 귀한 남부 사람들은 눈길 빙판길 운전은 젬병이다.

제발 한계령을 넘어갈 때까지 큰 눈이 안 왔으면..

문정희 시인의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로 시작되는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좋아했는데,

현실은.. 눈이 몰려올까 봐 겁이 난다.








장신리 용바위 고드름

아직 절정은 아니지만 장관이다.





쌓이지는 않아도 눈발이 제법 창을 때린다.








큰 눈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다행이다.

이런 곳에서는 차를 세우고 절경을 감상하면서 가야지

얼마 만에 들어온 설악인데..







장수대에서도 잠시 쉬며..












진부령같이 한계령이 낯설다.

사실, 한계령을 낮에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한계령







동해휴게소





나의 꿈은 비행이었다.

나의 꿈은 여행이었다.



지난 5월 22일

부산 이기대를 출발하여 12월 21일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면서 대장정은 끝이 났다. 770km, 22회 출정하여 36일을 걸었다.

비를 맞으며 걷기도 하였고, 폭염에 지쳐 가던 길을 멈춘 일도 있으며,

물 폭탄을 맞아 사라진 산길을 걷기도 했고, 해가 저물어 밤길을 걷기도 했다.

산길보다는 쉬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지만 아스팔트 길에 발이 부르터

걸을 수 없어 중단한 적도 있고, 발바닥에 테이핑하고 걷기도 했다.

누가 가라고 한 길이 아니기에 혼자 극복하며 이겨낼 수밖에 없었던 인고의 길.

힘든 여정이었지만 걸을 수 있어 행복했고, 새벽에 일출을 맞는 환희와 늦은 밤

항구의 야경을 담는 재미는 또 다른 낙이었다. 때로는 야영을 하고, 차박을 하면서

경비는 줄였지만, 울산에서 울진을 넘어 강원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동 거리가

멀어 출발 시각이 점점 당겨지고, 동지를 향해 가는 날은 걷는 시간을 점점 줄여

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자동차를 회수하기 위해 일찍 종료해도 대중교통

연결이 되지 않아 많은 시간을 지체해야 했던 어려움도 있었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우리 땅도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고

감탄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동해안에 그렇게 많은 백사장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망상해변, 송정해변, 낙산해변, 기성망양해변..

그렇게 넓고 고운 긴 해변, 아름다운 해변있는 줄 몰랐다.

영랑호, 화진포를 비롯한 석호들은 얼마나 아름다웠으며, 청초호

 설악대교 위에서 마주한 설악산은 또 얼마나 장관이었는지..

해파랑길에서 만난 월송정, 망양정, 죽서루, 경포대, 청간정 등

관동팔경을 들릴 수 있었던 것은 여행의 별미였다.

반면, 군사분계선 너머 지척인 땅을 갈 수 없다는

절망감은 통일 열망을 불타게 했다.


해파랑길은 지자체에 따라

리본 방향 표지기 하나도 정성스럽게 부착하여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하는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GPX 트랙을 이용하지 않으면 길을 찾아가지 못할 정도로

무성의하게 관리하는 곳도 있었다. 아름다운 길도 무성의한

길 안내표시가 기분을 언짢게 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자연도 보전하지 않으면

쓰레기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실감 났다. 

해안에 밀려온 산더미 같은 쓰레기, 피서객, 유람객들이

버린 쓰레기들은 우리가 지구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했으며, 이 땅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데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북쪽으로 갈수록

 같은 듯하면서 조금씩 다른 항구와 어촌 풍경들..,

산줄기는 말과 풍습과 문화를 가르지만 강과 바다는

교류하며 전파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환경,

다양한 삶의 현장, 치열한 삶의 모습.. 틀린 것은 없다.

나와 조금 다를 뿐이다. 길 위의 학교인 여행만큼 편견을

깨는데 효과적인 것은 없다. 국토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느끼며 더 큰 애정을 가지게 한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신 분들과 길 위에서

만난 분들, 도중에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