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19구간 (오도재에서 석거리재까지)

2009. 8. 28. 00:13山情無限/호남정맥(完)



호남정맥 19구간 (오도재에서 석거리재까지)



○ 산행일자 : 2009. 8. 22(토) 04:00 ~ 14:30 (10시간 30분)
○ 산행날씨 : 쾌청, 폭염주의보
○ 참석인원 : 울산원조산악회 호남정맥종주대 14명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21.5㎞         누적거리 : 305.8km (362.4km)
○ 산행코스 : 오도재-방장산-주월산-무남이재-571.1봉-모암재-존제산-주랫재-485.5봉-석거리재
○ 소 재 지 : 전남 보성군 득량면, 겸백면, 벌교읍, 율어면 / 순천시 외서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23:15            신복로타리

03:00            오도재 도착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4:00            오도재 출발

04:23            355.5봉

05:15~20         주월산(557m)

06:48            무남이재

07:20            광대코재

08:15            모암재

09:09            존제산(703.8m)

10:45~11:21      주랫재

12:15            485.5봉

14:30            석거리재

③ 복귀

14:30~15:00      석거리재 / 산행뒷풀이

19:30            울산 도착



이번 구간 순천땅에 들어서는데 선답자의 산행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마의 잡목숲이 아연 긴장시키는 구간으로
여름을 피해서 가면 좋으련만 여름 한 가운데서 부닥쳤다.
그기에다 지난구간 폭염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산행하느라
기진맥진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에도 폭염주의보가 내렸으니
이런걸 설상가상(雪上加霜), 화상유급(火上油給)이라 하는가?
하지만 어떤 역사가 땀과 고통없이 그저 이뤄진적 있으며
또 그렇지 않은가? 힘들고 어렵게 이룬 일일수록 보람과
성취감이 더 커다는 것을... 누가 대신 가 줄 수 없는 길.
집을 나선다. 누가, 무엇이 이 길을 가게 하는가?

이번 구간이 무박으로 변경되어 혹시 빠지는 대원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다. 제일 많을 때는 35명까지 되었는데
6구간을 남긴 오늘은 출정인원이 제일 단촐한 14명이다.
정맥길도 정작 넘어야 할 것은 산보다 자기자신인 것 같다.
접선장소 신복로타리로 나가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다.





(03:50, 들머리 오도재(五道峙 /140m))

보성군 겸백면과 득량면의 경계로 845번 지방도가 지난다.
3시에 도착하여 차안에서 추어탕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산행채비를 하여 차에서 내리니 주위는 칠흙같이 어두운데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듯 초롱초롱하다. 보석이 빛나듯한
별을 보고도 좋아라 할 수만 없는 것은 지난 구간에서
더위에 얼마나 혼쭐이 났는지 오늘도 예보된 폭염주의보가
신경쓰였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별이 반짝이니 좋다.





(처음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른 355.5봉)

20여 분 남쪽으로 가다 동쪽으로 방향을 트는 335.5봉에
올랐다. 어둠속 조망도 없이 랜턴불빛만 의지하여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데 헤드랜턴 불빛이 흐릿하다. 곧 배터리가
나갈 것 같아 헤드랜턴 불빛이 강한 명산 김승곤님 앞에 섰다.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선두가 되어 강행군을 한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1시간 반은 가야하는데...





(파청재 / 280m)

능선에 올라서면 벌써 가을기운을 느낄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폭이 넓은 비포장도로
파정치에는 간단한 체육시설까지 있다.





(호동마을과 수남마을을 연결하는 약수사거리)





(방장산 정상의 통신탑)

정상까지는 가파르기는 해도 차량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잘 닦여진 임도가 나 있다. 급비탈에는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데
방장산 정상에 있는 통신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길인 것 같다.





(방장산 전망대에서 득량만쪽 전경, 신새벽이 밝아 온다)

정상에는 KBS 방장산중계소가 있고, 득량만을 조망할 수 있게
설치해 놓은 멋진 조망대에서 한참동안 사진도 찍고 조망을 즐긴다.
완만한 능선 저쪽 어둠속에 우뚝솟아 보이는 산이 주월산인가 보다.
방장산부터는 왼쪽은 겸백면을 그대로 이어가지만
오른쪽은 득량면에서 조성면으로 바톤을 넘긴다.





(방장산(方丈山 535.9m △복내23) 정상의 삼각점과 정상석)





(산들이 눈 비비고 일어나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니 산줄기가 되고..)







(일출,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모습은 멋진데...)





(주월산을 오르면서, 지나온 방장산을 뒤돌아 보며...)







(주월산(舟越山 558), 주월산 정상석)

주월산도 낙남정맥의 여항산같이 배가 넘나든 산이란
뜻같은데 이 지역은 물과 관련있는 지명이 많은 것 같다.
배가 넘다가 걸렸다는 배거리재도 있고
물이 넘던(무넘이) 고개라는 무남이재도 있다.









(주월산 조망, 일망무제 거칠 것이없다)





(주월산 정상에서 해맞이하는 선두)





(겸백면 남양리 방향의 운해)





(발걸음이 쉬이 안 떨어져 다시 한번 당겨보고...)





(잡목 우거진 능선너머 악명높은 존제산이 지켜보고 있는듯..)

얼마전까지 많은 산꾼들이 건너뛰었다는 존제산이 다가온다.
기어서라도 오르면 못 오를리 없겠지만 그 악명높은 잡목숲이
좀 봐주려나. 키 큰 사람은 더 골탕먹인다던데...





(사진 한 장찍는 사이 일행은 벌써...)

부드럽던 능선이 갑자기 봉우리 하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렇찮아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선두에 붙는 바람에
오버페이스가 되었는데... 야생화를 찍겠다고 카메라를 갖다내니
조금 전까지 가만히 있던 녀석이 춤을 춘다. 바람이 불어 좋지만
이쁜 녀석 한번 잘 찍어 보려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갈 길 바쁜
종주꾼을 붙잡고 같이 놀자하니 마음만 조급해진다.
씨름하는 사이 일행은 벌써 꼭대기에 올라서고 있으니..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는 무남이재)







(조성면 중촌마을과 겸백면 원수암 마을을 잇는 무남이재 / 340m)

광대코재와 주월산 안내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대형 등산안내 지도와 벤치인지 탁자인지 용도를 모를
원형 시설물이 설치되어있다. 산마루에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는데 대중교통은 연결이 안되는 것 같다.





(무남이재에서 선두를 먼저 보내고...)

2시간 40분만에 8.4km를 걸었으니 제법 강행군이었다.
컨디션이 아직 정상은 아닌 것 같아 힘이 부친다.
내 페이스로 가야겠다고 선두를 먼저 보냈는데...

선두와의 작별이 선두와는 점점 간격이 멀어지고,
후미는 너무 뒤처져 여기서부터 존제산 지나 주랫재까지
오늘 구간의 거의 반에 해당되는 거리를 홀로 걷게된다.
무남이재에서 존제산 정상까지 5.1km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구간 악명높은 잡목숲이 기다리고 있는 길을 말이다.





(광대코재, 호남정맥은 우측으로 꺾어간다)

초암산과 호남정맥 갈림길인 광대코재까지 오르는 길도
만만찮게 가파르다. 좌측 초암산으로 가는 길은 선명한데
호남정맥길은 수줍어 그러는지, 숨박꼭질을 하자는 건지
풀숲에 숨어버려 길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
이제부터 고난과 고통의 시작이다.





(~골 자욱한 운해, 점점 더 피어 오른다)





(여기서부터 존제산 정상까지는 고통스런 잡목구간)

호남정맥은 여름을 피해서 가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도
이 구간 때문이 아닐까? 지금까지 지나온 구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을 헤쳐나가기 힘든 구간이다.
대간과 정맥종주 4년을 통틀어도 마찬가지다.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 같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숲인가? 길이 안 보인다)







(풀숲도 발길을 잡고, 조망도 발길을 붙잡아 잠시 숨을 돌린다)





(갈길이 바빠도 절굿대가 방긋웃으며 인사 하는데...)





(처음에는 그나마 가슴팍까지 밖에 오지않았는데..)





(雪上加霜, 점점 키를 키우던 풀숲은 이제 내 키를 훨씬 넘어 버렸다)





(잡목숲 길이 힘드냐며 이쁜 원추리가 응원을 하니.. 덕분에 힘이 난다.)





(우뚝한 바위위에라도 올라서면 사방 거칠 것 없는 일급전망대)





(무슨 꽃?)





(고독)





(점점 키를 세우며 다가서는 존제산, 그 힘든 오름길이...)





('이별'이란 꽃말을 가진 참취)

8~10월 구절초 쑥부쟁이가 필 즈음에 자잘한 단추 모양의
흰꽃 수십송이가 모여서 구름처럼 피어나는 모습이 아름다워 좋아하는 꽃.
쑥만큼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풀꽃. 취나물을 많이 먹으면
이뇨 해소, 방광염 등에도 좋은 약효를 보인다고 한다.
반찬으로 먹고 약으로 먹는 우리 산채 중 으뜸으로 요즘은
밭에 특용작물로 재배하여 대량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유재라고도 하는 모암재)

벌교읍 옥전리에서 율어면 선암리로 넘는 이 고개는
임도수준의 비포장도인데 벌교쪽에서는 길을 내느라
굉음을 내고 있다. 많은 종주꾼들이 호남정맥중 유일하게
건너뛴 구간이 이곳 모암재에서 주랫재 구간으로 군사보호구역이
해제되었다고 해도 그 오름길은 변함이 없다.

합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지금부터
말 그대로, 孤軍奮鬪! 惡戰苦鬪!가 시작된다.
조금전 지나온 길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정작 힘든 곳은 사진에 담지도 못하고...)

모암재에서 존제산에 발을 딛는 첨부터 헤쳐나가기가
보통 힘든게 아니다. 일념! 생각은 오로지 생지옥 같은
여기를 언제 벗어나나 하는 것뿐.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지리산 조릿대숲이 힘들다 해도 날씬한 대나무는 신사다.
대나무는 터널을 만들어 고개만 숙이면 그대로 보내주는데
여기는 구부려도 잡목 가지가 옆에서 잡고 위에서 걸고 당겨
가파른 오르막을 고통스럽게 기다시피 오른다.
가끔씩 하늘이 트이면 작열하는 태양도 상관없이 좋다.
숨통이 트인다. 마치 해녀가 물 위로 고개 내밀듯...
그렇게 존제산을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철쭉나무와 풀이 뒤엉킨 숲 여기저기에 서 있는 경고판)





(첫번째 철조망을 통과하고,)





(타이어를 쌓아 만든 참호를 따라 한참을 오르니..)





(두번째, 이번에는 원형철조망이 나타났다)





(이고들빼기)





(존제산(尊帝山) 정상 직전에 또 나타난 위험지대 경고판과 안내문)

높이 703m. 보성군에서 두번째로 높은 보성의 진산
존제산은 벌교읍, 조성면, 율어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고려 충렬왕 때부터 이름이 불리워 왔고, 제암산을 향해
읖조린 산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존제산 정상에서는 보성, 장흥, 순천 등 인근지역이
손금보듯 훤히 보여 예부터 군사적으로도 요충지가 되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 많은 민중이 피를 흘리며 스러져간
전쟁터로 얼마전까지는 정상을 군부대가 장악하고 있어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곳이다,





(굳게 닫힌 철문을 우측으로 돌아 간신히 빠져나가니)





(이번에는 두 겹의 진짜 철조망... 조심조심 통과한다)





(전쟁과 평화, 전쟁터에 핀 노란민들레)





(둥근이질풀)





(작열하는 태양, 나무그늘에서 잠시 쉬었다가...)

존제산을 오르면서 잡목숲에서의 사투와 그 이후
철조망 통과하면서의 긴장이 풀리니 갑자기 햇살이
따가워 길 옆 그늘에 주저앉아 쉼을 가진다.

여기서부터 주랫재까지는 작전도로를 따라 가는데
산행지도상에는 4km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시간
가까이 지루하게 걸어야 하는 7.2km나 되었다.





(군위병소를 지나,)

군부대가 철수를 하여 시설물들이 낡고 을씨년한데
아직도 완전히 철수를 한 것 같지는 않다.





(무슨 꽃?)





(요즘 산길에서 반갑게 맞는 때죽나무 열매)

때죽나무는 열매와 잎에 마취성분(에코사포닌)이 강해서
열매 껍질을 빻아 물에 풀면 물고기가 떼로 죽는다고 해서
때죽나무라 하기도 하고 나뭇결이 꺼칠꺼칠하여
때가 죽죽 밀리는 것 같다하여 때죽나무라 부른다.

열매는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나무는 기구재, 가공재 등으로 쓰인다.
한국(중부 이남) 일본, 필리핀,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세계에 약 120여 종이 서식하는데 한국산 때죽나무가
추위에 가장 강하다고 하군요.





(반가운 '세월' 시그널, 백장미님이 참 높게도 잘 달아 놓았다)

군사보호구역이어서 시그널도 떼어버려 잘 보이지 않는데
백장미님이 달아 놓은 '세월' 시그널은 얼마나 높은데 달려
있는지 시그널을 일부러 떼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백장미님을 만난듯, 세월님들을 만난듯 반갑다.
가도가도 끝없는 뙤약볕 길을 터벅터벅 외로이 걷는데
오래된 친구가 소문없이 나타나 반기는듯..





(강아지풀)





(임도길 20리, 처음엔 그나마 그늘이 조금 있었지만...)





(작열하는 태양, 달아오른 임도의 복사열... 그림자마저 더워 보인다)







(누리장나무와 물봉선)





(군사보호시설을 벗어나고서도 얼마나 걸었는지...)

존제산에서 주랫재까지는 지형도상에 4km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7.2km(근무중인 운전병에게 확인). 군사보호구역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바람에 존제산 아래 모암재에서 주랫재까지는
건너뛰거나 존제산을 에둘러 다녔다고 한다.

몇 년전부터 출입금지통제가 풀린 이후에도 종주자들이
이 구간을 역주행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주랫재에서
작전도로를 따라 올라오면서 고도를 높이면 힘도 덜 들고,
특히 존재산 가파른 잡목숲도 내려가게 되니까
체력의 부담도 줄일 수 있기 때문...





(88)





(주랫재(356m), 팔각정)

벌교에서 율어로 넘는 895번 지방도가 지나는데 고갯마루에는
팔각정과 태백산맥을 기념하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시원한 팔각정에서 30분 넘게 푹 쉬면서 먹다 만
빵과 미숫가루로 점심을 때우며 체력을 회복하고는
산사나이 대장과 천사님과 함께 뙤약볕을 맞으며
날머리 석거리재를 향하여 또 산으로 든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비)

여기서 잠깐 "태백산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감명깊게 읽은 소설이긴 하지만
"태백산맥"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결론적으로 "태백산맥은 없다. 날조된 허구다"

일제하 고또 분지로(小藤文次郞)라는 일본 지질학자가 1900년대 초
자원수탈을 위해 우리나라의 지질조사를 하고는 지질개념을 지형개념인
산맥으로 둔갑시켜 발표한 것을 지금까지도 불변의 진리, 금과옥조인냥
100년 가까이 가르쳐 일제가 우리 민족정기 말살정책으로 완전히 단절시키려
했던 백두대간과 정맥 대신 산맥개념이 아무 비판없이 자리잡아 왔는데
80년대초 지리학자 이우형 선생이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서 1800년대 초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우리나라 옛 지리서인 『산경표(山經表)』를
발견하면서 산맥개념이 허구인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이후 이우형 선생의 노력으로
산경표(백두대간과 정맥이 지나는 산들의 족보)의 정확성이 확인되고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을 답사하고, 백두대간 종주붐이 일면서
일반 국민들도 많이 알게 되었지만 여태까지 산맥을 우려먹고 살아온
학자들의 무책임과 학자적 양심과 용기부족으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아직도 교과서에는 산맥이 그대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나마 백두대간이 비집고 들어가 나란히 소개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일. 이미 진실은 밝혀졌다.
대동여지도와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라
산줄기(대간과 정맥)가 얼마나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태백산맥이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까지 가는지 아는 사람있는가?
차령산맥과 노령산맥은 산맥이 왜 평택평야, 예당평야, 호남평야를
가로지르고 남한강, 영산강과 수 많은 계곡과 시내를 건너 가는가?
책 쓰는 사람마다 제 각각으로 선 주욱 그어놓고 무슨 무슨 산맥했지만
(어떤 지도는 줄도없이 "XX산맥" 글자 네 자만 써 놓고) 그 방향이나
길이가 각각이니 시작과 끝이 있겠는가? 있대도 같겠는가?

백두대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백두산 장군봉까지
물을 한번도 건너지 않고 산줄기로 이어져 있으며,
낙동정맥은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서 강원도 태백 매봉산 아래
1060봉까지 1000리길 낙동강 동쪽의 울이 되어 낙동강을 만든다.
호남정맥은 광양 백운산에서 장수 영취산까지 물을 가르며 이어간다.
산경표에 따라 이어가면 누가 그려도 똑같을 수 밖에 없고,
그 산줄기들은 어김없이 계곡과 시내를 모아 강을 만든다.
지도에다 백두대간과 정맥과 지맥과 기맥과 분맥과 단맥을
이으면 그 사이는 계곡이 되고 시내가 되고 강이 된다.
이처럼 과학적인 지리개념이 이 세상에 또 있단 말인가?

하루빨리 교과서에 백두대간을 제대로 알리고 가르쳐야 한다.





(가시밭길을 뚫고 오른 능선에서 주랫재 방향)

주랫재에서 뙤약볕을 이고 작은 봉우리에 드니 전방으로
벌목지대가 나오고 쓰러진 나무들과 잡목들이 가는 길을
붙잡지만 고집스럽게도 능선을 타느라 사서 고생한다.
농장임도로 가면 될 것을...





(뻔한 길을 잘못들어 10여분 잡목을 헤치며 알바를 하고...)





(?재, 내려가는 쪽은 철계단, 반대편 올라가는 길은...)

드디어 왼발은 보성을 벗어나 순천땅 외서면에 섰다.
오른발도 다음구간 백이산에서 보성과 완전 이별이다.
호남정맥이 힘들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전체 길이도
정맥중에서 제일 긴데다 가도 가도 같은지역 같기 때문이다.
이번 호남정맥 길에서 보성군과도 진한 인연을 맺었다.
지난 6월, 15구간에서 보성땅에 들어섰는데 이번 19구간에서
왼쪽발을 빼고 9월에 가는 20구간이 되어서야 오른쪽 발까지
빼게되니 과연 진한 인연, 미운정 고운정 다 들고 말았다.
보성군을 완전히 통과하는데 5구간이나 걸렸다.
다행이 이제부터는 순천에서 조금 굽어지기는 하지만
동북방향으로 직진하여 백운산으로 곧장 향한다.

창녕조씨묘를 지나자 철 계단이 설치된 신설도로가 나온다.
사람들도... 내려가는 곳에 철계단을 설치했으면 올라가는
쪽도 계단을 설치할 것이지. 직벽을 조심조심 오른다.





(편백나무 숲이 좋아도 급경사 오름은 천근 만근..)





(485.5m봉 / △순천445)





(잠자리와 노닥거리는데 잠자리는 역시 붙던 자리에 붙었다)




(드디어 날머리 부근이 눈에 들어왔다)

별 특징없이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장애물 경기장 같은 길
고만고만한 봉우리 몇을 넘고나니 차소리가 들리더니
앞이 트이고 날머리 석거리재 부근이 눈에 들어왔다.






(백일홍 꽃밭(육묘장)을 지나)

다정도 병이련가?
힘들면 짐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짐은 그대로다.
카메라쌕을 메고 다니는 탓에 이쁜 야생화라도 만나면
납덩이를 단 것 같은 걸음이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화룡점정, 날머리까지 이런 길을 뚫고 내려서야했다)







(풀숲이 갈 길을 막지만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인 것을...)







(석거리재 (240m) )

15번 국도가 지나는 석거리재는 '섶거리재'의 변음형으로
이 고개에 섶나무가 많았던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新巨峙'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新巨峙'보다는
'薪巨峙'가 보다 적절한 표기라고 한다.(薪 : 섶나무 신)
산마루에는 주유소와 휴게소(식당 매점)이 있다.





(영알에 노을이 지는 시간에 울산도착, 너무 일찍 온 것 아닌지?)

오후 3시 조금 넘어 출발한 바람에 오는 길
남해고속도로가 정체되어 차가 밀렸어도 영남알프스
마루금 위로 물드는 노을을 보며 언양을 지난다.

사실 오늘은 많은 걱정을 하며 집을 나섰는데 무사히
완주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지난 구간 폭염주의보 내린
날씨가 얼마나 힘들게 했던지 오늘 예보된 폭염주의보가
정말 신경쓰였다. 그기다가 오늘은 무박산행에 거리도 멀고
악명높은 잡목구간까지 기다리고 있어 솔직히 하루를 쉴까하고
망설이기도 했지만 컨디션도 많이 회복된 것 같아 가는데까지
가보자며 나섰는데 무사히 완주를 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무박산행이 힘들기는 해도 오늘같이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은
뙤약볕길 걷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오히려 나았다.

산이 좋아 산에 들면서 산에 드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이지만 요즘 사정이 말이 아니다. 이제 많이
회복되었으니 곧 설레임으로 산에 들날이 곧 오리라.
고지가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더운 날씨에 수고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