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청정한 자연같이 청렴한 나라

2017. 8. 31. 23:59여행/여행기




헬싱키, 발트 해의 아가씨
(청정한 환경같이 청렴도 최상위의 나라 핀란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러시아 국경을 넘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국경을 넘었을 뿐인데.. 왜 있는지도 모를
국경 직전 검문소를 거쳐 국경에 가니 근무자가 없다.
30분 가량 기다리니 나타난 근무자는 유유자적 자기들 할 짓 다하고 
우리는 뒷전. 신경 건드리면 트집 잡아 더 애 먹일 것 같아 닦달도 못하고
그저 기다리는 방법 밖에는.. 국경에서 지체되는 시간을 줄여 보려고
  새벽 5시에 도시락 하나 챙겨서 길을 나섰는데 이게 무슨 짓이람.
시간이 해결사,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핀란드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노란 유채꽃도 간간히 우리를 반겨준다.
러시아에서는 사람이 만든 것을 보고 감탄을 했는데
이제부터 자연이 놀라게 하려나.. 기대된다.





(고속도로 휴게소 모습)

유럽의 휴게소가 별반 차이 없이 모두가 기서 거기지만
여기는 게임기가 몇 대나 설치되어 있고 게임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IT강국이라더니..







(Finland, 헬싱키 모습)

공식 명칭은 핀란드 공화국.
서남쪽은 발트 해 남쪽은 핀란드 만을 통해 에스토니아와 가깝다.
서쪽은 보트니아 만 등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스웨덴과 노르웨이,
러시아와 국경이 닿아 있다. 동쪽은 러시아의 카렐리야 공화국고 인접해 있다.
다수의 국민은 우랄족의 핀란드인에 속한다. 공용어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2015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5백 50만 명.

역사는 우랄어족 언어를 쓰는 핀족이 서진하여
기원후 1세기 경 지금의 핀란드 남부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중엽, 스웨덴 왕 에리크 9세의 십자군의 핀란드 침략 이후 스웨덴이
영토를 넓혀왔으며, 1397년 포메라니아의 에리크가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의
연합왕으로 즉위할 때 이에 편입되었다. 17세기 초에 스웨덴은 핀란드를
동방 전초기지로 활용하였다. 크리스티나 여왕은 핀란드에서 문예를
크게 진흥시켜 투르쿠 대학이 이 무렵에 세워졌다.
스웨덴 왕 칼 12세의 무리한 군사정책으로 시작된 대북방 전쟁
(1700~1721년)에서 핀란드의 국토는 러시아의 대대적 침공으로 타격을 입었다.
나폴레옹 전쟁 중에 핀란드 영토를 둘러싼 열강의 외교전이 펼쳐진 끝에
1809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였고, 대공국이라는 이름으로 통치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7년 독일 제국의 공국인 헤센-카셀(Hessen-Kassel)가를
핀란드의 왕가로 받아들여 독일제국에서 책봉을 받는 형식상의 제후국이 되었다.
1918년 1월 27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핀란드 적군(공산군)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받은 핀란드 백군(정부군)이 5월 15일 이를 진압.
그 해 11월 11일 독일 제국이 항복함으로써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핀란드는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부터 소련의 위협이 다시 커져
국가의 생존을 걸고 소련과 2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장군의 지휘 아래 전 국력을 총동원하여
소련에 맞서 싸웠으나, 국력의 열세 때문에 끝내 패배로 끝났다.
소련에 대한 감정은 이 전쟁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전후 국토를 재건하면서 핀란드 정부는 소련과 서유럽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 경제발전에 힘을 쏟았다. 소련의 의향에 따라 마셜 플랜을
받지 못했고 북대서양 조약기구와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하지 않았다.
자유 민주 정권을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경제권에 속하는 경제정책을 쓰고,
외교, 국방 측면에서 공산권과 가까웠지만,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가맹하지 않았다. 소련이 붕괴된 후 서방 진영에 접근하여,
1995년 EU에 가입하고, 2000년 유로를 도입했다.







(헬싱키 대성당, 원로원 광장)

헬싱키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파란 하늘과 하얀 아름다움이 조화로운 루터란 교회 대성당.
이곳은 1852년 러시아 정교회의 대성당으로 만들어졌으나, 독립 이후
루터란 교회 대성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중앙의 큰 돔과 귀퉁이의
4개의 작은 돔이 성당 전체의 균형을 잡아 주고 있다.
원로원 광장은 정부청사, 대성당, 헬싱키대학교 본관, 중앙도서관 등이
둘러싸고 있는 정사각형 광장. 헬싱키 시민들과 여행자들의 만남의 광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주변 건물들은 카를 엥겔에 의해 설계되었고,
그 앞에는 발터 루네베리가가 만든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어 러시아에 지배당하던 시절의 역사를 말해 준다.
독립 100주년을 맞으면서 침략의 상징인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을
철거하자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고 한다.







(원로원 광장의 모습)





(마켓 광장으로 가다 돌아 본 대성당)





(하비스 아만다(Havis Amanda) 동상)

핀란드의 조각가 '빌 발그렌'이 1908년 마르셀 델큐니라는
19세의 파리여성을 모델로 하여 제작한 것으로 헬싱키의 상징물이 되었다.
'바다에서 떠오른 여인'이라는 이미지가 곧 민족의 독립을 의미하여,
이 아름다운 동상은 그 자체로 핀란드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동상이 세워지던 시대엔 이 조각상이 너무 선정적이라 해서
'프랑스에서 온 매춘부'라 불려 지기도 했는데 핀란드와 스웨덴의
신문들이 '하비스 아만다'라는 별명을 지어줘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동상의 전체 높이는 5m.









(마켓 광장(카우파토리))

카우파토리(KAUPPATORY)는 마켓 광장을 부르는
이름이면서 여기서 열리는 장을 지칭하기도 한다. 매일 아침에
들어오는 싱싱한 생선과 야채, 과일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전 시간에는 식품을 중심으로 장이 열리고, 오후에는 잡화중심으로
장이 열린다고 한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대체로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어 배낭여행자들이 한 끼 때우기 제격일 듯..





(여제의 돌 오벨리스크)

여기도 머리가 둘 인 독수리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본
표트르 대제 황금의자에 새겨져 있던 로마노프 왕조의
쌍두 독수리 문장과 같은 모습. 여긴 핀란드 아닌가!

헬싱키 최초의 공공 조각인 황후의 돌(Stone of the Empress)은
황제 니콜라스 1 세와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Alexandra Feodorovna)가
헬싱키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이 오벨리스크는 1833년 6월 10일
알렉산드라와 니콜라스 1세가 헬싱키에 올 때 배에서 내려 발을 딛은 자리에
세운 것.. '황후의 돌'은 칼 루드빅 엥겔(Carl Ludvig Engel) 감독이 설계 한
오벨리스크로 로마노프 지배 왕조의 상징인 꼭대기에 머리가 둘 달린 독수리가
앉아 있다. 이 돌은 라틴어와 핀란드어로 "핀란드의 수도 XXIX 5월 X 6월
MDCCCXXXIII에 첫 방문했을 때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헌정"으로 새겨져 있다.
오벨리스크는 1835년에 공개되었다. 쌍두 독수리는 1918년에 제거해
시 박물관으로 옮겼다가 1971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카메라를 의식하고 포즈를..)





(페리 승선장)

저 뒤쪽은 선착장에는 크루즈 선이..









(Sky Wheel 방향)

Helsinki Allas Sea Pool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면
테라스는 일급 조망대. 사방이 확 트인 테라스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은데 핀란드 사우나와 수영장, 레스토랑과
Bar까지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다.







(지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하고 있는 여행객)

바로 아래가 Pool장, 여기서 마켓시장과 헬싱키 대성당,
시청사, 국회의사당, 우스펜스키 대성당 등.. 항내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 선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헬싱키 만을 배경으로..)







(만헤르헤임 거리에 있는 헬싱키 시청사)

청렴도 1~3위 내에 드는 국가의 수도 헬싱키 시청사.
시청에 가면 헬싱키 시장의 판공비 사용 내역서를 열람할 수 있다고 한다.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2016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CPI)'가 발표하였는데 대한민국은 세계 176개국 중 52위, OECD 35개국중 29위.
우리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슬로바키아, 헝가리,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멕시코 등 6개국. 선진국이란.. 선진국이 괜히 선진국이겠는가?
GNP가 높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번 기회에 정경유착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묻고
앞으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우리도 국가 부패지수가
낮아지고 국가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나라,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아 온 역사를 가진 나라. 세계 열강의 침략이 노골적이었던
2차 대전 때는 치욕적인 식민지 통치를 받기도 했고, 자원이 풍부하지
않지만 인적자원을 중시하기 때문에 국민의 교육열이 대단히 높은 나라.
어려운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고 짧은 시간 내에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국가청렴도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핀란드에서 공무원들이 되면 누구나 듣게 되는 말은,
그 어느 광고카피보다도 의미심장하다.“공무원에게는 따뜻한
맥주와 찬 샌드위치가 적당하고, 그 반대가 되면 위험하다”
상당 부분 우리와 처한 조건이 비슷했지만, 국민복지와 국가경쟁력.
국가청렴도 최상위국 핀란드에서 해 보는 소박한 생각.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아질 텐데..









(헬싱키 시내 골목 풍경)









(트램 철길과 자전거 주차대)











(헬싱키의 빨강색과 녹색의 트램)

유럽에서 대중교통수단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 트램.
장점으로는 수송량이 많기 때문에 인건비가 높은 선진국일수록
인건비 절감에 유리하고, 차량의 구조가 간단하여 수명이 길고,
노선변경 가능성이 적고, 도심 소음과 매연을 줄일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다. 물론, 단점도 있겠지만 유럽의 도시에서는
좁은 골목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







(게 눈 감추듯 점심을 먹고..)

새벽에 출발하여 7시간 만에 헬싱키에 도착,
도착하자마자 원로원 광장으로부터 마켓 광장 주변을
1시간 정도 돌고 나니 배꼽시계가 계속 울린다. 그도 그럴 것이
국경통과 시간 좀 줄여 볼 것이라고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웠으니..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은 ARTHUR HOTEL 레스토랑이었는데
시장이 반찬이기도 했겠지만 음식이 잘 나왔던 것 같다.
이제 헬싱키도 우스펜스키 성당과 시벨리우스 공원,
암석교회만 둘러보면 또 떠나야 한다.









(우스펜스키 대성당)

서유럽 최대 규모의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1868년 성모 승천을 기념하여 비잔틴 슬라브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러시아에게 지배받던 시절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으로.
지붕의 양파 모양 꾸뽈라와 첨탑은 금으로 덮여 있고, 건물 전체는
붉은색 벽돌. 내부 제단 벽에는 천연 물감으로 그려진 그리스도와
12사도의 벽화가 있다. 헬싱키 대성당과 함께 헬싱키의 랜드 마크라고..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는 성당으로 유명.
실내 촬영이 가능하여 하나님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우스펜스키 대성당은 좋은 조망대)







(시티투어 버스..)

시내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안전 장구를 갖추고 자전거를 타는 어린이들이 인상적이었다.
3~4세 정도의 어린 아이들도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도심에서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한산해 보이는 도심의 도로가 부러웠다.





(헬싱키 올림픽 경기장 앞의 파보 누르미 동상)

파보 누르미(Paavo Johannes Nurmi, 1897.6.13~1973.10.2)는
핀란드의 육상 선수. 192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중·장거리
선수로 1500m에서 20km에 걸친 여러 종목에서 세계 기록을 세웠다.
누르미는 1920년에서 1928년까지 3개의 올림픽에서 통산 9개의
금메달과 3개의 은메달을 땄다. 지금까지도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메달 성적이 좋은 선수라고 한다.







(나른한 오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는 독서삼매경)







(우리는 그늘을 찾지만 그들은..)









(시벨리우스 공원)

핀란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 시벨리우스가 있다.
이 공원은 핀란드 최대의 민족주의 음악가 시벨리우스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공원. 공원의 하이라이트인 기념비는 1967년 에일라 힐투넨의 작품.
은빛으로 빛나는 기념비는 24톤의 강철로 이루어진 600개의 파이프는 마치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기념비와 두상은 헬싱키에 왔다는 것을
새삼 깨우쳐 주는 최고의 포토 포인트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담아보고..)





(시벨리우스 마스크..)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2.8~1957.9.20)
핀란드의 작곡가. 양친도 음악을 좋아하여 그를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하여, 15세 때에는 다시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작곡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나, 부친의 희망에 따라 헬싱키 대학의 법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헬싱키 음악원으로 옮겨서 베겔리우스에게
작곡을 배우고, 또 여기서 피아노 교사로 있던 부조니와 알게 되었다.
1889년에 음악원을 졸업할 때에는 작곡 부문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베커에게 사사했다.
그 후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빈에 유학하고, 26세 때 귀국하여 본격적으로
작곡 활동에 들어갔는데, 이 때 이미 열렬한 국민주의의 입장에서 작곡하기에
이르렀다. 27세 때 결혼하고 교향시 《엔 사가(전설곡)》를 작곡했다.
28세 때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큰 작품을 발표하여 핀란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 초기 작품 대부분은 핀란드의 국민 서사시《칼레왈라》에서
제재를 찾았으며, 그밖에《핀란디아》와 같은 민족색이 짙은 작품이 태어났다.
1897년부터는 핀란드 의회는 연금 2,000마르크를 그에게 주어, 생활에
걱정 없이 작곡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했다. 1904년부터는 헬싱키에서
30킬로쯤 떨어진 예르벤페 호수가에 집을 짓고 조용히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 후 그의 작곡 경향은 초기의 국민주의적인 태도에서 좀 세련된 순음악으로
옮겼지만, 핀란드의 민족성에 바탕을 두어 이를 대형식으로 정돈하여,
새로운 개성적인 표현에까지 이르러 20세기의 최고의 작곡가로 존경받았다.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곡, 가곡에 뛰어난 작품이 있는데, 규모가 큰
7곡의 교향곡은 특히 음악사상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작품]
핀란디아, Valse Triste, 바이올린 협주곡,
카렐리아 모음곡, 투오넬라의 백조(렘민캐이넨 모음곡의 한 악장) 등.
그 밖에도 그는 칼레발라에 영감을 얻은 작품과 일곱 개의 교향곡,
100개가 넘는 가곡, 13개의 연극을 위한 반주 음악, 하나의 오페라
(미완성작품), 현악 사중주를 포함한 실내악 작품, 피아노 소품,
21개의 합창곡집, 프리메이슨 예배음악 등을 썼다.





(석류 쥬스 한 잔 5유로)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템펠리아우키오 광장 근처에 있는 암반을 깎아 만든 교회.
1969년에 티모와 투오모 수오말라이넨 형제에 의해 지어졌다.
천장과 외벽 사이의 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설계되었으며,
그 안쪽에는 약 3만 m의 구리선이 돔 모양으로 둥글게 엮어져 있어
울림 효과를 더욱 높여준다. 또한 건물 내부는 천연 암석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외부는 파 낸 바위 조각들을 쌓아 놓아 방음효과 및
외부 충격으로부터의 차단효과도 있게 했다. 교회 안에서는
다양한 음악회, 결혼식 등이 자주 열린다는데 관광객들로 붐벼서
교회라기 보다는 일반 관광명소 같은 느낌.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는데 차분히 감상할 형편은 못 되었다.







(구리선으로 엮은 천장과 자연광이 들어오게 한 창)





(60)







(파이프 오르간)

마침 오르간 연주가가 연주를 했다.
천장을 비롯하여 음향시설이 잘 되었다고 하는데
관광객들이 들락거리고 사진 찍느라 조용히 연주를
감상하기에는 분위기가 산만했고, 무엇보다
연주를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는 것.







(사진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한적한 곳에서 신경 쓰며 찍긴 했지만, 나 역시
연주 감상에 방해꾼이 되었을 것.





(하늘빛이 좋아서..)

눈이 시리도록 청명하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가을 하늘도 이같이 쾌청했는데..









(호수와 숲의 나라 핀란드)

트루크 가는 길의 풍경.
도로 변에는 벌판과 자작나무를 비롯한
쭉쭉 뻗은 키 큰 나무들이 잘 관리된 듯한 숲이 펼쳐진다.
자작나무가 저렇게 지천이니 핀란드가 자일리톨로도 유명한 것 같다.
제대로는 볼 수 없지만 숲 사이로 호수들도 간간히 보이는데..
핀란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호수와 섬이 많은데 공식적으로
호수가 18만 8천 개, 섬도 그 비슷한 18만 여 개가 된다고 한다.
핀란드(Finland)를 핀란드어로는 수오미(Suomi)라고 하는데
수오미의 뜻이 '촉촉한 땅'이라고 한다.
호수가 그렇게 많지만호수에서 낚시를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된다고 하니.. 핀란드인들의 자연관은
'우리들의 자연에 대한 갈망은 온전한 자연이다.'
라는 말에 잘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제일 아래 사진은 빌려 온 사진)









(핀란드 투르쿠 항 SILJA LINE)

헬싱키에서 2시간을 달려 약 170km 떨어진 오보라고도 하는
투르쿠에 도착. SILJA 터미널로 직행했으니 도시 모습은 차창 밖
풍경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투르쿠는 인구 18만 명으로 핀란드에서
3번째로 큰 도시. 러시아-스웨덴 전쟁을 종식시킨 오보 조약을
체결한 곳으로 1812년까지는 핀란드의 수도.

대합실에는 러시아에서와 같이 요우커들이 많이 보였다.
세계 어디를 가나 요우커를 만나지 않는 곳이 없지만.. 특히,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은 단체 여행을 왔다는데 근래
사드갈등으로 한국에서 사라진 요우커들이 유럽으로
몰린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발틱 프린세스(Baltic Princess) 호)

승객 2,800명과 차량 420대를 싣고 24.5kn(45.4km)의
속도를 낼 수 있다는 Baltic Princess 호, 2008년 8월 17일
핀란드의 헬싱키와 에스토니아의 탈린 루트에 첫 취항했다고 한다.
선체의 크기는 GT(총톤수)가 48,915이며 DWT(재화중량톤수)가 6,287.
선체 길이는 축구장 2배인 212.1m, 선폭도 30m. 출력은 43,000 마력..
그리고 선내에는 나이트클럽과 카지노, 다양한 공연, 뷔페를 비롯한
다양한 레스토랑과 5개의 Bar와 카페, 어린이 놀이터와 회의실, 면세점
수영장, 사우나와 미용실, 헬스클럽 등의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객실은 약한 진동음만 들릴 뿐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
나이트클럽 위층은 많이 시끄럽다고 하더라만.

Tallink Silja는 에스토니아 기반 크루즈 선사로 발틱 해에서
발틱 프린세스 호를 비롯한 19척의 크루즈 선과 수송선으로 승객수송과
화물 운송 사업을 하고 있다. 투르쿠-스톡홀름, 헬싱키-스톡홀름,
헬싱키-탈렌, 스톡홀름-리가, 스톡홀름-탈린 루트를 운행한다.
이번 여행에서 3번 밤배를 이용하는데 스톡홀름에서 리가로
갈 때도 Tallink를 이용할 것 같다.





(이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밤배는 낭만적이기도 하고 장거리 이동 시에는 시간을
벌 수 있어 좋다. 별이 뜬 밤 풍경을 기대했는데 백야현상으로
10시가 넘었는데도 어둡지 않다. 밤공기가 너무 차다.
잠이 잘 올 것 같지 않지만 객실로 들었다.
  자고 나면 스톡홀름이겠지..

발트 해 연안에 있는 북유럽 3국 중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평가받는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
국토의 75%가 울창한 숲이며, 20여만 개의 호수와 섬이 조화를 이뤄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나라. 산타의 고향이 있고, 교육 강국으로 작지만 강한 나라,
디자인을 잘 하는 나라, 청정한 환경같이 청렴도와 기업의 투명성이 최상위인 나라,
6.25전쟁 때는 UN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의료지원을 맡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아서 국립중앙의료원 설립과 의료인 양성에 힘쓴 나라. 한국인 입양인이 많은 나라.
언뜻언뜻 보고 들은 단편들 마저도 큰 울림으로 다가 온다.
특히, 핀란드의 정치인과 부자들이 한국의 정치인, 부자들과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 이렇게 살기좋은 나라를 만든
토대가 되었다는 생각..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핀란드의 진면목을 더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또 다른 만남을 위해 이별의 아픔은 감수 할 수밖에..
'발트 해의 아가씨'라는 별칭을 지닌 헬싱키는 깨끗하고 순수한
소녀같은 특유의 상냥함이 느껴지는 도시였는데, 마켓 광장의 조금은
요염한 듯한 '발트 해의 처녀' 동상에 더해, 핀란드를 떠나면서도
'발트해의 공주'라는 'Baltic Princess' 호를 타고
발트 해를 유람하다니.. 이 豪奢!


시벨리우스
교향시 '핀란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