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7. 17:25ㆍ山情無限/지리산
지리 단풍을 쫓아 뱀사골에서 피아골까지
( 산행일 : 2005.10.29 )
피아골 단풍을 만나는 것만 해도 행운이라 생각하고 설레는데,
지리에서 쌍벽을 이루는 뱀사골 단풍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다니...
이런걸 덤이라 하는가? 덤이라 하기엔 너무 크고 알차다.
복된 소식을 전하는 "세월" 낭만 대장님 고맙습니다.
타고 온 버스는 다음 목적지 성삼재를 향하여 떠나고,
1진 10명, 08:18분 부러운 시선 뒤로한 채 뱀사골 계곡으로 빨려들듯 입산한다.
아침 햇살을 받은 지리자락은 황금 빛으로 눈 부시다.
밤 새 산소를 쏟아낸 아침 숲 길은 언제나 상쾌하다.
들머리에서 이어지는 원시림이 주는 광대한 기운이 감동시킨다.
세월의 내노라 하는 선수들...
임걸령까지 주어진 시간 3시간 반, 임무 완수하려니 발걸음보다 마음이 더 바쁘다.
한 컷 잡으려는 사이 벌써 일행은 모퉁이를 돌아선다.
와운교를 건너자마자 마자 대문을 열어 젖히고 반갑게 맞이하는 뱀사골대피소 가는 길,
오던 길 곧장 가면 와운리, 와운마을에서 명선봉 북릉을 타면 연하천대피소로 통한다.
세월산객은 우측 나무계단을 통해 가을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간다.
키 큰 나무가 가린 사이로 열린 가을 하늘은 구름과 벗하고,
먼저 가을을 맞은 나무는 겨울채비를 하고 있구나.
뱀사골에서 실족사한 지리산 시인 고정희는 "뱀사골에서 쓴 편지"에서
"우리 일행은 뱀사골 계곡에 접어들자마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피곤 따위는 깡그리 잊고 말았습니다….
지리산 뱀사골의 웅장한 계곡은 오염의 티가 거의 없음은 물론
설악의 계곡처럼 바라다만 보면서 지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앉아서 쉬어가면서 즐기고 만져볼 수 있는
정다운 계곡이라는 데 새삼 놀랐습니다" 라고 표현했다.
공자왈[子曰]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이라 하지 않았는가?
산 좋고 물 좋은 곳 쉬어 가도 좋으련만
계곡은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카메라에 담기조차 바쁘게 선두는 내달리니 안타까울뿐이다.
지리산 스물도 넘는 계곡 중 단풍골은 뱀사골과 피아골로 압축된다.
뱀사골은 넓은 계곡 청아한 물이 노랑 빨강 단풍과 이루는 조화가 압권이고,
피아골은 선홍색 곱고 진한 단풍이 일품이라는데 뱀사골 단풍도 뒤질새라 타는 듯 붉구나.
오늘은 양 골짝 단풍을 다 볼 수 있으니... 단풍만 봐도 하루가 모자라겠다.
지존님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반선에서 너댓시간은 걸린다는 화개재를 2시간 반만에 넘자니 걸음이 바쁜데...
황홀한 풍경에 넋 잃지 않으려 적당히 마음 단속하며, 반 발만 담그고,
사건현장 취재하듯 속사(速寫)를 해도 금포교를 건넌 일행은 보이지를 않는다.
어디 이러다가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건질 수 있으려나...
바쁜 걸음 재촉하여 단풍나무 턴널 아래서야 따라 잡는다만
달리는 말 채찍하듯 바쁜 걸음 채근하는 세월님들
요산요수도 주마간산, 시간맞춰 임걸령 가는 것이 목적이 된건 아닌지요?
생명이 움 트는 연녹의 봄 산도 그렇지만 가을 산에는 특별한 감동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가을이 주는 진하고 깊은 맛 때문일 것이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 산 한 가운데서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 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가을처럼 깊어가는 것.
삶의 자취가 이 가을과 같은 모습으로 얼굴에 새겨질 수만 있다면..
반야봉, 토끼봉, 삼도봉, 명선봉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은
소(沼)가 되어 쪽 빛 하늘과 구름, 단풍산을 담아 계류가 되고,
산내, 마천, 산청을 거쳐 남강이 되었다가 낙동강이 되고 드디어 바다가 된다.
명선교를 지나 제승대 가는 길.
빼어난 경관은 과연 가을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신은 아름다운 자연을 빚어 인간에게 위탁하였건만
인간의 끝없는 욕심,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사람에게 하듯 위한다는 거짓발림으로 속이고 상처내고 훼파한다.
피는 잎, 떨어지는 낙엽하나도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
하늘 아래 세상 모든 존재를 이어주는 끈은 사랑.
자연에 대한 진정(眞情)만이 신이 준 자연과 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황홀경. 낙엽을 맞으며, 밟으며 가을의 심장부를 걷는다.
이런 길 걸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무딘 글로 표현할 방법없어 답답한 맘,
그냥, 이런 길 찾아 한 번 걸어 보시라고 할 수 밖에는...
옛날 보부상이 하동에서 구입한 소금을 지고 화개재를 넘어 뱀사골로 내려가다
계곡물에 빠지는 바람에 물 색깔이 간장처럼 변하고, 물 맛마저 짜졌다는 간장소를 지나자
단풍 만산한 깊은 가을에 계절잊은 진달래 여기서 반기구나.
아름다움 견줘보는 것도 좋다마는, 이어 닥칠 풍상은 어이 맞설건가?
잎은 계절따라 피고 지건만 계절 잊은 진달래, 잎보다 열배나 섧어 보이는 꽃 송이.
8시18분 반선에서 출발하여 8km를 통과하는 시간 10시 13분.
2시간도 채 안걸렸다. 도중에 2번의 휴식, 휴식한 시간 25분 여.
달려왔는가? 날아 왔는가? 카메라 속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으려나...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는 뱀사골 단풍에게 예를 갖추며 왔는가?
뱀사골대피소 샘터에서 목 축이고 화개재에 올라서니 바람이 세차다.
공사중인 화개재를 뒤로하고 삼도봉 가는 길 막아 선 600계단을 오른다.
세는 사람마다 다르고, 셀 때마다 계단 수가 각각이다. 오늘은 557에서 멈췄다.
마하님 이제 50계단 정도만 올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만나는 접점 3도봉.
1진 10명 단체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어 교대로 찍어도 역시 1명(호돌님)이 빈다.
운무가 넘나드는 반야봉, 불무장등, 멀리 노고단이 눈에 들어온다.
1432봉 아래 임걸령, 그 너머 1424봉, 그 너머 노고단(1507m).
어제 내린 비로 날씨는 지리 산정을 겨울 가까이까지 데리고 온 것 같다.
삼도봉 푸른 소나무는 겨울을 맞아 살포시 돌아 비껴 서 있구나.
반야봉을 거쳐 12시까지 임걸령에 가려는데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구름이 휘감고 있는 반야봉은 조망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통과하기로 한다.
누구든 같이 오를 사람 있으면 오랫만에 들리고도 싶었는데...
반야봉 찬 겨울바람이 구름으로 상고대를 피웠다지요.
이미 겨울이 가까워진 산정의 나무들은 겨울채비에 들어가고
산죽이 돋보이는 호젓한 길을 걸으며 1차 집결지를 향해 내달린다.
성삼재로 왔던 본대도 2조는 반야봉까지, 3조는 임걸령까지 오는 것으로 나뉘었단다.
임걸령 추위를 피해 반야봉쪽으로 이동하던 3조와 만난 시간은 11시40분경
이미 2조는 반야봉을 향한지 오래...
3조와 함께 임걸령에 도착하였으나 매서운 바람은 멈추지를 않고,
양지바른 곳 찾아 1,3조 인원점검을 하고 피아골로 향한다.
뱀사골은 이미 7부 능선 위로는 단풍이 지고 있는데
피아골은 9부 능선까지 화려한 단풍이 그대로다.
큰 산 지리산은 가을마저 뱀사골을 1주일 먼저 보내는 것 같구나.
단풍나무 아래 바람 자는 아늑한 곳에서 터잡고 점심배낭을 풀었다.
붉은 단풍은 피아골 단풍의 진수가 아닌가?
그러나, 어디 늙는 것이 사람뿐인가?
피아골 9부능선 홍색 고운 단풍잎에도 검버섯이 피기 시작하구나.
어디 피아골 단풍이 붉기만으로 으뜸일 수 있겠는가?
담황색에서 부터 주황, 주홍, 선홍색에 이르기까지 뒤섞여 조화이룬 모습
화사하기도 하거니와 가을 풍년 들녘인양 풍성하기까지 하구나.
지리산만큼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산도 없다.
임진왜란 의병부터 한말 의병활동, 좌우 이념대립의 풍진을 껴안은 산.
지리산 중에서도 피아골은 처절한 역사의 혼이 숨쉬는 곳.
단풍이 붉기는 내장산과 피아골이 겨룬다지만
민족의 한을 안고 피는 피아골 핏빛 단풍이 심오하지 않을까?
한 폭의 유화를 보는 듯하다.
마치 빛의 마술사 모네가 그린 "수련" 연작을 보는 듯.
한적하기로는 치밭목을 뺄 수 없지만 지리산 9개 대피소중
투숙객이 제일 적은 피아골 대피소를 지키는 사람은 함태식 옹.
마흔 넷에 노고단대피소 관리인으로 들어와
지리산에서 서른 네 해를 보냈으니 올해 일흔 여덟.
16년 정든 노고단 대피소를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넘기고 우여곡절 끝에자리 잡은 곳
노고단을 떠나는 마음은 아쉽고 아팠지만 지리산이 아니고선 살 수 없는 분.
그러나,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고 1년 임대료가 200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각양 각색의 단풍이 배경되어 아늑하고 정취좋아 무릉도원 같은 이곳도
1984년 피아골 대피소를 지을 때 대피소터에서만 한 트럭 가까운 인골이 나왔다지,
피아골 단풍이 유난히 붉은 것도 이들의 원혼이 서려있기 때문인가?
일찌기 남명 조식은 피아골의 가을을 노래했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에 물든 단풍 봄 꽃보다 고와라.
천공이 나를 위하여 묏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떠밀려 내려가는 무리에서 잠시 비껴서 삼홍소에서 이홍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무리 피아골 단풍이 선홍색이라지만 어디 붉은 색만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카메라에 담고 싶은 풍경이 지천이건만 셔트 챤스가 없다.
뱀사골 오를 때야 뒤 처지면 걸음만 재촉하면 되었지만,<br>
이 곳 피아골에서는 떠밀려 내려가는 단풍산객들로 제 자리 지키기도 어렵고,
살짝 길 비켜서 재빨리 한 컷 해도 적게는 다섯명 많을 때는 열명이 앞서버린다.
지존님이 인계한 세월님들 챙기려면(?) 따라 붙어야 하는데
투박한 길, 틈새없이 이어진 줄 제자리 찾아 추월하기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피아골대피소 출발하면서부터 후미를 맡고 생기는 고민이다.
와폭, 남매폭, 구계포다리.. 피아골 명소 절경들에도 카메라를 꺼내지 못했다.
피아골은 작은 소와 폭포가 많고 원시수림으로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봄에는 산목련, 철쭉이 신록과 어울려 절경이 되고,
가을에는 타는 듯한 단풍,
겨울에는 설국이 되어 동화세계를 연출하지만,
그 중 가을단풍이 지리산에서 으뜸이라고 한다.
영락없는 꽃이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다. 피아골 단풍은 그런 것 같다.
가을산의 진경은 단풍일텐데 도대체 단풍이 무엇일까?
"늦가을에 엽록소나 화청소가 변하여 붉게 또는 누렇게 된 나뭇잎"이라고 한다면
마치 인간의 희노애락 끝에 흘리는 눈물을 수분 몇%에 나트륨 몇% 하는 것과 뭐 다를까?
사전적 의미는 사전에 두고,
때깔좋은 단풍잎을 보는 것도 좋지만 단풍이 익어가는 모습을 눈 여겨보자.
녹색 잎이 선연해졌다 녹황색, 암적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신비로움 자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잎을 보고 있자니 숙연함마저 든다.
뭐랄까 잉태된 생명에게 탯줄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독이 모세혈관을 타고 잎새 구석구석으로 퍼져가는 모습이 선연하다.
죽기전 단 한번 아름다운 소리로 울다가 죽는다는 가시나무새 같이
단풍도 떨어지기 위해 찬연하게 자신을 불 태우는가?
뱀사골 산자락은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가을겆이 끝난 감나무에는 까치밥 몇 개만이 주인을 기다린다.
뱀사골이든 피아골이든 골이 깊고 표고차가 커 계절이 한 달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10월중순 종주할 때 정상에는 단풍이 익고 7부능선까지 내려왔었는데...
<br>
피아골 단풍은 역시 삼홍소에서 표고막터간이 으뜸이라 했는데
아직 때가 이른지 절정의 핏빛 단풍 모습을 찾기 어려우나
초록과 노랑, 주황, 주홍, 선홍색이 조화를 이룬 젊음 잎들이 생생한다.
어디 단풍이 단풍나무에만 든다드냐?
단풍이 들면 다 단풍나무지...
피아골 상징 선홍색 핏빛 단풍은 못 담아도
그 중 그래도 제일 마음에 드는 그림인 것 같다.
다음엔 수동 카메라를 가져와야겠다.
아직은 때 이른 길 옆 초록과 같은 젊음도
세월과 함께 단풍과 같이 인생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겠지.
고운 단풍같은 모습, 가을같은 모습으로 나이를 먹을 수 있었으면...
올해 최고의 가을을 만났다.
지리 10경에 속하는 피아골 단풍과 생각지도 않았던,
피아골에 버금가는 뱀사골 단풍을 동시에 누릴 수 있어 감사하다.
좋은 산을 좋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더더욱 뜻깊고 감사하다.
욕심은... 절경, 황홀한 풍경을 제대로 담을 수 없었다는 것과
그 모습을 제대로 글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
한없는 욕심 때로는 단념하고, 조금씩 채워가는게 인생이려니...
찾아도 언제나 다시 찾고 싶은 어머니 품같은 지리산
시간내어 또 찾으리라.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는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절규하는 심정으로...
<끝>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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