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좋은글/詩(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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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 김용택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
2019.03.02 -
자전(自轉) / 허만하
. . 지구는 적막하게 자기 굴대를 돌고 있다 . . 어둠을 헤치는 아침노을과 / 저무는 저녁노을 사이로 / 시는 타오르는 자기 중심을 바라보며 / 끝내 자기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 해와 달은 관념 안에서 뜨고 지지만 / 물질의 고독은 슬픔보다 깊다 // 낙동강의 밤과 낮 / 적포교에서 自轉 / ..
2019.01.17 -
새해 아침의 기도 / 안도현
새해 아침의 기도 / 안도현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조아리고 새해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 자신과 내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한 번이라도 나 아닌 사람의 행복을 위해 꿇어앉아 기도하게 하소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가 시냇물처럼 모여들어 이 세상..
2019.01.08 -
그대들 눈부신 설목 같이 / 김남조
그대들 눈부신 설목(雪木) 같이 / 김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랑이 있으면 기다려 줍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건 아닙니다. 먼저 사랑을 건넨 일도 잘못이 아닙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수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 우리에게 있어 행 할 수 있거든 먼저 ..
2018.12.28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
2018.12.07 -
해는 기울고 / 김규동
해는 기울고 / 김규동 운명 기쁨도 슬픔도 가거라 폭풍이 몰아친다 오, 폭풍이 몰아친다 이 넋의 고요. 인연 사랑이 식기 전에 가야 하는 것을 낙엽 지면, 찬 서리 내리는 것을. 당부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 출처 : 『김규동시전집』(창비, 201..
2018.11.18